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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an 26. 2024

1막 8장. 겨울왕국

어?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아침마다 척척척 맞춘듯한 수백 개의 군홧발 리듬에 맞춰 군가를 부르 소리에 눈을 뜨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들리는 군가는 예사롭지 않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수백 명의 군인들이 일시에 박수까지 쳐가며 힘차게 캐럴송을 부르는 오늘은 성탄절 이브 아침이다.

군인들이 지나는 길 건너 오른쪽 방향에 위치한 작은 교회에서 들리는 종소리는 몸과 마음이 추운 이곳과는 상관없이 맑고 따뜻하게 들려왔다.

일주일 전쯤 아버지가 성탄절 카드를 사 와서 대구에 있는 고모와 오빠들에게 편지를 쓰자고 했다.


"사랑하는 고모와 오빠들에게"


"사... 랑...하...는 고...모...와.... 앗 틀렸다... 지우개..."


아버지가 불러주는 대로 읊조려가며 편지를 쓴다.


"저는 고모와 오빠들이 무척 보고파요"


"근데 보고 싶어요가 아니라 보고파요가 뭐예요?"


"그것도 보고 싶다는 뜻이야"


"으응.... 그렇구나....."


"보내는 사람, 강원도 철원군 근북면 유곡리....."


"보.... 내... 는 사... 람... 강...원......"


훈련이 하루에 몇 번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떤 날은 아래, 위 군복을 다 갖춰 입고 등에는 국방색 큰 가방을 메고는 얼굴에 구두약처럼 시커먼 칠을 한 채 걷거나 달리기도 했다.

그러면 밖에 나온 아이들은

"야!! 껌둥이다. 껌둥이!!!!"라며 함께 달려가곤 했는데 나도 그 장단에 맞춰 함께 뛰다가 미끄러지기가 일쑤였다.

아무리 적응하려 해도 미끌거리는 얼음바닥을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 것은 쉽게 될 일이 아닌듯하다.

넘어질 때마다 무릎이 깨질 듯 아픈 것이 내가 나서 살아온 곳과는 달라도 여간 다른 곳이 아니다.

내가 온 날부터 지금까지 유리를 깔아놓은 듯 번들번들한 얼음이 녹은 것을 본 적이 없는 걸 보면 어쩌면 이곳은 겨울만 있는 곳인가 보다.

마당에 파묻은 항아리에서 동치미를 그릇에 덜어 상 위에 올려두면 그것 조차도 상 위에서도 미끄러지며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동치미가 상 위에서 스케이트를 탄다며 내 기분에 맞춰 우스갯소리를 건네곤 했다.

내가 오던 날처럼 저녁이면 가로등이 없는 길에 사람 하나 없다.

가끔 동네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산에 호랑이가 있다며 산속에서 눈이 번쩍번쩍하는 것을 정면으로 마주친 적이 있다고도 했다.

진짜 호랑이가 아니었어도 산속에 맹수가 살고는 있었나 보다.

동네와 산이 하나이다 보니 그것이 내려와 사람을 헤칠 수 있기에 각별히 조심하자며 이웃끼리 주의를 주곤 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다 나르느라 이전보다 더욱 바깥출입이 잦은 눈치다.

구구단이 쓰여 있는 책받침을 사 와서 외우게 했다.

이제 곧 학교에 가야 할 날이 가까워지니 벽촌식 조기 교육을 시키는 듯하다.

어느 날 서랍을 열어보니 어린이 캐릭터가 그려진 치약이 한 개 들어 있다.


'나도 이런 치약을 써 보는 건가? 이거 분명히 내 것이겠지?'


한 번도 어린이용 치약을 써 본 적 없어 양치질 할 때마다 매운맛에 매번 눈물을 찔끔거렸는데 이렇게 예쁜 치약을 내가 쓸 수 있는 건가 싶은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왜 아직 이 치약을 꺼내놓지 않는 걸까? 언제 쓸 수 있으려나?

이것들을 사 오려면 검문소 앞에서 사진이 찍힌 네모진 것을 꺼내 들고 군인한테  검사를 맡고 들어왔겠지?'


어느 날이었다. 오빠가 휴가를 나온단다.


'오빠? 휴가?'


새아빠, 새엄마 사이엔 다른 자식이 없는 것으로 알았는데 위에 커다란 자식이 있고, 새삼스레 나를 데려온 것인지 고모네처럼 조카가 집에 들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며칠이 지났을까?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군복을 입고 정말로 집에 찾아왔다.

아빠와 엄마는 반갑게 맞으며 엄마는 잘린 생닭에 양념을 묻혀가며 방 안에서 전기 쿠커에 포일 같은 것을 깔고 이리저리 굽고 있다.   

그 오빠도 내가 이 집에서 살게 된 것을 미리 알고 있는 눈치였으며 오빠는 내게 이것저것 물으며 나를 자기 무릎에 앉혀놓고 내려두지를 않는다.

