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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Feb 23. 2024

1막 12장. 1학년 9반 59번

엄마를 따라 오르막을 오르니 학교 정문 앞에 '입학을 축하합니다'라고 크게 씐 현수막이  걸려있다.

내가 강원도에서 보았던 조그만 분교와는 달리 운동장도 넓고, 건물도 비교가 안되게 훨씬 크고 많다.

우리가 입학한 1학년만 해도 13반까지 있고, 우리 반엔 62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배정되었다.

그나마도 교실이 부족해서 1~3학년은 1학기에는 오전반 등교를 하고 나머지 학년은 오후에 등교를 한단다.

아직은 쌀쌀함이 가시지 않은 운동장에 모여 입학식을 한다.

그러나 키 순서가 아닌 되는대로 줄을 섰던지라 또래보다 훨씬 작은 나는 입학을 축하한다며 윗 학년들이 동요에 맞춰 율동을 한다는데도 노랫소리만 들릴뿐 애석하게도 율동장면은 하나도 볼 수 없었다.


교실에 들어가자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 줄번호를 맞춰 주셨고 나는 1번, 맨 앞자리에 앉았다. 교실 뒤에는 학부모들도 따라 들어와 서 있는데 뒤를 돌아보면 며칠 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엄마가 꿈인 듯 서 있다.

선생님은 이 중에 '꿩'이라는 글자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저요!! 저요!!! 를 외쳐대고 그중 가장 먼저 손을 든 남자아이가 칠판 앞에 나가 자신 만만하게 '꽁'이라 쓰자 선생님은 틀렸다며 다른 여자 아이를 지명했다. 그러자 그 여자 아이가 의기양양하게 '껑'이라고 크게 쓴다.

정말 이 중에 '꿩'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냐고 묻는데 손도 들지 않고 아이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며 씽긋 웃고만 있던 날더러 앞에 나와 한 번 써 보라 하셨다.

당당히 '꿩'을 쓰고 돌아와 자리에 앉은 나는 괜히 기분이 우쭐했다.


다음날부터 엄마는 나를 학교에 보내고 난 뒤 식당에 일을 하러 나가 밤늦게서야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하교 후, 숙제를 마치고 혼자 있는 것이 지루해지면 엄마를 만나러 식당에 찾아가곤 했다.

엄마가 제 시간보다 일찍 일이 끝나면 함께 집으로 돌아오며 가끔 서점에 들르곤 했는데 평소엔 서점에서 사 온 몇 권 안되는 그림책을 너덜너덜할 정도로 읽고 또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계속 식당에 가는 것도 눈치가 보여 혼자 놀다 일기를 쓰고 잠이 들면 엄마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방에 들어온 엄마는 제일 먼저 책가방을 열어 누런 편지 봉투에 들어있는 타자로 친 가정통신문을 꺼내어 읽어보거나 내가 한 숙제나 일기장을 살펴보곤 했다.

그런 엄마를 잠에 취한 눈으로 흐릿하게 바라보거나 다시 깨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잠이 들기도 했다.


엄마가 다니는 식당은 교육청 장학사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자주 오는 곳이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내 얘기가 나온 모양이고 장학사들이 담임 선생님께 아이를 잘 봐 주라며 이야기를 한 탓인지 일학년 담임 세 번 하고 집을 샀다며 식당에서 자랑스레 떠들던 담임 선생님은 별볼것 없는 나를 부잣집 승희를 대하듯 챙겨준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시간 중 용인에 가면 민속촌이란 데가 있는데 거기 가 본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손을 드는 것을 보니 나는 어찌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빠도 없이 가난한 게 너무나 부끄럽고 위축감이 느껴졌던 나는 뒤늦게서야 아이들을 따라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굳이 나를 콕 집어 물어보셨다.


"선미도 민속촌에 갔다고?"


"네!!!"


"진짜? 선미도 정말 민속촌에 가 본 적 있어? 그럴리가 없을텐데?"


"아니예요. 진짜 가 봤어요!!!"


사실보다 더욱 사실처럼 당당하게 대답했고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는 선생님이 결코 우릴 무시하지 못할 거라고 얘기했었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철저하게 우리 모녀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쳇, 민속촌이 뭐라고 우리가 못 간다고 생각했을까.... 반 아이들 앞에서 나를 콕 집어 물어볼 건 뭐야...

