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라 하더라도 그전 여관보다 나아 보이는 또 다른 여관으로 옮겼을 뿐이다.
학교와는 꽤 멀어져 오가는 길이 힘들었지만 어두침침하고 정이 들지 않던 그곳보다 더 밝고 환한 분위기에 한결 기분이 낫다.
계단을 오르면 바로 앞에 우리가 예전 살던 곳처럼 시멘트 복도, 방문 앞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방 한 개가 있다. 그 방을 제외하면 왼쪽 입구에는 공동 신발장이 있고 복도 바닥은 장판이 깔려있어 제법 거실 같은 느낌이다. 덜렁 방 한 칸인 것은 변함이 없지만 창이 더 커서 그런지 그나마 더 넓고 환해 보인다.
장판이 깔린 복도를 맨발로 다니거나 나와 앉아 있던 그곳은 이전에 살던 곳보다 다른 호실에 사는 사람끼리도 꽤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 공간에 사는 인간 군상들을 어린 내 눈으로 지켜보자니 우리나 그들이나 기구해 보이기는 매한가지다.
붙임성 좋고 어디서나 적응을 잘했던 나는 이 방 저 방 어른들과 잘 어울리며 그들의 삶을 보다 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우선 계단 앞, 장판이 깔려 있지 않은 방엔 밤무대에서 노래하는 미스터 강이 살고 있다.
파마를 했는지 곱슬진 머리가 어깨에 못 미치도록 내려오고 목을 보호하고자 하는 탓인지 그리 쌀쌀하지 않은 날씨에도 목폴라를 즐겨 입곤 했었다.
방바닥엔 대중가요 악보가 여러 장 굴러 다니거나 때로는 파일에 정갈하게 꽂혀 있다.
달리 연습실이 없어서인지 도깨비 빗을 들고 거울 앞에 서서 무반주로 노래와 표정 등을 연습 하며 어떤게 더 좋을지 내게 묻곤했다.
다른 방과 떨어져 있어 다른 이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지 않았고, 말수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은 듯 한 미스터강 아저씨는 그나마도 일 년을 채 살지 못하고 그가 강 씨라는 것 말고는 이름도 알지 못했는데 이사를 가버리고 그 뒤엔 대학생 동거 커플이 이사를 왔다.
장판이 깔려있는 복도가 시작되는 오른쪽 첫 번째 방은 엄마와 내가 사는 방이고 우리 방을 지나 그 옆엔 다방에 다니는 이십 대 초반의 언니 세 명이 살고 있었다.
앞니가 흔들려 곧 빠질 것 같아도 무섭다며 도망 다니는 나를 언니들이 간신히 꾀어 무릎에 눕혀놓고 빼 준 일도 있다.
또 세 번째 방엔 서로를 집사님이라 부르는 남녀가 살고 있었는데 아마도 구역예배를 드리는 것인지 저녁이 되면 가끔 여러 사람들의 찬송과 기도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오랜 세월 그곳에 살지 않았고, 곧 막노동을 하는 아저씨 두 명이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그중 한 아저씨는 내가 자기 딸내미를 닮았다며 계속 입술에 뽀뽀를 해 달라는 통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울며 도망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네 번째 방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이십 대 후반쯤 되는 남자 둘이 살고 있다. 그들은 일이 끝나면 매일같이 만화책을 한가득 빌려오곤 했는데 책 읽기를 좋아하고 저녁이면 줄곧 혼자 있어야 했던 나는 삼촌들이 읽는 만화책을 한가득 가져와 높이 쌓아놓고 우리 방문 옆 복도에 기대어 앉아 저녁 내내 읽었다.
그 당시 구영탄 시리즈와 황미나 작가의 만화책을 여덟 살 나이에 닥치는 대로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다섯 번째 방이 오른쪽 라인의 맨 끝방인데 그곳엔 농아인들이 살고 있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이상한 것은 관계가 어찌 되는지 모르지만 남녀가 둘씩, 네 명이 그 방에 함께 살았고, 밤이 되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삽시다'라고 쓴 하얀색 띠를 어깨에 두르고 달력을 뒤집어 하얀색이 된 종이를 박스에 붙인 뒤 맨 위 가운데는 기다란 구멍을 뚫어 돈을 넣을 수 있도록 입구를 만들어 어두워지면 모두 밖에 나가곤 했다.
생계를 이어나가고자 궁여지책으로 매일 저녁 길거리를 방황할 그들을 바라보며 벌이가 괜찮은지 나로서도 걱정이 되곤 했다.
내가 살던 방의 오른쪽으로 살짝 비켜난 왼쪽 첫 방엔 다방에 다니는 언니가 혼자 살고 있다.
