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바람 Mar 04. 2024

원만이와 판만이

우리 집 둘째와 막내 이야기이다.

둘째인 이 녀석은 올해 열여덟 되는 여자 아이인데 용돈 주고 돌아서면 '엄마, 만원만....'이라는 문자를 보내곤 한다.

하아... 아껴 쓰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용돈을 주면 며칠 지나 또 '엄마, 만원만, 천 원만, 삼천 원만...'

이 녀석은 대체 언제쯤 돈을 아껴 쓸 줄 알게 될까?

어릴 때부터 용돈 기입장 쓰기, 하루에 한 번씩 용돈 줘 보기, 한 달에 왕창 주기... 등 각종 방법을 쓰다가 지금은 포기 상태다.

그나마 요즘은 철이 들어 가는지 예전에 비하면 양반이 되었다.

거의 매일 '만원만, 천 원만...'이런 문자를 보내는 큰 딸을 나는 '원만아~'라고 부른다.


다음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직은 귀여운 막내딸 이야기이다.

이 녀석은 큰 딸과 다르게 어떤 물건을 살 때도 가격표를 보고 가성비를 따진다. 용돈 기입장을 쓰며 엄마한테 가끔은 꾸중도 들어가며 돈 쓰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아이는 애초에 꾸중 들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저축해 둔 돈도  되는지 가끔은 여덟 살 많은 원만이에게 돈을 꿔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재작년 명절에 받은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둔 칠만 원이 든 이 아이의 지갑이 집 안에서 분실되어 아직도 찾지 못한 미제 사건이 있는데 이번 이사를 앞두고 이 지갑이 나오면 좋겠다고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지갑을 찾게 된다면 더 많은 자산이 생길 예정이다.

작년쯤 혼자 텔레비전을 보며 우연히 주식 얘기를 들은 모양인데 그 결과 자신은 아직 주식이 도박이라 생각하기에 요즘 자기 친구 부모들이 가끔 선물해 주는 소액주식통장 이런 건 선물로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작년, 오빠들을 통해 휴대폰으로 하는 게임의 맛을 알게 된 것이 큰 화근이었다.

신세계를 접한 이 아이는 승부욕 또한 강해서 끝장을 봐야만 한다.


"이제 피아노 학원 가야지"


"엄마, 한 판만~ 응? 한판만 더"


"너 오늘의 학습 다 끝냈니?"


"한판만~ 한판만 더 하고~!!!"


그래서 얘는 '판만이'가 되었다.


우리 집에는 자매품 '그렇네'와 '아 맞다'도 살고 있는데 큰아들과 작은 아들의 별명이다.


아이들의 별명을 보자니 각각의 성향이 그대로 느껴진다.

우선 '그렇네'와 '아 맞다'는 소극적이고, 순응형이다.

일단 엄마의 말에 수긍하고 본다.

그렇다고 하지 못한 일을 지적했을 때 척척 하느냐면 '그렇네'는 일단 수긍을 하고 흐지부지 되기 일쑤다.

순응형이지만 회피형이다.

셋째도 일단 '아! 맞다'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주며 엄마의 기분을 누그러뜨린다.

그리고는 뒤돌아서 뭔가 뒤적이며 찾는 척, 하는 척을 하지만 뒤늦게 돌아와 보면 내가 돌아선 그 시점에서 일이 멈추어져 있거나 조금 더 진척되거나 하는 상황이니 결국 안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원만이'와 '판만이'는 말할 것도 없다.

얘네는 조르고 본다. 성향 또한 적극적이고 승부욕도, 자신감도, 뭔가 하고 싶은 욕구도 강하다.

가끔은 식탁에서 문제를 낸다.


"얘들아, 세상에서 제일 불효자 이름이 뭔 줄 아니?"


그럼 이 얘기, 저 얘기가 다 나오게 되는데.....


"정답은!! 에밀 졸라!!!"


그럼, 둘째와 막내는 잠시 숙연해진다.


이제는 철이 들어가는지 '그렇네'는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을 마무리하고, 둘째인 원만이도 자신의 본성이 있어 완전히 바뀌지는 않아도 '그렇네'와 '아 맞다'의 전술도 함께 사용한다.

그 말에 책임을 지려는 모습도 다분하다.

