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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Feb 02. 2024

1막 9장. 끝나지 않은 여정

그날도 아침 일찍 서두른다.

영원히 내 아빠, 엄마가 되어 줄 것 같던 사람들이 나를 또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어 가끔 서럽기는 해도 또 어디론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좋았는데 나는 또 어디로 가나....


대구에서 고모의 손을 잡고 이곳에 올 때처럼 새엄마의 손을 잡고 분주하게 이것저것 갈아타며 나는 또 어디론가 떠난다.

아침에 길을 나섰는데 벌써 또 캄캄해져 있다.

터미널에서 나오자 예전 내가 살던 곳 억양의 말투가 물씬 묻어나는 낯선 중년 여자가 나를 데려가겠다고 찾아왔다.

그리고 고모가 나를 만났던 처음 그날처럼 새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뻣뻣이 서 있는 내 두 손을  잡고 쭈그려 앉아


"가서 잘 살아라... 가서 잘 살아라.... 가서 행복하게 잘 살아라"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 한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길바닥에 쭈그려 앉은 새엄마의 얼굴이 곧 울 것 같다.

캄캄한 밤인데도 엄마의 슬픈 얼굴이 너무도 선명하다.


같이 살자더니...

알지도 못하는 곳에 날 보내면서 잘 살라니...

그냥 같이 살면 될 것이지 왜 울 것 같은 슬픈 얼굴로 나를 보내는 건지 또 내 마음에 배신감이 느껴진다.

나를 보내기 위해 하는 거짓 행동 같았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돌아서 내가 새엄마와 걸어 나왔던 버스 터미널 인파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진다.

먼 곳의 외출이라 그랬는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가죽 장갑을 끼고, 엉덩이 반쯤 내려오는 가죽 자켓과 일직선의 주름 잡힌 모직 바지를 입고 검정색 앵클 부츠를 신은, 단발 파마머리 엄마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멀어져 간다.

그게 새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항상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 참 정말 싫었다.

차가 많이 달리는 도로옆 인도에서 처음 본 아줌마와 서 있으려니 잠시 뒤 검은색 지프차 하나가 우리 앞에 선다.


"선미야, 이거 타자..."


'선미? 내 이름은 장양경으로 바뀌었는데?

왜 내 예전 이름을 부르지? 이름이 또 바꼈나?'


또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보다.

 잠시 후 차가 몹시도 덜컹거린다.

밖을 보니 빼곡한 나무의 형체가 보이는 듯하다. 여긴 대체 또 어디란 말인가?

덜컹거리는 차 안에 앉아있다 보니 엉덩이가 뻐근할 지경이다.

잠시 후 나를 데려왔던 아줌마와 차에서 내려 집 안으로 들어가니 나이 많은 할머니가 양손을 번쩍 들고


"아이고, 할렐루야!!!! 우리 선미 왔나...!!! 선미야!!!!!"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는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나를 와락 안더니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한다.

항상 그렇듯 나는 주어진 상황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목석처럼 내 몸을 맡길 뿐이다.


"어무이, 선미 기다린다꼬 배 고프지예?"


"아이다. 내는 개않다.

아이고.... 우리 선미가 인자 옴마 만나로 왔나.... 오데 있다가 인자 왔노!!!

아이구 선미야... 고생 마이 했다.

인자 옴마 손 잡고 학교도 댕기고 그래야지..."


"이 집사님, 다른 사람들 전부 배고프겠다.

상 차립시더!!!!"


"경옥아, 니도 일로 온나 같이 밥 묵자,

선미는 처음 보재? 경옥이 니하고 선미하고 같은 일곱살 아이가... 선미 옴마가 데부로 올 때까지 둘이서 친구하모 되겠네"


눈치를 보아하니 경옥이란 아이는 이 집사라 불리는 사람의 딸인 듯 보였고, 이 집사는 이곳에서 일을 도와주는 사람인가 보다.


'그나저나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온다고?

내 진짜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나를 데려간다고?

엄마는 언제 오는 걸까? 그럼 이 사람들은 다 누구고 왜 이렇게 친절하지?'


꿈에도 그리던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온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이며 작은 희망이 생기는 듯했다.

이제 여기가 어디인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엄마가 언제 올까?

긴 시간이 걸려 이 낯선 곳에 오게 되었지만 떨리고 설레는 마음에 잠이 오지 않을 듯하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잠자리에 누웠지만 오래간만에 기쁜 웃음을 배시시 웃으며 솜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 본다.


나에게도 진짜 내 엄마를 만나는 빛나는 날이 올까?



다음날 눈을 떠 밖을 내다보니 내가 왔던 곳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산 속이었다.

맞은편엔 절이 있어 목탁 치는 소리와 염불 외는 소리가 빤히 들리는 이곳은 기도원이었고 어제 나를 데려온 사람은 엄마의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라 했다.

전남편의 바람난 소식을 전해 주었고, 이 친구의 언니네 식당에서 엄마가 내 생부를 만나게 되었던 거다.

이 집사님 딸 경옥이가 있으니 사람들이 다 같이 있을 때는 전도사님이라 부르고 따로 있을 때는 '이모'라 부르라 했다.


이야기인즉슨 이랬다.

외숙모와 그 마귀 같은 친척 여자가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이리저리 수소문하다 내 생부, 친고모와 연락이 닿았고, 내 이야기를 듣던 혼자 사는 고모는 얼른 나를 그곳에서 빼내어 안전한 자기 집으로 데려갔단다.