언니가 출근한다며 화장을 할 때면 옆에 가만 앉아 화장하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고 앉았기도 했는데 특히나 빨간 실핀을 엑스자로 엇갈려 이리저리 꽂으며 어떤 게 더 예쁜지 묻는 언니를 보고 나도 나중에 저렇게 머리핀을 꽂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게다가 어느 날부턴가 내 키만 한 곰인형을 사 들고 와서 매일 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런 인형 하나 가져봤으면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또 바로 옆방엔 나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사십 대 초중반쯤 되는 중년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초가을쯤 되는 날 밤 여러 사람이 웅성대며 계단을 오르는 소리에 호기심 많은 나는 얼른 방문을 열어 계단 쪽을 바라보니 중년의 아저씨와 두 세명의 경찰이 그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는 신발을 벗고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 중년 부부의 방 앞에 서서 말없이 문을 똑똑 두드렸다.
방 안에서는 "누구세요?"라는 경상도 억양의 중년의 여자 목소리가 들렸지만 쉽게 문을 열지는 않았다.
다른 방 사람들도 이상했는지 몇몇이 문을 열고 쳐다보는데 남자는 다시 한번 말없이 문을 두드렸다.
방금 전보다 한층 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누구세요?"라며 문을 엶과 동시에 남자의 얼굴을 보자 "엄마야~!!!"라며 외마디 소릴 질렀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에 섰던 남자가 두툼한 손을 펴서 한 손으로 아줌마의 목을 쥐고 방으로 떠밀고 들어가자 경찰도 함께 따라 들어갔다.
잠시 후 잠옷 차림이었던 아줌마는 옷을 갈아입고, 그 방에서 아줌마와 함께 살던 아저씨 또한 경찰이 팔짱을 끼고 계단을 내려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방 사람들은 아마도 아줌마가 남편을 버리고 도망쳐 나와 다른 남자와 살림이라도 차렸나 보다라며 수군거렸다.
간통법이 폐지되기 훨씬 전이었으니 경찰을 대동하여 현장을 급습한 남편으로 인해 그들이 현행범으로 끌려가는 모습이 어린 나로서는 참으로 충격이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누군가에 의해 그 방의 얼마 되지 않는 짐꾸러미마저도 모두 치워지고 오래지 않아 또 다른 젊은 커플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새로 이사 온 커플 방에 들어가 놀다 보면 아내인지 연인인지 젊은 새댁은 좁은 방 한편에서 밥을 짓고 작은 소반 위에 밥과 반찬 두세 가지를 올린다. 그럼 책을 읽고 있는 삼촌에게 밥을 먹으라 하려는 이모 대신 평소 듣던 대로 내가 '상우 씨, 밥 먹어..'라면 둘이서 깔깔대고 웃곤 했다. 물론 나도 한 상에 함께 앉아 한 끼를 해결하기도 했다.
이제 이 방 옆엔 다른 방에 비해 안으로 푹 꺼진 방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개인 욕실 겸 화장실이 있는 특별 방이다. 이곳은 자그마한 옷장이 들어가도 될 만큼 넓은 방인데 여긴 내 또래 여자 아이와 아빠, 엄마가 함께 살고 있었다. 그 방엔 텔레비전도 있어서 내가 종종 놀러 가 텔레비전을 시청하곤 했는데 그 해 여름을 강타한 죠스도 그 방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노란 머리 사람들이 해변에서 한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빠~밤~ 빠~밤~ 빠밤빠밤빠밤빠밤~' 시그널이 점점 절정에 다다르면 "죠스가 나타났다!!!"며 사람들이 혼비백산 도망가고 죠스는 삐죽삐죽 날카로운 입을 크게 벌리고 나타나는데 늦게 도망가다 물려가는 사람이 꼭 하나씩은 있는 듯했다.
그 친구 아버지는 길에서 좌판을 벌여 손목시계를 파는 일을 하는가 보다. 항상 왼쪽 어깨엔 천 가방이 축 쳐지도록 시계를 한가득 넣고 나가곤 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밤이면 제법 가방이 홀쭉해진 것을 보면 장사가 그럭저럭 잘 되는 듯했다. 그 덕에 그 집 아이의 손목에는 늘 분홍색, 하얀색, 등 다양한 색상의 바늘시계를 돌려가며 착용하는데 정작 시계는 볼 줄 몰랐다.
나는 시계 보는 법을 알아도 시계라곤 하나 없지만 화장실도 딸린 그럴싸한 방에 아빠, 엄마와 함께 사는 그 아이가 참으로 많이 부러웠다.
그 방을 마지막으로 그 옆은 공동 목욕탕과 화장실이 나란히 위치해 있다.
엄마가 종종 목욕탕에서 손빨래를 하는 모습을 보곤 했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빨래방도 없던 시절, 세탁기도 공동 주방도 없이 빨래든 매 끼니든 어찌 해결해 가며 그 답답한 세월을 살았었는지 모르겠다.
여름이야 방문을 열어놓고 지낸다지만 쌀쌀해질 때면 모두 다 문을 닫고 지낸다.
