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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Dec 18. 2023

숙다방

요즘은 사라진 추억의 '다방'....

개인 전화기가 없던 시절의 다방은 약속의 장소이며, 헤어짐의 장소이며 긴한 밀담이 오가던 장소이고, 중요한 비지니스의 장소이고 또는 레지 언니들이 옆에 앉아 남자 손님들에게 진한 농담을 하던....

세월이 흐르며 다방은 순수한 의미가 변질되며 티켓 다방 등이 성행하던 시기도 있었다.


어쨌든 다방은 나이 지긋한 세대들에게 수많은 추억과 이야기가 있던 곳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며 그마저의 모습도 거의 사라지고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젠 각종 체인 형식의 대형 카페들이 즐비한 세상이다.

가히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에 버금가는 기나긴 이름을 가진 별난 음료가 생겨나고, 카페를 그리 즐겨찾지 않는, 그리고 커피를 못마시는 동네 아줌마인 나로서는 그냥 적당한 차 한잔에 괜히 여유로운척 분위기를 잡아보는데 많은 의의를 두는 공간이다.


 우리 동네는 법원이 근처에 있다보니 약속과 만남이 잦은 탓에 유난히도 카페가 많다.

문을 열고 나가면 골목 골목, 한집 건너 한집이 카페이고 대형 카페부터 오밀조밀하고 자그마한 인형같은 카페까지 그 종류도 다양한데 그 속에서도 빛바랜 간판의 '숙커피숍'이 단연 내 눈을 사로잡았다.

건물 밖을 찬찬히 뜯어보자니 건물 윗쪽에는 빛바랜 '유정다방' 간판이 붙어있다.

흐르는 세월 속에 유정다방도 새시대에 발 맞춰 나가고자 한 까닭이었는지 지금은 '숙커피숍'으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중이기는 하나 요즘 유행처럼 통유리도 아니고, 하늘하늘한 커튼도 없이 지하에 있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의 태를 완전히 벗어버린 모습은 아닐듯 하다.  


그러한 '숙다방 또는 숙커피숍'은 호기심 많은 우리 큰딸아이의 오감을 자극하는데 적절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도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다방 문이 보이지 않는 지하..

그 미지의 공간이 너무도 궁금했던 우리 딸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열어 보았고, 어두컴컴한 몇개의 계단을 더 내려가는 어색함이 이 아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입구에서 보아도 밝지 않은 내부에 아무도 없는 을씨년스러운 구식인테리어가 낯설기는 했지만

호기심 많고 엉뚱한 열여섯(그 다방을 방문했던 나이가 열여섯이었다) 그녀는 절대 뒤돌아가지 않는다.


몇개의 계단을 더 내려가자 카운터가 보였다.

그러자 카운터에 선 마담 할머니(열여섯의 아이가 보기에는 할머니였다)또한 한계단 한계단 호기심 어린 눈으로 조심스레 내려오는 아이를 뜨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이 아이 또한 할머니의 예사롭지 않은 몸치장을 하나 하나 훓어보며 내려가고 있었다.

옛날식 다방의 정서를 전혀 모르는 21세기 아이로서는 진한 눈썹 문신에 거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크고 무거워 보이는 왕귀걸이, 진한 화장을 한 나이 많은 할머니가 카페의 카운터에 서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낯설기도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을 것이다.

둘은 짧은 듯 긴 그 시간동안 많은 궁금증을 가진채 조용히 서로를 끝까지 주시하며 바라보았고,

이 아이가 카운터에 다다랐을 때 마담 할머니가 마침내 꺼낸 첫마디는........


"..... 일 하러 왔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는 그녀는 너무나 천진한 목소리로,


"네??? 저 커피 마시러 왔는데요?"


라고 하자 왠지 모르게 둘 다 동시에 '빵~'하고 웃음이 터졌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의아함을 품었던 자신과 이 상황이 너무도 우스웠는지 한참동안 그렇게 마주보고 웃었다고 했다.

아이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마담 할머니는 커피를 가져와 아이 앞에 마주 앉았다.


"아니, 여길 어떻게 온거야?"  


"여기는 어떤 곳인가 궁금해서요. 다른 카페랑 다르게 생겼잖아요"


"어때? 괜찮아 보여?


"네, 옛날 정서가 느껴지는 것 같고....

저는 나름 괜찮은데요?"


"다음에도 또 와...."


"네, 할머니"


라며 정겨운 대화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을 하자니

이제는 나이 들어 젊은 사람 하나 오지 않는 그야말로 심심하기 이를데 없는 커피숍을 운영하는 마담 할머니에겐 산뜻한 경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곳 숙다방에 혼자 들어가 차를 마시려는 과감한 시도를 하는 십대가 또 있을까?


나에게는 어릴적, 누군가를 기다리러 따라 들어간 꽤나 넓은 다방 풍경이 생각난다.

붕어를 키우는 큰 수조가 있었고, 갈색 다기컵에 보리차가 나오던 겨울 풍경...

21세기 10대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다방의 추억을 갖게 된 우리딸과 서로 이야기 주제가 생겼다.


여러분들은 다방에 대해 어떤 추억들이 있으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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