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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an 01. 2024

나의 산업혁명 이야기

18세기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있었다면 우리 집에선 2018년 가전혁명이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이름하여

"건. 조. 기!!!"


여섯 명의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빨래를 넌다는 것은.....

텔레비전 화면 속 예쁜 배우들이 홈드레스를 입고, 파란 잔디 정원에서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인 채로 가지런히 빨래를 너는 모습과 극과 극을 이루며 자괴감을 느끼게 했다.

주택에 살 땐 그늘 한점 없는 옥상에서 그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고 햇빛에 눈이 부셔 눈을 찡그려가며, 직사광선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채 통돼지 바비큐가 되어 익어가듯 빨래를 널고, 외출 시 혹여 비가 오면 빨래 생각에 후다닥 뛰어 올라가 거의 마른빨래를 정신없이 걷어내었다.


조금  업그레이드가 되어 아파트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 때도 여름이면 에어컨 돌아가는 거실을 그리워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겨울엔 콩쥐처럼 손 호호 불어가며 여섯 식구의 빨래를 넌다는건 참 힘들고 혹독한 일이었다.


그러나 2018년 8월.

비싸서 몇 번을 망설이던 건조기를, 내 하루 최고의 보상과도 같던 꿀잠과 맞바꾸는 고된 검색 끝에 리퍼 상품을 싸디 싸게 차이나 제품으로다가 이십여만 원에 구입하게 된다.

사기 전엔 잘 될까 걱정도 많았는데 지금껏 고장 한 번 나지 않고 거의 매일, 때로는 하루에 네댓 번씩 잘 돌아가고 있으며, 이 신박한 물건이 생기고 나의 삶의 질도 한층 달라졌다.


그런데..... 그렇다.....

그런 나에게 2차 가전 혁명이 찾아온다.

(나란 사람, 혁명을 참 좋아하는 듯하다)


그것은 이름하여 '초음파 식기 세척기!!!!'


여섯 식구 설거지...

다 끝난 듯하면 어디선가 또 나오고, 또 다 끝난 것 같으면 큰아들이 방 안에서 뭘 쳐먹.....

음.... 뒤늦게서야 그릇 들고 나오고 

둘째 방에 그릇, 컵 짱밖혀 있고.....

마치 설거지는 아무리 처치해도 어디선가 계속

나타나는 좀비처럼 나를 괴롭혔다.


일이 있어 저녁 늦게서야 고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분명히 아침에 히말라야 산봉우리처럼 높이 쌓인 설거지를 하고 나갔는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싱크대 한가득 그릇이 쌓여 있으니 지 할 일이라도 똑바로 하면 다행인 제정신 아닌 사춘기 세명과 미취학 아동에겐 강 건너 불 본듯한 일에 불과했다.


코로나 시기, 집에 애들 바글바글 할 때는 삼시세끼 차려 먹으며 매번 산더미처럼 쌓이는 때려죽일 넘의 그릇들......


내 집도 아닌데 매립 식기세척기가 웬 말이며, 비싸기도 비싸고 용량도 너무 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음파 식기 세척기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싱크대 안에 쏙 들어가는 34-32-19.5의 아담한 사이즈...

내가 본 메이커는 와디즈 펀딩에서 구매하기도 하고, 파란 창 쇼핑에서 약 72만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금액을 보고는 또 생각한다.


'이것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물건인가? 어차피 또 헹궈야 하는데? 우리 식구는 여섯 명이고 이것은 턱없이 작은 물건인데?'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식기 세척기와는 다르게

각종 과일, 채소의 잔류 농약 배출, 안경, 액세서리  세척, 오징어, 전복 등 세척, 고기 핏물 제거 및 잡냄새 제거가 가능하다는 합리적인 근거를 들이대며 잠자리에 들어서도 매일밤 그 아이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급기야 중고 제품을 뒤져본다.

오십만 원 중반도 나에겐 비싸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삼십만 원대에 이 물건이 나온 것이다.

당장 연락해서 현금 삼십여만 원을 시원하게 송금했다.


드디어 그렇게도 기다리던 세척기가 왔다.

싱크대 속에 쏙 들어가는 작은 사이즈이다 보니  

내경은 더 작을 수밖에....

이 코딱지만 한 데서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이 아이는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 내었다.

일 년에 네댓 번 설거지를 돕는 딸보다도,

아예 거들떠도 안보는 아들놈들 보다도 훨씬 나를 많이 돕고 있었다.


얘는 겹쳐서도 사용이 가능한지라 왕년 테트리스 실력을 뽐내며 차곡차곡 세우고 눕히고 알차게

그릇을 넣으면 된다.

칼도 넣고, 작은 냄비도 넣는다.

온수를 사용해 전용세제를 팡팡 두어 번 뿌리고

전원 버튼을 누르고 이십 분쯤 있으면 뽀득뽀득

설거지가 되어 있다.

물이 아까우면 처음엔 깨끗한 그릇 넣고 나중에

 더 더러운 그릇을 넣고 재활용도 하고, 전용 세제고 뭐고 기존 쓰던 거 적당히 쓰면 되고, 이십 분, 십분, 오분, 상황에 따라 설거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손이 들어가기 힘든 기다란 보온병, 애들 먹은 컵라면 스티로품, 빗금 쳐지고 홈이 파여 양념이 낀 배달 그릇, 미끌미끌한 마라탕 양념이 잔뜩 벤 플라스틱 용기, 음식물 묻은 국포장지, 모두 대충 헹궈 이 아이에게 맡기면 너무나 편하다.


