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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Feb 26. 2024

더부살이의 설움을 아는 고양이 가장

큰딸아이가 극심한 사춘기 시절을 보내며 집단폭행 피해자가 되는 큰 사건이 있었다.

자세한 경위는 나중에 다른 글에 후술 할 예정이지만 어쨌든 그 후유증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큰 딸은 마음의 치유를 위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 고양이가 오게 된 경위 또한 후술 할 예정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4남매인 우리 집에 털 달린 짐승이 오게 된 것이다.

강아지라면 몰라도 고양이는 집안에서 처음 길러보는지라 이것저것 알고 싶은 게 많아 유명하다는 고양이 카페에 가입을 하고 글을 읽던 어느 날, 자살을 암시하는 어느 이용자의 글을 보게 되었다.

이유인즉슨 중개 수수료를 아껴보고자 직접 월세를 얻었다가 상대가 보증금을 가지고 도망을 가버려 전재산을 다 잃게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이미 어린 두 아이가 있고, 뱃속에 셋째가 있다는 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댓글과 쪽지를 보내며 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러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어찌어찌하여 마음을 고쳐 먹은 그 사람은 친정인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키우던 네 마리의 고양이는 모두 호텔에 보내진 상태였다.

그에게 많은 쪽지를 보내던 한 사람 중 내 글이 그나마 의지가 되었던 까닭인지 개인적으로 쪽지를 보내오고 전화번호까지 알려주게 되며 간간이 소식을 알려주어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 저녁 당장 고양이 네 마리를 맡겨 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왔다.

그 당시 큰딸아이에게 2차 폭행이 이루어지며 그 동네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자 이사가 확정된 상황이었고, 계약서 도장을 막 찍기 직전 계약서 말미에 애완동물은 절대 기를 수 없다는 글을 보게 된 상황인지라 우리 집에서 3개월쯤 기르던 아기 고양이를 아쉽게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는 심란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남편은 고양이를 집에서 기른다는데 크게 반대했었고, 딸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열어 허락을 했는데 다 큰 고양이 네 마리를 지금 당장 임시 보호해 달라니....

고양이 네 마리를 한 달 동안 호텔에 맡겼지만 호텔비를 지불할 돈이 없어 업주가 지금 당장 네 마리 고양이를 모두 길에 풀어놓겠다고 협박을 한 상황이라고 했다.

제발 일주일만 맡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그러마 하고 약속을 했고, 곧 운전을 하여 집으로 오겠단다.

나는 그동안 장을 봐 와서 큰 타포린 가방에 아이들과 임신부가 먹을 과일과 밑반찬, 음료수 등을 가방 두 개나 되게 싸 놓고는 임신부가 무거운 고양이 네 마리를 데리고 오게 하지 말고 너희들이 미리 나가서 케이지를 들고 오라며 첫째와 둘째를 지하 주차장으로 미리 내보낸 상태였다.

준비한 음식 가방과 고양이를 맞바꾸고 집안으로 들어오자 네 마리 고양이가 약속이나 한 듯 둘째 딸 방으로 모두 들어가 어두운 곳에 쏙쏙 들어가 숨는다.

우리 딸아이에게 동물들이 좋아하는 호르몬이 나오는 건지 아니면 심성이 착한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인지 처음 보는 짐승들도 딸아이에게 호의적이다.


어쨌든 이들의 가족관계를 보자면 아홉 살 된 수컷 한 마리와 여덟 살 된 암컷, 그리고 일곱 살 된 암컷 두 마리였는데 그중 수컷 고양이를 외동묘로 기르다 일 년 후 암컷을 데려온 것이라 했다.

당시 부랴부랴 수컷을 중성화 수술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하고 돌아온 수컷 고양이와 암컷이 짝짓기를 하게 되었고, 남아있던 소량의 그것으로 임신을 하게 되었다나?? 특이한 가족사를 가진 고양이 가족이었다.

그러니 일곱 살 된 고양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이 둘의 자녀였던 거다.