하긴.... 민속촌에 가 본 적도 없고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같은 반에 나처럼 엄마와 단둘이 사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하굣길엔 그 친구와 집으로 가는 방향이 비슷해서 자주 같이 가곤 했는데 하루는 이 녀석이


"나 신기한 장난감 있다~ 한 번 볼래?"


"그게 뭔데?"


"비눗방울 놀이 장난감인데 빨대를 불면 비눗방울이 하늘로 날아간다~ 보여줄까?"


"응, 보여줘"


"그래? 그럼 이리 따라와 봐"


그러더니 지나쳐 온 학교 앞 문구점이 즐비한 곳으로 돌아가 가장 학생들이 많이 붐비는 복잡한 가게로 들어갔다. 그리곤 많은 아이들 틈바구니에 섞여 재빠르게 손을 뻗어 그 아이가 말하는 비눗방울 장난감 두 개를 주머니에 몰래 넣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자, 너도 하나 가져"


"이거 돈 안 내고 가지고 나온 거잖아"


"괜찮아, 아줌마가 우리 못 봤어. 나 자주 여기서 장난감 가지고 나와도 한 번도 안 들켰어"


"안 들킨 게 다행인 게 아니야. 이거 도둑질이야... 싫어 너 이거 빨리 도로 가져다 놔"


그러나 그 친구는 길을 걸으면서도 내 말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 코닥 필름 통처럼 생긴 작은 원통 안에 함께 들어있는 플라스틱 망이 달린 빨대를 넣어 휘휘 저어대더니 하늘을 향해 불어대니 연신 비눗방울이 둥둥 떠 오른다.


"봐봐, 멋있지?"


"야, 그걸 그냥 열어서 가지고 놀면 어떻게 해!! 빨리 사실대로 말하고 가져다 놔... 네가 지금 가지고 논건 돈 내고 가지고 놀아!!!"


"쳇, 네가 안 가지면 내가 두 개 다 가지고 놀면 되지 뭐....."


"너 진짜 이거 안 가져다 놓을 거야? 그럼 너 혼자 집에 가... 나는 너랑 이제 안 놀 거야!"


그 친구는 장난감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죄책감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려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정의감에 불 타 올랐다.

어쩌면 좋을까 궁리하던 나는 공책을 찢어 삐뚤빼뚤한 글씨로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글을 간략하게 써서 누런 종이봉투 속 가정통신문 대신 내 편지를 넣고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자 밤늦게 집에 돌아온 엄마가 가정통신문인줄 알고 꺼내 보았던 내 편지를 학교에 안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나는 단호했다. 오히려 그런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가 내 편지를 몰래 꺼내 놓는 것을 못본척 하며 유심히 살피던 나는 엄마가 한 눈을 판 사이 얼른 그 봉투를 가방에 도로 넣어 학교에 갔다.

선생님이 들어와 조례 시간이 되었다.

언제쯤 편지를 드려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옆짝꿍을 통해 선생님께 편지를 전해 드렸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것을 꺼내 읽던 선생님은 그 친구를 앞으로 나오라 하더니 다짜고짜 '네가 진짜 이렇게 했어?'라고 물었고, 그 친구의 '네'라는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아직 학교에 입학한 지 한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따귀를 서너차례 거세게 때리고는 들어가 앉으라고 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선생님의 해결 방법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고, 친구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아..... 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을까? 아니야.... 부잣집 아이였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 엄마와 단둘이 가난하게 산다고  무시한 거야... 어쩌지? 친구한테 너무 미안한데 어쩌지?....'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손찌검을 당해 얼굴이 벌게진 친구의 얼굴처럼 내 얼굴도 화끈 달아올랐다.

내 생각대로라면 교무실에 가서 편지를 열어보고 아이를 따로 불러내어 부드럽고, 단호하게 잘못된 사실을 알려주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의 그러한 행동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철없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고, 선생님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배운자와 그렇지 못한 자...

철저히 등급이 나누어져 차별을 당하며 살게 된다는 것을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가장 처음 배우게 되었다.

세상은 그런 곳이란 것을...


