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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Apr 01. 2024

첫 경험

라면과의 첫 만남

"전부 이~ 모이바라~~!!!"


"와예? 무슨 일 있습니꺼?!"


"저 아랫집 양색시가 요상시르븐 국시를 끼린다 안카나!!!"


"그기 무슨 소리고?!"


"내도 잘 모른다. 일단 가보기나 가보자~!!"


밖에 난 부엌 연탄불 아궁이 앞에 쭈그려 앉은 양색시를 동네 사람 너덧이 모여 그녀가 하는양을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다.

양색시는 수돗가에 나가 양은 냄비에 물을 받아 오더니 연탄불을 막아둔 뚜껑 위에 올려둔다.

그리고는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까지 하릴없이 앉아 그 어떤 재료도 더하지 않은 채 가만히 턱을 괴고 쭈그려 앉아 있을 뿐이다.


"지금 머하는기고!!! 국물을 끼릴라카모 물만 끼릴기 아이고 뭘 여가 맛을 내야 될꺼 아이가!!!"


"가만쫌 있어바라. 설마 끼린물 물라꼬 저라고 있긌나!! 다 이유가 있긌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지 마는지 양은 냄비의 물이 조금씩 끓어오르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네모진 비닐봉투를 양 손으로 척 갈라 또 그 안의 조그만 비닐을 주욱 찢어 냄비 속으로 털어 넣으니 끓어오르던 물이 더욱 부글부글 부풀어 오른다.


"옴마야!! 저거 봐라!!! 찌개국물맹키로 물 색깔이 다르네?? !!!"


"저기~ 무슨 가룬데 닭이가 소가? 맛있는 냄새가 꽉 차네!!!"


"괴기도 없는데 오데서 괴기 냄새가 난다 그쟈?"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엔 빳빳하고 꼬불꼬불한 동그란 국수 덩어리를 냄비 속에 넣고. 잠시 후 젓가락으로 저어대자 뻣뻣하던 것이 곧 부드러운 국수가 된다.


"하이고... 얄구지라... 세상에 밸기 다 나온다..."


"이기 인자 끝난기가? 오데 내 쫌 무 보자~"


"내도.. 하이구야... 우리가 머 여코 끼린거보다 훨씬 맛있다"


"내도 쫌 도라.. 내는 밍밍한기 밸로다.. 칼칼해야 맛있지"


"그라모 땡초 좀 써리가 여서 묵지 머..."


"짐치하고 묵으모 된다 아이가"


지방의 어느 한 소도시에 양색시가 전파한 신문물... 라면의 등장이다.

친정 엄마가 스물여덟 되던 해 라면을 처음 경험 하게 된 사건이었다고 한다.

수돗가에서 맹물을 부어와 조그만 봉지에 든 가루를 탈탈 털어 넣으니 금세 소고깃국인지 닭국물인지 모를 환상적인 맛이 나는 그것은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만한 사건이지 않았겠는가?

나는 라면이 나보다 먼저 있던 세상에 태어났기에 그런가 보다 싶겠지만 사는 동안 이러한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세대는 감흥이 또 다르지 않을까 싶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가끔씩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라면에 대한 첫인상은 여러 사람들에게 강렬함을 남겼고 머지않아 그것은 전국민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나라 라면 생산량은 어마어마하다.

년간 평균 한 사람당 약 70개의 라면을 소비하고 단순한 봉지 라면에서 컵라면까지 그 형태를 달리하며 약 80여 종의 브랜드가 생산되며 뿐만 아니라 한류 열풍을 등에 업고 한국 라면은 세계 시장에서도 엄청난 인기 상품이 되었다.

약 128개국에 우리나라 라면이 팔리고 있는데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이 공존의 히트를 치며 라면매출이 작년 한 해 동안 1조 원을 넘었고, 농심식품도 2조 5천여 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는데 오히려 해외시장에서 더 많이 판매가 되고 있다고 한다.


라면의 역사를 따져 보자면 현재의 인스턴트 라면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극심한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 대만계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에 의해 1958년 8월 25일, 산시쇼쿠산에서 생산한 치킨 라면이 최초라고 한다.

당시 미군 구호품으로 밀가루가 많았기에 이를 국수로 만들어 기름에 튀겨낸 뒤 수분을 증발시켜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처음에는 면 자체에 스프를 버무려 생산되었단다.

라면의 어원은 중국의 납면(拉麵 라미엔)이 일본에서 라멘으로 불렸고 그것이 다시 우리나라에서 라면이라 불리게 되었다.

우리나라 라면의 역사는 1963년 9월 15일 삼양식품에서 나온 '삼양 라면'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

1950년대 말 보험 회사를 운영했던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이 일본으로 경영 연수를 떠났을 때 라멘을 접하고 전쟁 후 식량난을 겪는 우리나라 사정에 알맞은 식품인 것 같아 들여왔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식 입맛에 맞도록 만들어진 닭고기의 하얀 국물은 칼칼하고 매콤한 음식을 즐겨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성과는 맞지 않아 초기에는 별 호응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스프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며, 종로에서 시식회를 여는 등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여러 시도를 하다 청와대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라면을 시식한 후, 한국인들의 맵고 짭짤한 입맛에 맞도록 고춧가루가 들어가면 더 좋겠다는 말에 그때부터 우리나라 라면은 매운맛을 기본으로 하는 소고기 육수 맛의 빨간 라면으로 진화하며 소비자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1986년에 농심에서 기획상품으로 출시된 '신라면'을 기점으로 매운 라면의 구분이 한층 더 확실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유층 가정에서 손님이 오면 대접하던 고급 음식이었던 것이 80년대 초중반을 거치며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최초 라면 출시 가격이 삼양 라면 기준으로 120g, 10원에 팔리던 것이 지금은 수백 배로 가격이 올랐지만 그래도 아직은 서민 음식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주식이자 간식이다.