누구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아직도 너무나 어색한 나로서는 뻘쭘한 마음에 바닥에 내려가 앉고 싶지만 그 무릎이 또 크게 싫지는 않은 참 이상스러운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다만 이상한 것은 부대가 코 앞인데 어디에서 오길래 휴가라는 것을 나오는 것인지 모를 일이며 이 사람은 이 집 진짜 아들인지 나처럼 입양되어 온 것인지 어른들의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여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왼손잡이던 나는 예전에 어른들이 오른손을 억지로 쓰게 했기에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왼쪽과 오른쪽이 자주 혼동 될 때가 있다.

그러니 어릴 때도 왼쪽, 오른쪽을 가르쳐 줘도 신발을 계속 바꿔 신고 다녔다.

그날도 앞이 막힌 털슬리퍼를 바꿔 신고 놀다가 저녁쯤에서야 집에 들어가 부엌으로 가니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던 양엄마가 내 발을 보며


"왜 또 신발을 바꿔 신은 거야....! 아니 얘는 왜 자꾸 알려줘도 이러는지 모르겠네!!!"


그 자리에서 신발을 얼른 바꿔 신기는 했지만 서운한 마음이 가득하다.


'내 진짜 엄마라면 이런 걸로 이렇게까지 화를 내지는 않았을 거야. 나를 데려와서 그래.... 평소엔 잘해 주는 것 같더니 혼낼 때는 하나도 안 따뜻하게 얘기해!!!....'


괜히 서러운 마음이 복 받히며 이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결코 울지 않으리라 굳은 결심을 했기에 눈물이 내 볼을 흘러내리도록 놔두지는 않았지만 대신 상대의 작은 표정과 말에도 내 가슴은 이내 더 많은 가시를 만들어 내어 온몸과 마음을 찔러대며 반항스러움이 묻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낸다.   


엄마가 보고 싶다.

며칠만 기다리면 데리러 온다던 내 진짜 엄마가 너무나 간절히 보고 싶다.

이렇게 낯선 곳에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혼이나 나고 눈치 보며 살고 싶지 않다.

엄마가 나를 데려와 준다면 참 좋겠다....

항상 얼음으로 뒤덮여 찬바람이 쌩쌩 부는 이 마을처럼 내 마음도 차가운 얼음으로 뒤덮인 채 찬바람만 쌩쌩부는 마냥 겨울왕국이다.....



내가 양녀로 갔던 강원도 철원군 근북면 유곡리 그곳은 1973년, 북한과 남한이 한창 체제 경쟁을 하며 선전용으로 만들어진 통일촌이다.

본래는 강원도 김화군 유곡리로 북한 땅에 속했던 지역이었으나 6.25 전쟁 당시 국군에게 수복되며 김화군의 일부가 남, 북으로 나뉘었고, 그 일부였던 유곡리는 남한 땅이 되었다. 이후 1963년 1월 1일에 철원군에 편입되었다.

당시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와 이곳 철원군 유곡리 두 곳에 전선 방위, 식량 증산을 위한 유휴 경지 활용, 대북 선전 효과 등의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조성되었기에 전략촌이라고도 한다.

그렇기에 북한 행정구역의 오성산에서는 내가 살던 동네가 빤히 보이니 그들이 보라는 듯 바둑판 배열의 각 잡힌 집을 지어놓고 정부가 가구당 약 500만 원 이상의 지원금과 경운기를 지원하는 등의 경제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그곳을 떠나지 않도록 했을 것이다.

예상보다 지원자가 많은 까닭에 깨나 까다롭게 심사를 하였는데 군복무를 마치고, 5인 이내의 가족일 것이며 노동력이 2인 이상이어야 하는 기혼 남자, 신체가 건강하고 영농에 대한 지식을 가진 자, 전과, 주벽, 도벽, 채무가 없으며 사상적 결점이 없어야 하는 사람을 선정했다고 한다.

그러니 퇴역군인이 가장 적합한 자격을 갖추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다.   

까다로운 심사 끝에 선정된 예비 입주민들은 약 110여 명으로 60 가구가 이주하였고, 이들은 한 달 전부터 사상과 관련한 집체 교육을 받았다.

면적은 8.74㎢이며, 근북면 4개 법정리인 유곡리, 백덕리, 금곡리, 율목리 중에서 유곡리만 유일하게 거주민이 있는 곳으로, 북쪽 경계는 자연환경보전지역이며 나머지는 농림 지역으로 남방한계선 철책 아래로는 가장 최전방 마을이다. 유곡리는 한탄강 동쪽에 위치해 있고, 성재산과 안암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유곡천이 흐르는 데다 현무암 용암지대여서 땅이 비옥하여 쌀농사가 잘 되는 지역이다.

강원도 고성군, 인제군, 화천군, 철원군, 그리고 경기도 포천시, 연천군, 파주시, 서울특별시, 경기도 김포시,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251km를 연결하는 동서녹색평화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행정구역은 강원도이지만 생활권은 경기도와 더 인접해 있어 대중교통 또한 의정부시, 서울과 왕래가 더욱 용이하고, 그러한 까닭에 강원도 사투리보다는 서울 말에 가까운 경기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지금까지도 아무나 오갈 수 없고, 출입 시간도 정해져 있는 민통선 지역, 북한 땅이 지척인 곳에 거주했던...

다른이들은 경험하기 힘든 특이한 이력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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