셋째는 아직 질풍노도의 시기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닌지 '그렇네'와 '아 맞다' 전술을 번갈아 사용하며 요즘은 순응에서 벗어나 '한판만'을 외치며 좀 더 과감해진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남자가 되어 가는 과정인가 보다.

막내는 아직 '한판만'을 고수하지만 성격 자체가 넷 중 가장 FM을 추구하는 아이인지라 약속 시간은 철저해야 하고, 본인이 해야 할 일은 시간을 보며 결국은 다 해 내는데......

사춘기라는 장벽에 부딪혀 봐야 이 아이의 진가를 알 것 같다.


아직 다 크지 않은 자녀가 있는 다른 댁에도

 

"십 초만, 일초만 하는 초만이"


"일분만, 십 분만 하는 분만이"


"딱 한 번만, 세 번만 하는 번만이"


"한 개만, 두 개만 하는 개만이"


'그렇네'와 '아 맞다'등등 여러 성향의 자녀들이 자라고 있지 않을까?


그런 아이들도 나이를 먹어가는지 성인이 다 되어가면서 이젠 제법 의젓해진다.

고등학교를 할아버지 댁에서 다니고 있는 큰아들은 주말이면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에 다시 돌아가곤 하는데


"엄마 혼자 고생하네요..."


수없는 빨래와 막내가 어질러둔 장난감과 책들, 아빠를 돕는 일 등을 생각하며 이젠 나보다 훌쩍 커 버려 자신보다 훨씬 작아 보이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신발을 신기 전 현관 앞에서 나를 한 번 살포시 안아준다.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컸는지 가뜩이나 작은 내가 그리 크지 않은 아들내미의 품에 쏙 들어간다.

어린 날엔 내가 세상에서 힘이 가장 센 줄 알았다던 아들내미가 이제 보니 엄마가 얼마나 여리고 약한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는 내가 조그만 뭔가라도 들고 가면 쓰윽 가지고 저만치 앞서 가는 모습에...

역시 사람은 아들이나 딸이나 있어야 할 건 다 있어봐야 한다며 흐뭇한 미소를 짓곤 한다.  

며칠 전 병무청에서 날아온 병역준비역 편입 안내문을 받으니 울컥한 게 기분이 이상스럽다.


둘째도 요즘은 잃어버린 세월을 찾기 위해 노력 중에 있다.

약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상위 0.1프로의 사춘기를 보내며 우리 부부의 애간장을 그리도 태우던 아이가 백 년 동안 잠자다 깨어난 숲 속의 공주처럼 이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여태 부모 속을 썩인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듯, 자신의 기막힌 앞날을 걱정하는 듯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요즘 분주히 움직인다.

이러한 각오가 계속이길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이 녀석은 작년, 일본여행을 가겠다 해서 보내주었는데 자기가 돈을 너무 많이 써서 미안하다며 그때부터 고깃집에서 주 2~3회씩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그중 금액 일부를 아빠 통장에 용돈이라며 입금해 주었는데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씀씀이 헤픈 원만이가 보내 준 그 돈을 차마 쓸 수가 없었다.

요즘은 조금씩 저축도 하는 모양이고, 절약하며 살고자 노력하는 것 같다.

과연 우리 원만이가 잘해 내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또 실패하면 어떠랴.....

또 도전해 보는 거지 뭐...


경도의 지적 장애가 있는 셋째도 은근히 속을 태우며 이젠 제법 머리가 컸다며 엄마 말은 우습게 여겨댔다.

아빠의 말에도 짝다리를 짚고 서서 고개를 돌리고 있던 녀석이 천둥 같은 아빠의 포스에 눌려 그날 아주 진한 남자의 향기를 맛보고는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을 깨달은 듯하다.

지금이야 모두들 몰라보게 커서 지금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왼쪽부터 '아 맞다, 판만이, 원만이, 그렇네' 순서이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후회, 작은 성공 등을 맛보며 각자의 상황에 맞게 조금씩 영글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흐뭇하기도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워낙 다양한 개성의 아이들이어서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또 그만큼 웃음도 많은 우리 가족은 '원만이, 판만이, 그렇네와 아 맞다'가 있어 집이 한시도 조용할 틈 없이 북적북적하다.


이게 세상 사는 재미인가?







이전 13화 더부살이의 설움을 아는 고양이 가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