그러자면 엄마가 올 때까지의 그 밤이 어찌나 무섭던지 바람에 창문이 흔들리기라도 하면 나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조금이라도 무서움을 이겨 보려 큰 소리를 내어 책을 읽거나 종이인형을 두세 개 들고 이 역할, 저 역할을 하며 떠들어본다.
특히 반공영화인 '이승복'을 학교에서 단체 관람한 날이면 그 무서움이 절정에 달했고, 어디선가 아이가 우는 소리라도 들리면 엄마 떨어져 있을 때 학대받던 기억에 저 아이도 지금 그런 고통을 당하고 있나 싶은 생각에 온몸이 오그라들듯 매일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1층엔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와 아들과 며느리, 손녀 두 명이 여관을 운영하며 가정집인 양 사는 듯하다.
그중 첫째 손녀가 나와 동갑이라 1층에 내려가 그 자매들과 자주 놀곤 했는데 나는 그 아이들이 가진 마론 인형, 미미와 라라, 토토가 그렇게도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에 따른 옷이며 구두, 장신구, 인형의 집이며 식탁과 가구, 침대, 새끼손톱만 한 접시와 성냥개비 굵기의 작은 콜라병이며 찻잔 등은 나는 평생이 지나도 가져 볼 수 없는 진귀하고 값진 보석처럼 보였고, 은색 열차 모양의 연필깎이, 그것으로 연필을 깎아보는 일은 자다가도 한 번씩 떠오를 정도의 버킷 리스트의 반열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과 여관 마당에서 고무줄 뛰기, 오징어 게임, 사방치기 등을 할 때면 내가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그들에게 지시를 내리니 그 집 할머니나 엄마는 나의 엄마에게 '저 야무진 딸내미 봐라, 우리 집 딸 둘이 선미한테는 안된다'며 밉지 않은 말을 종종 하곤 했단다.
그러니 내가 시험을 보고 빨간색 동그라미가 가득한 시험지를 한가득 들고 오는 날이면 2층에 사는 다방언니며 막노동을 다니는 오빠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날이기도 했다. 모두 복도에 나와 내 시험지를 이 사람 저 사람이 한 장씩 들고는 만점을 받은 과목은 '잘했다'며 칭찬을 해 주기도 하고, 어쩌다 틀린 문제를 읽어보고 '아깝다'며 그들의 일인 양 아쉬워하는 등 그들의 고된 삶을 보상해 주는 듯한 작은 기쁨이기도 했다.
4층에 있는 옥상에 올라간 어느 날 휴일 오후, 하얀색 러닝에 파자마를 입고 까만 뿔테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작은 화구에 입으로 바람까지 불어가며 펌프질을 하는 모습이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곳에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중이란다.
가까스로 불을 붙여 코펠 뚜껑 위에 돌을 얹어 지은 밥을 한편에 놔두고 또 다른 코펠에 채소와 고기를 들러붙지 않게 볶다 물을 붓고 팔팔 끓인다.
한참 재료가 끓고 있던중 까만색 물컹물컹한 비닐 주머니를 앞니로 쭈욱 찢어 그 속에 든 까만색 소스를 쭈욱 짜 넣자 전방 3킬로미터에서도 맡을 수 있을 만큼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옥상에 진동한다.
나는 더욱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가까이 쭈그려 앉아 그 모양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기대 가득한 눈망울로 바라보고 있다.
이제 요리가 다 끝난 모양인지 플라스틱 그릇에 밥을 퍼 담은 후 온 세상이 다 알도록 맛있는 냄새를 풍기던 그 까만 소스를 끼얹더니 갑작스레 들이닥친 꼬마 손님인 나에게도 먹어 보라 한다.
평상에 걸터앉아 그릇에 든 그것을 썩썩 비벼 입에 넣는 순간,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정말 맛있다'는 말 대신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자 그도 만족한 듯 웃으며 한 입 가득 밥을 떠 넣으며 해맑게 웃는다.
그는 이 근처 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인데 3층에 살고 있으며 오늘 처음 옥상에 올라와 밥을 지어보았는데 뜻하지 않은 꼬마 손님 덕에 외롭지 않은 식사를 했다고 한다.
여관 앞의 작은 도로를 건너 유천교 다리 아래로 흐르는 냇가에서 등에 물집이 잡히도록 자맥질을 해대며 하루를 보내고, 해 질 녘엔 수양버들 나무 아래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앉았기도 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어느새 사십 년이 흐른 지금...
나와 함께 그곳에 살던 그들은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젠 예순을 넘고 일흔이 넘었을 그들이 지난 혹독한 세월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으며 또 어떻게 죽었을까....
과거의 내 삶을 돌아보자니 지금은 없어져버린 사십 년 전 유천동 모아텔에서 나와 함께 살았던 그들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오늘따라 많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