열 살 된 아빠 고양이 가장, 아리
아리보다 한 살 연하 여덟 살 된 엄마 냥이 라인이...
우여곡절 끝에 아리와 라인이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 일곱 살... 이름은 애기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집에 원래 있던 아가 고양이와의 합사였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고양이들과의 동거가 이루어진 탓에 아무 준비도 없이 마리나 되는 고양이들을 딸 방에만 두자니 그랬고, 아가 고양이를 또 그렇게 두자니 그러해서 교대로 방문을 열어가며 집안을 돌아다니게 했던 상황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틈 사이로 서로를 확인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 고양이는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이 자신의 캣타워와 숨숨 집에 들어가 있는 꼴을 볼 수 없어 앙탈을 부렸고, 다른 고양이들은 쪼그만 주제에 까불어 댄다며 하악질을 하고, 으르렁 거리고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결국 내가 없는 틈을 타 아이들의 부주의로 문이 열리며 우리 고양이를 공격하다 아기 엉덩이에 구멍이 뚫리듯 이빨 자국이 나고 코에는 발톱에 긁힌 건지 피가 흐르는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나 아무리 아기이지만 세상 물정도 모르고 한 성질 하는 우리 고양이는 기가 죽기는커녕 더욱 대들었고, 수컷 고양이를 제외한 나머지 고양이들은 어떻게든 우리 집 고양이를 공격할 기회만 엿보던 중이었다.

일주일만 버티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약속한 날이 지났으나 고양이들을 데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내가 먼저 연락을 했고, 네 마리중 우리 아가냥의 엉덩이에 구멍을 낸, 가족이 아닌 암컷 고양이 한 마리만 다른 임시보호처로 가게 되었다.


아빠인 치즈냥이는 제법 똑똑했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 대충 눈치를 채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이 집에서 자신의 가족들이 제발 눈치껏 조용히 살기를 원했고, 꼴사나운 집주인 아기 고양이와도 사이좋게 지내기를 원했지만 와이프와 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남편 역할, 아버지 역할이 힘들었던 치즈 냥이는 딸의 말에 의하면 매일 밤마다 아내와 딸을 쥐 잡듯 잡고 있다고 했다.

부인과는 권태기인지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지만 훈육을 하지 않을 때, 딸과는 사이가 좋아 서로 끌어안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빠와 딸은 하루종일 안고 있지만 와이프는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다.
딸고양이가 우리 아가냥이를 괴롭히자마자 아빠 냥이에게 혹독한 가정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다. 딸 방이 매우 지저분하니 그저 고양이들만 보시면 좋겠다.

우리 아가냥이가 거실에서 놀 차례여서 주위를 지키고 있던 중이었다. 아기 고양이가 나와 있는 것을 눈치챈 딸고양이는 용케도 큰딸 방문을 열고 나와 아기냥이를 공격하려 했다.

아기 고양이를 안전한 곳에 피신시킨 후 딸고양이를 잡아보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눈치를 보다 겨우 거실에서 놀고 있는.... 갈 곳이 이미 정해져 며칠 있지도 못할 우리 냥이가 피해를 보는 게 싫었다.

그 당시 우리 고양이는 스트레스로 인해 사료를 토해 내고, 머리 위엔 종기 같은 게 나 있는 상황이었다.

큰아들을 불러 함께 딸 고양이를 잡아 큰딸 방으로 들여보내려는데 식탁 의자 사이, 위, 아래를 종횡무진하며 결코 우리에게는 호락호락 잡히지 않았다.

이를 어쩌나 하고 있던 그때, 딸고양이가 빼초롬 열고 나온 문틈으로 아빠 고양이가 나오더니 권위와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야옹~ 야옹~!!!" 한다.

그 목소리를 듣던 딸고양이는 망설임도 없이 양쪽 귀를 뒤로 젖히고 고개를 숙인 채 얼른 큰딸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게 아닌가!!

우리가 그렇게 잡아보려 했는데도 잡히지 않던 고양이가 아빠 고양이가 두 번째 부르는 소리에 저렇게 고분고분 달려간다니....