그러나 엄마가 오래도록 날 찾지앉자, 새 부모를 만들어 주어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게 좋갰다고 생각했고, 나의 친아버지와 고모가 의논한 끝에 아버지의 퇴직한 부하에게 나를 양녀로 보낸 것이다.

커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와 고모가 나의 안전을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으며 경제적인 지원도 해 줄 수 있고, 민통선 지역이라 다른 이들이 내  존재를 알 수 없도록 감쪽 같이 숨길 수 있는 기가 막힌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고 더군다나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그 부하는 충직하고 믿을만한 인품의 사람이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었을까?


그러던 어느날, 1년 넘게 소식조차 없던 엄마가 학교에 입학 할 때가 다가오자 나를 찾으러 왔지만 친척 집에도, 외삼촌 집에도 흔적 조차 없으니 아이를 내놓으라며 한바탕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며칠 후 깡소주를 마시고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외삼촌 집에 찾아가 몇 날 몇 시까지 나를 데려다 놓지 않으면 석유통을 쏟아부어 불을 지르고 너희 죽고 나 죽자며 최후 통첩을 하고 돌아갔단다.

내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는 외삼촌과는 달리 마음이 급해진 외숙모가 그 소식을 나의 생부에게 전하자 나의 생부는 엄마의 절친이기도 하고, 모든 내막을 알고 있는 전도사 친구에게 나를 데리고 와 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했던 거였다.


한편, 나를 죽는 날까지 자식으로 삼으려 했던 부모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제 엄마한테 간다는데 붙잡을 수도, 못 내놓겠다 할 수도 없고, 나를 데려다주고 홀로 버스를 타고  작고 가녀린 양엄마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한때나마 재잘대며 나름의 기쁨이었을 내가 떠나고 없는 그곳, 그 빈 자리는 얼마나 허전했을까.....

또 내가 그곳에 계속 살았었다면 어땠을까....

마음 한켠엔 생모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이 웅크려있었겠지만 어린 날엔 꽤 똘똘했던 나는 그 부부에게 소소한 기쁨을 안겨 주었을 것이고, 경제적으로 크게 부족함 없이 외지로 나가 공부도 시킨다며 나에 대한 꿈을 키웠겠지....

혹시 그들이 믿는 이해 할 수 없는 종교의 뭐가 되어 있었으려나?


사는 날이 바빠 한 번도 진지하게 그들의 입장을 생각한 적이 없었던 나는 이 글을 쓰며 한 때 나의 양부모였던 분들의 감정에 깊이 들어가 대성통곡을 하며 울기도 했다.

지금쯤 아직도 살아계실까?


그러나....

날 금방 찾아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던 엄마는 약속한 그날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거짓말쟁이........

나를 데리러 온다고 그렇게도 수없이 얘기했으면서 한 번도 날 데리러 오지 않았던 거짓말쟁이....


더 속이 상하는건 기도원에 와서 살고 있는 몇몇 성도중 삼십대쯤으로 보이는 어떤 여자가

나를 엄마 없는 먼 곳으로 멀리 보내버리겠다는 엄포를 놓는다.


 '나는 여기가 엄마 친구 집이기라도 하지 자긴 갈 곳이 없어 여기에 살고 있으면서 자기가 뭔데 나한테 저런 소릴 하는 거야?'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도원엔 시멘트로 지어진 단층집 두 세 채와,  그 옆엔 천막으로 지어진 예배당이 나란히 붙어있다.

그곳 예배당에서는 하루에 서너 차례 씩 예배를 드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렇게 잦은 예배에도 불구하고 경옥이는 며칠 전에 온 나도 다 외우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지 못한다는 말에 같은 또래인 내가 경옥이를 앉혀 놓고 글을 가르치고,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노트에 적어 외우도록 했으니 나도 깨나 건방졌던 모양이다.

두 세채 지어진 단층집 중 가장 첫 번째 집에는 이모의 조카가 목회를 준비하며 잠시 살고 있었는데 예전부터 나의 엄마를 잘 알고 지내던 사이었기에 내가 측은했는지 시내로 내려가 돌아올 때면 과자, 젤리 등을 사 와서 경옥이 몰래 먹으라며 따로 더 챙겨 주기도 했다.

엄마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나를 자신의 성씨인 정 씨로 바꿔 양녀로 입양하려 한다고 했다.


이곳은 내가 몇 달간 살았던 강원도와 비교가 안될 만큼 따뜻했다.

깊은 산 속이어도 얼음이 번들번들 얼어 있지도 않고, 벤치에 나와 앉아 있으면 쌀쌀하기는 해도 살을 에듯 모진 추위도 없다.

이모는 나와 경옥이를 데리고 바로 앞 들판으로 나가 가으내 떨어진 밤송이를 벌려 알밤을 꺼내 주기도 하고 성도들이 금식 기도를 하고 있을 때면 누룽지를 삶아 성도들 몰래 나에게 떠 먹이기도 했다.

이렇게 나에게 잘 해 주는 걸 보면 사실 이 사람이 내 진짜 엄마인데 아닌 척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아이다운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계속 엄마가 안 나타난다면 이모가 내 엄마가 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훗날 얘기를 들어보니 '숙이가 안 오면  내가 대신 키워야겠다'라고 생각했단다.

어쨌든 여기저기서 날 키워준다는 사람은 많아서 다행이다.


날마다 애가 타는 그리움과 기다림은 아이로서 너무나 힘든 고난이다.

봄이 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학교 가야 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엄마는 감감무소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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