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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Mar 11. 2024

경상도 사투리 능력고사

몇 년 전 어느 날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왜 장모님은 말씀하실 때 꼭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을 나누어서 얘기하셔?"


"엉? 엄마가?? 언제? 내가 듣기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아니야, 정말 자주 하시는 말씀인데 그걸 몰랐다고? 어머니는 항상 남한 사람을 강조하셔!!"


"그럼, 남한, 북한 이런 식으로 표현했단 말이야?"


"아니... 북한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남한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셔.. 잘 들어봐..."


"그래?????? 뭐지????"


그날부터 궁금해졌다. 내가 듣기로는 한 번도 남한이라는 표현을 한 적 이 없는데... 뭘까? 아니 그리고 대한민국이나 한국도 아니고 탈북자도, 실향민도 아닌 우리 엄마가 남한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그러는 걸까.... 한참이 지나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엄마와 어딜 다녀오며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던 '남한'이라는 말, 아~!!! 뭘 보고 그렇게 말하는지 갑자기 번뜩 떠오르는 게 아닌가.... 버스 안에서 나도 모르게 외쳤다.


"아~ 알았다!!!"


"머라카노?"


"크크크크크크.... 아이고 웃겨... 아~ 그걸 보고 그렇게 말 한 거구나..."


"와그리 혼자 웃고 이라노... 뭘 보고 이라노?"


"아니 그걸 왜 지금까지 몰랐지?"


나는 몇 달 전 남편이 말했던 '남한과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해 주었다.


"내가? 내가 은제 남한이라 카드노... 내사 마~ 한 번도 그래 얘기한 일이 없그만은...."


친정 엄마가 나를 늦게 낳은 탓에 내일모레면 아흔바라보신다. 해가 갈수록 아픈데도 점점 늘고 기력이 달리는 등의 노화 현상을 겪으며 서글픈 감정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말하는 중간중간... '우리 그치 나마안(나만... 나이 많은) 사람들은'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아무래도 '나이 많은 사람'의 경상도식 발음을 '남한 사람'이라 들었을게 분명했다.

생각하니 끝도 없이 웃음이 나서 계속 킬킬거리며 웃었다.


이건 단순히 발음의 문제만이 아니다. 경상도 방언은 악센트를 어디에 주느냐에 따라 단어의 뜻과 맥락이 현저히 달라진다.

이것도 경상도 어느 지역이냐에 따라 앞글자에 악센트를 주는지 뒷 글자에 주는지 다르긴 하지만 우선 나의 고향인 경상남도 마산 식의 표현으로만 보자면 남편이 알아 들었던 '남한 사람'을 경상도식으로 표현할 때는 '남↘한↗사↗람↗이↘'라고 해야 하고, 엄마가 말하는 '나만 사람'은 (나이↗ 많↘은↘사람↘) 짧게 축약된 발음이 많은 경상도식이라면 나↗만사람↘이라 해야 한다.


의문형인 경우도 경상도에서는 오히려 끝을 내리는데 오죽하면 'really?' 진짜? 정말↗?이라고 해야 하는데 어떤 경상도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really↘'(진짜가↘)라고 할 때가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경상도 사람들이 표준말을 흉내 낼 때는 단어는 그대로 방언을 쓰면서도 끝을 올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어설픈 흉내를 내다 여러 사람들을 웃게 만들 수도 있다.


어쨌든 남편이 오해했던 '남한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자 수년 동안 혼자 오해하며 알아들었던 남편도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아는 서울 토박이 지인이 삼십여 년 전 한산도 출신 남편을 만나 결혼 전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예비 시 할머님이 지인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야야~ 정지이 드가가 행기피 가~꼬 한데 나가 뽁뽁 뽀라오이라"


한 단어도 알아듣지 못했다던 지인은 남편 될 사람에게 '자기야, 지금 할머니가 뭐라고 하신 거야? 나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라고 했단다.


위에서 이야기한 데로 단어 하나하나에 엑센트가 들어가고 말투도 빠르다 보니 문자로 써 놓고 볼 때 보다 직접 들었을 때는 못 알아 들었을 가능성이 더 많다.

풀이를 하자면 "얘야, 부엌에 가서 행주 가지고 밖에 나가서 깨끗하게 빨아 오너라"라는 뜻이다.


뭘 검색하다 우연히 경상도 사투리 능력시험이란 게 여러 버전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남편에게 문제를 내 본다.


문제) 다음 대화에서 빈칸에 들어갈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영철: 나는 한화야구팬인데 너도 한화 팬이니?

민규: _______. 내는 롯데팬이다.


① 어  ② 어어   ③ 어어어   ④ 어어어어


몇 초간 생각하던 남편은 2번을 골랐으나, 땡!

정답은 3번이다.

민규의 대답 중 뒤의 내용이 부정어이기 때문에 앞에도 부정하는 표현이 와야 하는데, 보통 경상도에서는 부정의 표현으로 '어'와 '으'의 중간 발음으로 '어↘어↗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경상도 사투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지 원하시는 분들은 경상도 사투리 능력 고사 문제 중 몇 가지를 퍼 왔으니 심심풀이로 한 번 풀어보셔도 좋겠다.