큰아들과 나는 서로 마주 보고 어이없는 듯 웃고 말았다.


그렇다고 딸과 엄마 고양이에게 눈치를 준 적은 없었다.

내 돈을 들여서라도 집사가 원하는 메이커의 최고급 사료를 사 먹이고 화장실을 마련해 값비싼 모래를 깔아주었다. 매일 여러 차례 빗질도 해 주고, 간식도 챙겨 주며 다섯 마리의 고양이를 돌보는데 최선을 다 했다.


아빠 고양이는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우리 냥이와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었나 본데 우리 냥이는 그 가족들 모두가 한통속이라는 듯 적대시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아빠 고양이에게 손찌검을 하려 하질 않나...

하루는 아빠 냥이도 참다 참다 한계가 왔는지 솜방망이를 들어 한대 치려다 내가 오는 것을 보고는 얼른 앞발을 거두어 그루밍하려는 척했다.

다른 고양이들이 낮잠을 자는 사이 열린 문으로 큰 딸 방에 놀러 왔던 우리 고양이는 이들이 사용하는 최고급 사양의 모래를 보며 신기했던지 화장실에 들어가 모래를 파고 뒹굴고 난리가 났다.

아빠 고양이가 잠에서 깨어 쉬를 하는 와중에도 나가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젖혀 오줌 줄기가 줄줄 흘러나오는 걸 구경하더니 아직 볼일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주책맞게도 모래를 끌어와 묻어주는 과잉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이건 마치 내가 볼일을 보고 있을 때 그걸 지켜보던 누군가가 볼일 보는 중 변기물을 대신 내려 준다던지 휴지로 닦아주겠다는 처사 아닌가... 아빠 냥이는 어처구니도 없을 뿐만 아니라 불쾌했는지 아가 냥이에게 한 번도 하지 않던 '하악!!"이라며 꾸짖는 것을 보았다.


어느 날 이른 아침이었다.  

우리 큰 딸과 작은 딸이 안방에서 나오며 문틈으로 보이는 우리 냥이를 딸과 엄마 고양이가 합세하여 공격하려는 게 아닌가....

참고 참던 큰딸과 막내딸이 화가 많이 났는지 롯데월드에서 사 왔던 여우 머리띠를 하고는 고양이처럼 이들에게 '하악'이라 했다. 엄마와 딸 냥이도 지지 않고 세모난 입을 크게 벌려 일제히 '하악'을 반복했다.

그러다 큰 딸이 옆에 앉아 있는 아빠 냥이를 문득 돌아보더니 "아니 넌 왜 울고 있어!!"

큰딸은 눈물을 닦아주며 안고 쓰다듬어 준다.

그렇다... 자기 스스로가 아내와 딸을 쥐 잡듯 몰아세우더라도 차마 다른 이에게 당하는 꼴을 볼 수는 없었는가 보다. 더부살이를 하며 눈칫밥을 먹는 자신의 처자식이 불쌍해서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가장 고양이가 한없이 안돼 보였다.


일주일만 봐 달라던 냥이들이 한 달 가까이 우리 집에 있게 되자 나도 더 이상 고양이들을 봐줄 수 없어 사실은 우리 고양이가 공격을 당했다며 피가 흐르는 사진을 보내며 사정하다시피 얘기하니 딸 고양이와 아내 고양이를 각각 다른 곳에 임시보호처를 구해 보내게 되었는데 그나마도 엄마 고양이는 보내줄 사람이 없어 마침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중학교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서울 언니네 집에 와 있다길래 우리 집에 들러 엄마 고양이를 데려다 임시보호처에 데려다 달라며 부탁했다.

염치 없지만 치킨쿠폰을 보내주면서 말이다.

친구가 집에 들러 엄마 고양이를 보내는 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착잡하기 이를 데가 없고, 십 년 세월을 함께 살던 아내와 딸과 헤어지는 아빠 고양이의 심정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가 않다.

매일 자신을 공격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고양이중 엄마 고양이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기 냥이


이제 이사일이 일주일쯤 남았을 때 우리 고양이가 먼저 다른 집으로 가게 되었다.