어느 날부턴가 우리 방문 잠금장치가 고장 나고 나선형 걸쇠도 떨어져 나가고 없지만 어린 여자아이를 밤늦도록 혼자 두고 다니는 엄마는 불안하지도 않은가 그냥 일을 다닌다.

어쩌면 그 틈을 용케도 알고 내게 마수를 뻗치는 손길이 있었으니.....

어느 호실에 사는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단발머리쯤 되는 이십 대 초중반쯤의 젊은 남자가 나와 놀아주겠다며 살살 꾀어 엄마 없는 내 방에 들어와 나를 겁탈한다.

집에 시계가 없어 몇시인지 가늠하지 못한 나는 엄마가 올 시간이라며 겁을 줘봤지만 아직 엄마가 올 시간이 아니라며 이미 우리 집 패턴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그놈은 이틀이 멀다 하고 매일같이 나를 찾아온다.

그 당시는 이러한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다는 개념도 없고, 힘겹게 일하고 들어오는 엄마에게는 더더구나 털어놓지 못할 비밀이라 생각했다.

매일밤이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지만 나보다는 수십 배나 강한 그 악마를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방문을 다시 한번 만져보며 문을 잠글 수는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해 봐도 겨우 학교에 입학한 어린 나로서는 도저히 방법이 없다.

이제부터는 마냥 웃으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속 다짐은 온데간데없고, 내 속에서 다시 강한 분노가 만들어진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를 찾아온 그놈의 손아귀에서 어떻게든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게 무기라곤 로션병 밖에 없어 그것을 들고 가까이 오지 말라며 휘둘렀다.

어린 나에게서 그것을 뺏는 것이 대수였겠는가? 그것으로 조금의 위협이라도 느낄 수 있었겠는가?

로션병을 뺏으려는 그놈에게서 벗어나려다 병이 벽에 부딪히며 삐죽삐죽 반동강이 나 버린 로션병 손잡이를 들고 '가까이 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악에 받쳐 사력을 다 해 그놈을 협박 했다.

결국 내 왼쪽 볼에는 그놈에게 긁힌 손톱 상처가 생겨났지만 웬일인지 그놈이 순순히 돌아갔다.

일을 다녀온 엄마가 깨진 로션병을 보며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묻기에 내가 그걸 들고 까불고 놀다 떨어뜨렸다고 했고, 볼에 생긴 상처는 원숭이 흉내를 내며 손으로 볼을 긁는 시늉을 하다 생긴 상처라며 아이로서는 제법 그럴듯한 거짓말을 둘러댔으며 엄마는 별 의심 없이 믿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격렬했던 아이의 저항에 그놈도 적잖이 당황했는지 다행히 그놈은 다음날부터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엄마만 찾으면 모든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내가 나를 지키며 사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엄마에게는 영원히 말하지 못할 비밀이 생겨버렸다.  

며칠 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여관 입구에 작은 트럭과 함께 그놈이 서 있고, 짐을 실어 나르던 기사와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내 몸과 마음에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커다란 수치와 상처가 깊게 남았지만 그놈이 떠나는 모습을 확인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극한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호실 맞은편 방에는 이십 대 후반의 여자 두 명이 살았는데 그곳엔 텔레비전이 있어 종종 놀러 가곤 했다.

어린이날이지만 하릴없이 덩그러니 혼자 방 안에 있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홍합을 삶았다며 먹으러 오라고 부른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제2회 MBC창작 동요제가 방송되고 있었고, 최우수상을 탄 권진숙 언니가 훌쩍대며 앵콜곡인 '노을'을 부르고 있었다.


이제 학교에 입학 한지도 두 달쯤 되어 제법 학교생활에 익숙해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버스 정류장 앞, 조그만 방이 딸린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팔던 이십 대쯤 되는 언니가 엄마인 듯한 사람 앞에 앉아 엉엉 울고 있다.

한 번도 물건을 사러 간 적은 없지만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생글생글 웃던 언니가 아이보리색 투피스 정장을 차려입고 핸드백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왜 그렇게 슬프게 울었는지 너무도 궁금했지만 그 이유도 알아내지 못한 채 우리도 곧 그 지긋지긋했던 여인숙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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