어쩌다 보니 제품 홍보 같지만 나는 중고로 산지라 홍보와는 상관도 없고, 그냥 내가 너무 편하다는

얘기를 하자는 것이다.


명절에도 얘가 채소, 생선, 해물 다 씻었고, 설거지도 얘가 다 해줘서 고맙다.

헹구기는 해야 하지만 설거지가 잘 되어 있어서 헹굴 것도 많지 않다.

설거지 통도 씻어야 하지만 남은 물에 하면 기름기도 안 남고 별로 어렵지 않다.

느리던 뭐 하던 어쨌든 설거지는 되고 있는 거니까....

이제는 요령이 생겨 스테인 재질의 설거지 받침대(늘이고 줄일 수 있는)를 싱크대에 걸쳐놓고, 식기 세척기를 그 위에 올려놓아 공중부양 해서 사용하면 밑바닥이 크게 더러워지지 않고, 아래는 또 그릇들이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나는 얘를 막 우리 집안에 시집온 앳된 동서쯤으로 생각하고 혼자 역할극을 한다.

집안일 한 번도 안 해보고 시집와서 손은 느린데

천성이 깨끗한 인물로 설정하고...

가족 모임에 다 같이 모여 음식 먹고 난 후 설거지를 아랫 동서가 돕는데, 동서가 거품설거지를 느리게 하지만 아주 깨끗하게 해 주면 나는 헹궈서 엎어만 놓으면 된다는 설정이다.


"동서, 힘들지?"


혼잣말을 하면서 식기 세척기를 격려해 준다.

내가 사용하는 제품이다.

소음이 조금 있지만 나는 상관없다.

우리 집 4남매가 더 끄럽다.

초음파 때문에 물에 손이 닿으면 전기가 찌릿찌릿 오는데 이게 은근히 마사지 효과가 있다니 점점 푸석해지는 내 얼굴까지 넣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to  나에게 생활의 혁명을 선물해 준 건조기와 식세기야...

     세상에 발명되어 줘서 고맙다.

     환경문제 때문에 세제를 쓰는 것이 조금 미안하긴 한데.... 그래도 말이야....

     우리 여섯 명의 살림을 하는 나를 미치지 않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워....

     오랫동안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줘....

     사... 사..... 랑?

     음..... 좋아해.......


이제 세상은 점점 더 간편화, 간소화되어가며 가사 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예전엔 국물 맛을 내기 위해서도 오만가지를 손질해 넣고 끓였는데 요즘은 갖가지 원료를 넣어 압축형으로 만들어진 알약 같은 것을 몇 개 넣으면 요술 같은 맛을 낼 수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명절이면 제사도 없고, 시어머니도 안 계신 외며느리인 나 혼자 산더미처럼 쌓아둘 만큼의 많은 양의 지짐과 식혜, 수정과, 묵 쑤기 등을 하며 내 신세를 내가 볶아왔다.

우리 딸은 자기 또래의 엄마들은 다 그러고 사는 줄 알았는데 명절이면 여행을 가거나 소량의 음식을 사 먹기도 한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나 또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며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고 케이터링 서비스로 명절 음식을 시켜 보기도 했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또한 3대 이모님(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의 등장으로 관절염과 주부습진 등의 질병예방 및 시간의 극대화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절약된 그 시간만큼 잉여 시간이 늘어나야 할 일이지만 희한하게도 빼곡한 스케줄이 더욱 꽉꽉 들어차 매일 시간이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고 사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이것 또한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말했던 '풍요 속의 빈곤' 이론과 비견 할 만한 논리일까?


아.... 그리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있어 달라던 식세기가 얼마 전 설거지 중 소켓이 퍽하고 나가는 소리가 들려 본사에 전화 문의를 해 봤더니 유상수리를 해 주겠다며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다.

수리비 2만 원과 배송비 만원이었는데 구형을 신형으로 업그레이드하면 팔만원에 내 외경을 바꾸고, 진동가드를 덧대어 소음이 줄어들고, 내경의 재질이 엠보싱에서 맨질맨질한 통으로 바뀌어서 음식물 색이 배이지 않는다기에 신형으로 업그레이드된 동서가 와 주었는데 두 번 쓰고 같은 자리의 소켓이 또 '펑'하고 터진다.

다시 박스에 포장은 해 뒀지만 이걸 또 고쳐서 쓰나? 하는 토라진 마음에...

보내지도 어디 처분하지도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저렇게 있다.

짐덩이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있던 것이 없어지면 더없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정들었던 동서를 보내고 새 동서를 들여야 한다는 것을.....

이젠 정말 요즘들 많이 사용하는 그런 업그레이드된 동서를 들여야 할까 보다...


살림도 장비빨이다!!!


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새해가 되었네요...

모두들 건강하시고 많은 소원 이루는 새해 되세요~

저는 지난 해에 지인을 통해 브런치를 만나게 되어 즐거웠답니다.

새해에도 이곳에 뜻깊은 많은 일들이 채워져 가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들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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