나보다 더 잘 길러주실 분이라 믿고, 냥이를 보내며 참 많이 울었고 지금도 여전히 보고 싶다.


그러나 아직 아빠 냥이가 남아있는 상태.....

내가 간곡하게 또 한 번 사정 얘기를 하자 자신이 있는 친정부모님 댁에서 고양이를 기르기로 했지만 자신은 만삭인 데다 남편은 바빠서 고양이를 데려다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내가 기차를 타고 데려다주겠다며 자청하고 아빠 냥이를 케이지에 넣고 들고 나오는 중 케이지 결합 부분이 뚝하는 소릴 내며 부러지고... 고양이가 밖으로 훤히 다 나와 있는 상태다...

이를 어쩌나... 할 수 없이 두 팔로 케이지를 안고 가는데 어찌나 무겁던지...

겨우 역에 도착해서 기차를 타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는 내내 야옹야옹 울어서 마음도 아프거니와 계속 기차 안에서 소릴 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소리 없이 가만히 있어준다.

나는 가는 내내 케이지 틈으로 눈을 맞추며 '아줌마가 엄마한테 데려다줄게 걱정하지 마'라며 연신 안심을 시켜주었더랬다.

부산역에 내려 이놈의 케이지를 안고 가려는데 냥이만 9킬로 정도 되다 보니 어지간히 무거운 게 아니다.. 거의 삼보 일 배 수준으로 세 발자국쯤 걷다 케이지를 내려놓는 일을 반복해서 겨우 역을 빠져나왔다.

부산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그들이 살고 있는 해운대에 있는 아파트에 들어가니 친정엄마와 만삭의 집사가 주차장에 먼저 나와 있었다.

그러나... 친정 엄마라 하는 사람은 나에게는 별 인사도 없이 "아이고 아리야... 니 온다꼬 고생했네..." 하는 말에 괜히 기분이 상한다.

냥이를 케이지째 옮겨주고 곧장 타고 온 택시에 몸을 싣고 부산역으로 가고 있었다.


"아니 사람들이 말이야!! 멀리서 온 사람한테 음료수 한잔도 대접 안하고 그냥 보내는 경우가 오데 있노!! 보아하니 서울에서 오신 것 같은데 이리 애를 써가 동물을 갖다 주는데 올라가자 캐가 음료수라도 한 잔 대접하는기 사람 도리 아이가... 내는 손님을 태울 때부터 주차장에서 기다릴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던 사람이라요... 저것들이 인간들이 맞나!!! 저래 살모 천벌 받는다 천벌 받아!!!"


기사님은 운전을 하면서 가는 내내 소리를 높이신다.

그나마 택시를 타고 역으로 돌아갈 때까지만 해도 '언니, 고맙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다. 나도 언니처럼 베 풀고 사는 사람이 되겠다. 왕복 택시비가 사만 원쯤 나왔을 텐데 ktx 왕복 차비와 모래, 사료, 간식비 드리겠다'며 메시지가 왔지만 내가 집에 돌아와 고양이의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보냈으나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확인도 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래.... 사례를 못 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걸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사정이 이렇고 저러니 미안하다 정도의 얘기는 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아무 일도 없던 일인 양 대꾸도 없이 소식을 뚝 끊어야만 했을까?


버글버글하던 냥이들이 한 마리도 없으니 허전한 마음과 인간에 대한 야릇한 배신감에 더욱 공허함이 느껴진다.

성격이 비슷한 남편과 큰딸은 나보다 더 크게 분개하며 지금까지 들인 정성과 자신에게 베푼 은혜가 있는데 어쩌면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며 매번 그렇게 속없이 당하지 말라고 했다.

무슨 일이기에 고양이를 데려다준 그날 이후부터 메시지도 읽지 않고 연락을 단번에 끊어버렸을까?


어쩌면 체면을 아는 아빠 고양이가 앞뒤가 다른 인간들보다 마음씀이 훨씬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면 내가 너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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