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연분홍 꽃날을 기다리며...

by 산들바람

내일의 할 일: 연분홍 꽃날처럼 살기...


구석구석 처박힌 묵은 짐을 정리하다 큰딸아이의 초등학교 2학년 일기장을 발견했다.

일기장을 넘기다 내일의 할 일을 쓰는 칸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연분홍 꽃날처럼 살기'

8세가 생각하는 '연분홍 꽃날'이란 어떤 하루였을까?

다음날을 기대만큼 살았을까? 궁금한 마음에 바로 다음장으로 넘겨본다.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인생이 너무도 행복하다'라고 쓰여있다. 그리고 오늘 잘할 일: '연분홍 꽃날처럼 산 것'이라 쓰여있고 내일의 할 일은 '엉덩이춤 추기'란다.

일기를 읽는 내내 나도 모르는 미소가 가득하다.


정말 그랬다....

아이는 행복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모든 것에서 그 행복의 에너지를 채우는 듯했다.

가득 넘치는 잉여행복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길고양이 한 마리, 한 마리에게 각자의 이름을 붙이고 돌봐주며 아스팔트 갓길에 어렵게 뿌리내린 작은 꽃에게도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네고 흙이 마르면 물을 주었고, 외톨이 친구에게도 늘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고, 쉬는 시간엔 다른 반까지 찾아가 놀아주고 오는 따뜻한 그 아이에게 선생님들은 언제나 적응이 힘든 친구를 짝으로 앉히곤 했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를 너무도 예뻐하셔서 어느 날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어린이예요'라고 쓴 종이를 신발주머니의 명찰 꽂이에 맞게 잘라 넣어주셨다.

놀이터 벤치에 나와 있던 엄마들은 질투할 법도 한데 '소영이라면 누구나 그럴 만하지요'라는 게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나는 너무도 소중한 그 말이 사라져 버릴까 봐 색 바랜 메모가 든 신발주머니를 버리지 못하고 도로 넣어 두었다.

1학년 여름방학이던 어느 날 아이가 문득 말했다.


'엄마, 저는요... 제 목숨은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저는 대신 이 시대에 영원히 이름이 남는 위인이 되고 싶어요...!"


아이의 고백과도 같은 그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이의 순수한 진심이 그대로 느껴져서다.

어느 날 교회 담임목사님은 '많은 영재들을 보아왔지만 인성과 리더십과 재능을 모두 갖춘 아이는 처음'이라며 교역자 사무실에 한 번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목사님은 모든 교역자들과 몇몇 장로님을 불러 '여기, 21세기의 글로벌 리더가 될 아이가 있다'라고 말씀하시고는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 해 주신다.

그만큼 반짝반짝 빛나던 아이였다.


하지만..... 사춘기는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마치 마법의 약이라도 마신 듯 아이의 세계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항상 밝고 명랑하던 아이는 무기력하고 우울해져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고, 매사에 비관적이며 자기만 챙기는 흑막처럼 어두운 기운이 가득한 아이가 되었다.

'내가 알던 아이가 맞나?' '너무 많은 에너지를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다 에너지가 고갈된 것일까?'

혼자서 수 없이 질문을 해 봐도 이전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이 아이가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기대와 나의 자랑스럽던 마음은 모두 바닥에 흩뿌려지고, 학교에는 '죄송합니다'를 달고 살아야 하는 엄마가 되었으며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는 날의 연속이었다.

사람이 어찌 이리도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을까? '혹시 이 모습 그대로인 어른으로 자라는 것은 아닐까?' 그럴 때마다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다행히도 아이의 어두움은 조금씩 사라져 가지만 아직 '연분홍 꽃날'같은 세월은 오지 않았는가 보다.


지난날처럼 크고 원대한 꿈이 없어도 좋고, 자신의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쏟아붓지 않아도, 다른 이의 기대에 맞추려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아이의 인생에 또다시 '연분홍 꽃날'같은 순간이 자주 찾아오면 좋겠다.

연분홍 꽃잎이 흩날리는 그런 행복한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일기장에 '연분홍 꽃날처럼 산 것'이 가장 행복한 오늘이었다고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걱정마! 그런 날 꼭 올 거야....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