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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다방 그 후

by 산들바람

작년 12월 1일에 브런치 스토리에 첫 글을 올리고 2주쯤 지났을 때 '숙다방'이란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03화 숙다방 (brunch.co.kr)

그 후로 공개된 일기장처럼 이런저런 글을 올리며 나름대로의 즐거운 시간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2월 초쯤 통계 버튼을 눌러보니 유입 키워드에 '추억의 숙다방'으로 검색해서 '숙다방' 글을 읽은 사람이 그날 하루에 몇 명씩 되었다.

내가 올린 글에는 '추억'이라는 단어도 들어가고 '숙다방'이란 단어도 들어가지만 결코 '추억의 숙다방'이란 표현을 한 적은 없는데 같은 날 똑같은 검색어로 여러 번 글이 읽혔다는 것은 그저 단순한 우연은 아닌 듯했다.

그 이후로도 유입 키워드를 보면 '추억의 숙다방'이라 검색해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 같았다.

이 동네 근처 사는 누군가가 먼저 읽어보고 지인들에게 알려준 것일까?

그렇다면 숙다방 사장님도 내 글의 존재를 알고 계시는 걸까?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지하 계단을 내려가기 전 숙다방 유리문엔 '영업 중'이라 쓴 에이포 용지를 새롭게 붙여 놓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며칠이 더 지나자 건물 자체를 리모델링하기 위해서인지 외벽에 뼈대를 만들고 보양재를 씌우는 작업을 했다.

다른 사무실은 모두 영업을 잠시 그만둔 듯했지만 숙다방만은 '영업 중'이라는 종이를 떼지 않았고, 배너도 세워두었다.

그 와중에도 '추억의 숙다방'이라는 내가 쓰지 않은 문구로 검색되어 나의 글은 계속 읽히고 있었다.


리모델링은 생각보다 빨리 완성되는가 보다.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하게 리모델링을 마친 숙다방의 작은 건물이 번듯하게 서 있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는다.

예전의 모습을 벗어버린 new 숙다방... 아니 new 숙커피숍


XJA88Gl_9hpcpLqfrgfKgV76alY 리모델링 이전의 숙다방 건물


이젠 빛바랜 '유정다방'이란 간판은 흔적도 없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내가 찍어둔 사진 속에 존재하게 된다.

몇 년 동안 이 동네에 살며 거의 매일 보아오던 익숙했던 건물이 이제 막 지어진 듯 한 반들반들한 대리석 건물로 바뀌며 낯설기는 했지만 세월의 흐름을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숙다방 사장님이 건물주이실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내가 쓴 글의 영향으로 건물의 모습이 달라진 것은 아닐지라도 누군가 우연히 읽어보게 된 '숙다방'이란 글이 서로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래서 글을 쓰는 걸까? 기분이 이상하다.

하긴 나처럼 일천한 지식을 가진 자가 쓴 글도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김치 국밥을 아시나요?'라는 글이 구글과 다음 메인포털에 올라가며 그야말로 떡상을 하게 된 거다.

하루 이틀에 머무르지 않고 일주일 내내 꾸준히 읽히며 몇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니 부족한 글재주에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다.

무슨 글일까 싶어 찾아 들어온 분들께 실망을 안겨 준 것은 아닌가 싶은 기분이기도 했다가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 보겠나 싶은 생각에 헤벌쭉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조회수가 많건 적건 나의 글에 더한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부족한 글솜씨야 어쩔 수 없더라도 진실되고 욕심 없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자...


숙커피숍이라 쓰여 있지만 나는 숙다방이 더 정감이 느껴져 나 혼자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숙다방의 내부도 많이 달라졌을까? 다방에 들어가 볼 용기가 없어 상상만 하고 있을 뿐이다.


혹시 숙다방 사장님이 이 글을 읽게 되신다면....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숙다방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합니다.

저는 오래지 않아 이 동네를 떠나게 되지만 그 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이 동네를 지켜주세요...

저에게 좋은 글감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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