생라면에 수프를 골고루 뿌려 먹으면 과자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낼 수 있는데 이를 본 따 뿌셔먹는 과자가 나왔지만 생라면을 부숴 먹는 그 맛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그러려면 면발이 얇은 스낵면이 제격이긴 하나 다른 종류여도 상관없고, 면이 눅눅하다 싶으면 전자레인지에 약 2~3분, 에어프라이어에 3~4분 동안 수분을 날리면 더욱 바삭하고 과자에 가까운 식감을 맛볼 수 있다.

또한 더 잘게 부순 라면을 달군 팬에 기름을 둘러 볶아 설탕과 수프를 섞어서 먹어도, 봉지째 물을 부어 불려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되는데 이때 삼십 센티 자의 날을 세워 부수면 잘 부서지고 봉지째 발 뒤꿈치로 살살 밟아도 된다. ^^

그것뿐인가... 콩나물을 넣은 해장에 알맞은 라면, 순두부를 넣어 끓인 라면, 볶음 라면, 냉채 라면 등등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도록 다양한 재료와 환상의 궁합을 이루어내는 다재다능한 탄수화물 식품이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수많은 맛의 라면이 생산되었다가 사장되기도, 지금까지 판매되기도 하는데 항간에는 추억의 라면 사진이 떠돌며 해당 라면을 알고 있다면 아재로 인증된다고 했다.

오래전 단종된 추억의 라면들이다

몇 년 전엔 단종되었던 골드 라면이 한정판으로 출시된 적이 있었는데 나로서는 어릴 때 먹었던 골드 라면이 그야말로 골드 한 맛이었기에 추억을 생각하며 구매해 봤지만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세월이 변한 건지 예전의 맛을 느낄 수 없어 그 맛을 찾아보려 열댓 번은 더 끓여 보았지만 나를 황홀케 했던 그 맛을 도대체 찾을 수가 없어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면 음식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사실 매일 라면을 먹으라 해도 질리지 않지만 탄수화물 중독자인 나는 건강을 위해 한 달의 한 두 번으로 제한하고 있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K 라면 시장을 반영하듯 요즘은 홈플러스마다 그 규모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라면 박물관 콘셉트로 한쪽 면이 추억의 라면 봉지부터 지금 판매되고 있는 라면들이 주욱 전시되어 있는 기획 판매대가 세워졌다.

또한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인 홍대의 CU 편의점 중 홍대 상상점에는 일명 '라면 라이브러리'라 하는 라면 도서관이 생겨나 데이트 장소로도,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방문한 여행자들의 맛집 필수 코스로 인증샷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본래 편의점이지만 매장 한 면인 가로 6m, 세로 2.5m 크기에 총 100칸짜리 라면 진열장이 있으며 이름처럼 230여 종의 국내외 라면이 책처럼 빼곡히 꽂혀 있다단다.

더구나 라면을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는 4개의 조리대와 시식대가 비치 되어 있으니 간편한 컵라면이든 봉지 라면이든 토핑을 달리하여 기호대로 직접 조리하여 먹을 수 있다.

이런 콘셉트가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았는지 하루 평균 라면 판매량이 약 500개로 4개월도 채 안되어 누적 판매 5만 개를 돌파했으며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전체 매출의 70%가 넘는다고 한다.

곧 다른 지역에도 분점을 내려는 것인지 외국인과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명동, 성수점 등이 물망에 오르는 중이라고 한다.

나도 언젠가 우리 아이들과 함께 들러볼 의향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요즘도 대학로에서 '라면'이라는 제목의 연극이 상연 중인 것으로 아는데 나는 몇 년 전 남편과 연애 때처럼 손을 꼭 잡고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함을 주는 음식이라고나 할까?

하긴 우리 동네에도 무인 라면 가게가 생겨 직접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합정동에는 '편한 커피 도서관 라면'이란 곳이 있다는데 예로부터 읽을거리와 라면은 찰떡궁합 아닌가? 만화방에서 먹는 라면도 별미다.

pc방에서도 라면을 즐기는 듯하고, 출출한 밤 야식으로의 라면이 죄책감은 느껴지지만 치킨이나 피자처럼 무 부담스럽지도 않고, 배달도 필요 없으며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묘한 행복감을 맛보게 한다.


이렇듯 때와 장소, 여러 가지 형태와 모양, 다양한 식재료와의 조화에서 전혀 그 위상을 잃지 않는...

도대체 라면이란 녀석의 매력은 어디까지인가...


라면에 대한 첫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 라면을 찬양하는 난데없는 결말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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