1. 다음 대화에서 빈칸에 들어갈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사람 1: (사진을 보면서) 이거 니가?

사람 2: _______. 내 아이다.


① 어  ② 어어   ③ 어어어   ④ 어어어어


*풀이: 사람 2가 자신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위에서 설명했듯 어어어 (상황을 부정할 때 쓰는 말)가 정답이다!


2. 다음 문장의 뜻을 올바르게 해석한 것은?


 "뭐 뭇노?"


① 뭐 물어보는 거야?  ② 뭐 묻었어?


③ 뭐라도 좀 먹었어?   ④ 뭐 먹었어?



*풀이: 정답은 4번, 뭐 뭇노? - 뭐 먹었어?이다.

비슷한 발음으로는...


뭐 뭇나? - 뭐라도 좀 먹었어?(걱정의 의미)


뭐 무꼬? - 뭐 먹을까?(청유형)



3. 다음 중 밑줄 친 문장의 뜻을 올바르게 해석한 것은?


어어어 그 옷 파이다.


① 계이름 파  ② Pie  ③ 별로다   ④ π



*풀이: 경상도에서는 별로, 나쁘다 등의 부정적인 뜻의 단어로 파이다라고 표현한다.


예시) 사람 1: 여기 갈까? 이 카페 어때?


사람 2: 거기 전에 가봤는데 영 파이더라.



4. 다음의 뜻풀이 중 옳지 못한 것은?


① 가가! - 가지고 가!

②가가? - 아까 그 사람이니?

③ 가가 가가? 그 사람이 아까 그 사람이니?

④ 가가 가가가! - 그 사람이 이 사람이구나!



*풀이: 정답은 4번, 가가 가가가!는 (성이) 그 애가 가 씨니?라는 뜻이다.


5. 다음 중 경상도 사투리가 아닌 것은?


① 정구지 ② 행님 ③ 어제 아래 ④ 솔찬히


*풀이: 정답은 4번,

정구지-부추, 행님-형님(햄-형), 어제 아래- 그저께의 경상도 방언, 솔찬히-상당히의 전북 방언


6. 다음 문장의 뜻을 올바르게 해석한 것은?


단디 해라.

① 요령껏 해라

② 빨리 해라

③ 제대로 해라

④ 대충 해라


*풀이: 정답은 3번, 단디란 단단하다의 사투리다.(단단하다 - 확고하다, 헐겁지 않다 등)


7. 다음 수식 표기를 올바르게 발음한 것은?



① 이↘에이↗승 이↗에이↘승


② 이↘에이↘승 이↗에이↗승


③ 이↗에이↘승 이↗에이↗승


④ 이↗에이↗승 이↘에이↘승



* 풀이: 정답은 1번, 경상도에서는 e의 억양을 2보다 더 세게 발음하는데 2의 경우 2↘라고 하고 e의 경우 e↗라고 한다.


외에도 여러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간단하게 가지만 가지고 와 보았다.

비록 오래 살지는 않았어도 나 또한 경상남도 태생이고, 부모님의 사투리를 쭈욱 듣고 살아왔지만 참 웃기다 싶은 사투리도 많다.

어떤 사람은 군대 갔을 때 후임병에게 '불 쫌 써라' 라고 하니 못 알아 들었단다. 이때 불을 써라... 는 '쓰다'가 기본형으로 '불을 켜라' 정도의 뜻이다.

'빼다지 열어 바라' 여기서 빼다지란 서랍처럼 끼웠다 뺐다 하는 것을 뜻하는데 단어를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뭐 그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다 싶지만 만약 누군가가 '재까치 가꼬 온나~'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것을 가지고 가겠는가? '재까치'는 젓가락의 경상도 방언으로 젓가락과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이는 듯 익숙지 않은 이들은 알아듣기 힘들지 않겠는가 싶다.

집에서 사투리를 잘 사용하지 않는 내가 방금 전 남편에게 물어보니 전혀 모르겠단다...


하긴... 나도 충청도가 고향이신 시어머니와 함께 명절 준비를 하는 중


 "이거 이제 정궈놔라"


"네? 아~~ 네에..."


그릇을 물에 담가둬라 대충 이런 뜻일까? 싶어 싱크대에 반죽 그릇을 넣고 물을 불려 놓았는데 어머님이 아무 말씀이 없으신 걸 보니 내가 잘 알아들었는가 보다.


"어머니 있잖아요... 저 사실은 정궈놔...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눈치껏 했는데 맞았나 봐요?"


어머님은 그런 며느리가 귀여우셨는지 한껏 웃으셨다.


"아이고... 탑식이 모아 논 걸 밟으면 어떡혀~"


여러분은 탑식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을까?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본 단어였는데 눈치로 보아서는 '먼지'쯤인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사전을 찾아보니 '먼지'의 충청도 방언이란다.


넓지도 않은 이 나라 안에도 제주도,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경기도, 더 넓게는 이북 사투리까지 팔도 사투리가 얼마나 다양한지....

엄마와 대화할 때 '나만 사람'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때 일이 생각나 혼자 키득거린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자전거 바람 빠진 타이어마냥 피식 웃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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