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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Feb 09. 2024

1막 10장. 재회

이건 예전 친척집에 있을 때 엄마가 오는 날 하던 행동이었는데....?

나를 씻기고,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히고, 머리를 양갈래로 묶는 등 여러 사람이 부산을 떨어댄다.


"선미야, 오늘 느그 옴마가 니를 데부로 온단다"


"에이... 거짓말..... 엄마는 전에도 온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한 번도 안 데리러 왔어요"


이제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 내가 기다림에 지칠 대로 지친 채 별 기대 없이 되받아쳤다.


"아이다... 오늘은 진짜 옴마가 온다캤다"


"........... 거짓말........"


이곳에서 마스코트라 할 수 있는 경옥이와 나에게 나중에 엄마가 오면 저녁 예배 때 앞에 나가 찬양에 맞춰 율동을 하라며 두어 곡을 정해 주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캄캄한 저녁이 되자 기도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데리고 기도원 앞 뜰에 섰다.


'이쯤 되면 진짜 엄마가 오는 게 맞나???'


저 멀리 빽빽히 들어선 나무의 틈새로 작은 불빛이 밝아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어른어른거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도원 입구로 꺾어 들어오는 자동차 불빛이 다른 때보다 더 밝게 비치는 탓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더욱 가까워지는 불빛을 피하지 않고 뚫어지게 쳐다본다.

내가 처음 타고 왔던 검은색 지프차다.


'어른들끼리는 어쩜 저리 말이 잘 통해서 서로 다 알고 행동하는 걸까?' 


아이다운 엉뚱한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모든 사람을 비출 만큼 지프차의 불빛이 강렬한 듯했다. 

이내 차량의 불빛이 꺼지고 괜한 긴장감에 가장 선두에 선 내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컴컴한 차 안을 몇 초간 빠르게 훑어보려 애를 쓴다. 

잠시 후 차 문이 열리며 그곳에서 내린 사람은 어깨까지 닿는 파마머리... 

내가 외삼촌 집 베란다에서 환영으로 보았던 엄마???......

내리기 전부터 울기 시작했는지 흐느끼는 소리가 까만 밤, 산속에 울려 퍼진다. 

또 목석처럼 서 있는 내 앞에 중년의 여자가 쭈그려 앉아 내 다리를 끌어안고 내 이름을 부르며 통곡한다.


'내 엄마가 맞는 거야? 다른 아줌마가 엄마인척 연기하는 건 아닐까?'


엄마를 떨어진 수없는 날동안 학대와 배신을 당하며 그리움, 미움, 슬픔과 분노 등의 상하고 뭉개져 버린 감정의 산화물이 단단하게 뭉쳐져 다른 이를 믿지 못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메마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한 공간에서도 이렇게나 다른 감정일 수 있을까?

한 사람은 숨이 넘어갈 듯 울고, 한 아이는 표정도 없이, 감정도 없이 무덤덤히 그냥 서 있다.

그러나 적어도 확실한 건 지금까지 내 경험상 나의 시선을 맞춰 쭈그려 앉아 설명하거나, 어떤 행위를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악의적으로 대할 의도가 없는 사람임에는 확실하다.  

하지만 내 진짜 엄마인지 아닌지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사람이 내 앞에서 이토록 울고 있는 상황이 나는 너무나 불편하고 싫다. 

주체는 나인데 내가 인정하지 않는 이 상황을 왜 다른 이들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지.....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며 훌쩍이는 이 상황이 어리둥절할 뿐만 아니라 불쾌하기까지 하다. 

  

한바탕 신파가 벌어진 마당에서 방 안으로 자리를 옮긴다.

방 안에 들어와서도 내 손을 연신 쓰다듬는 이 사람을 내 진짜 엄마라고 믿어도 될는지...

내 기억과 사진 속에서 보았던 외모와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해서 내 진짜 엄마라고 확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순수하게 사람을 믿었다가 뒷통수를 맞은게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숙아, 어찌 이리 소식이 없었노... 우리도 선미도 을매나 기다맀는고 아나..."


"그래예 어무이... 산다꼬 안 그랬습니꺼.... 내가 우찌됐든 우리 선미 국민학교 입학식에는 내  손을 직접 잡고 데꼬 간다카는 그 일념 하나로 지금 왔다 아입니꺼..."


"아이고.... 그래 우찌됐든 즈그 옴마가 선미를 데꼬 간다캉께 우리는 인자 마음 놨다"


하루에 서너 번 있는 예배 중 마지막 저녁 예배가 있는 시간이다.

교회라곤 한 번도 가 본 적 없다는 나의 엄마라는 사람도 예배에 참석했다. 

천막 예배당 바닥에 솜이 두껍게 들어간 자주색 방석을 깔고 맨 앞줄 귀퉁이, 내가 서 있는 바로 앞에 앉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나는 예수님 만났네~ 갈~래길에서~...........그 길 좋아 주 찬양!!!!"


왼쪽에 선 경옥이와 오른쪽에 선 내가 찬양에 맞추어 두 손을 하늘로 뻗어 반짝반짝 손을 흔들어대며 율동이 끝나자 엄마라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아멘~ 아멘~!!' 외치는 사람들과 함께 뜨거운 박수를 친다.


예배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이모는 오랜만에 만난 모녀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며 방 한 칸을 내어 주었다. 

아직 나의 친엄마인지 확실하지 않은 낯선 사람과 단 둘이 방 안에서 자려니 멋쩍고 껄끄럽다.

어색한 기분으로 아무 말 없이 잠자리에 누웠는데 엄마라 하는 아줌마가 잠자리에 들기 위해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며 아래 옷을 내리는 순간 왼쪽 허벅지 옆에 길쭉한 캡슐알약 크기와 모양의 툭 튀어나온 상처가 있다...


'어? 저건??? 아!!!! 진짜 우리 엄마다!!! 어린 날 집에서 보았던 우리 엄마 다리에 저런 상처가 있는걸 아주 여러 번 보았어... 아.... 정말 내 엄마가 맞았구나...!!!'


나의 어린 눈으로 유전자 검사보다도 더욱 확실한 검증을 마치자 이제 의심은 말끔히 사라지고 막힌 댐이 무너져지며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지난날의 아픔과 그리움이 활화산처럼 터지는 듯했다.

물론 어린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날들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하지 않았지만 밤늦도록 조잘조잘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며 회포를 풀었다. 


내 생애 이런 감격적인 날이 또 있을 수 있을까?

매번 예배 때마다 엄마가 오게 해 달라며 어른들 따라 두 손을 들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했던 나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신 걸까?

힘겹게 나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왔던 무거운 짐을 모두 벗어버리고 이제 슬픔이란 없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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