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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an 19. 2024

1막 7장. 다른 인생, 다른 삶

그날은 밤이 아닌 이른 아침나절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는 것이 다른 때와는 다른 상황일 뿐이다.

어렵게 마음을 열었는데..... 진심이라 믿었는데... 나는 또 어디론가 보내지고 있다.

다만 일 년 남짓 이곳에서 학대받지 않고 머물렀으니 너무 오랜 기간 한 곳에 정착해 있었던 걸까?

여기저기 옮겨지는 나의 고단한 삶은 언제쯤이면 끝이 날까....

내가 일 년 남짓 살았던 대구에서 매퀘한 냄새가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고속버스로 갈아탄다.

한참을 온 것 같은데 이게 끝이 아닌 걸까?

또 다른 고속버스로 갈아타는 계속되는 여정에 지루함보다는 또 어떤 곳에 가게 될지 두려움과 초조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두 번째 고속버스에서 내리니 나는 또 어두운 저녁, 낯선 곳에 옮겨져 있다.

어딘지 모를 이곳은 대구에 있던 때보다 밤공기가 훨씬 춥게 느껴지는 저녁이다.

또다시 갈아탄 시내버스는 울퉁불퉁한 비포장 흙길로 가는 것인지 차창이 깨질 듯 덜컹거린다.

가로등도 건물도 없는 이곳 풍경은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차창 밖을 내다보아도 칠흑 같은 어두움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별 볼 것도 없는 지루하고 어두운 버스를 타고 어딘지 모를 곳을 한참 가고 있을 때쯤 버스가 어딘가에 정차하자 긴 장총을 어깨에 맨 군인(군모 앞에는 '헌병'이라 쓰여 있다)이 올라탄다.

군인이 기사와 돈통 옆에 서서 승객을 바로 보고 절도 있게 경례를 하더니 버스기사 뒤에 앉은 앞사람에게 다가선다.

 그 사람은 익숙한 듯 무언가를 건네자 그것을 받아 든 군인은 그것 한 번 보았다가 다시 얼굴을 요리조리 훑어보고는 다시 돌려었고, 그 뒷사람도 미리 꺼낸 그것을 군인에게 건네주자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우리 앞에도 군인이 서자 고모도 다른 이들이 하듯 같은 행동을 하는데 손에 쥐고 건네주는 것이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손바닥 반만 한 네모진 종이가 비닐커버 안에 들어있고, 종이의 상단엔 '주민등록증'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거기엔 지금과는 달라 보이지만 왠지 지금의 고모와 닮은 듯한 흑백 사진과 이름, 호주라고 씐 곳 옆에 내가 읽을 수 없는 글자와 알 수 없는 숫자 등이 쓰여 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총을 멘 군인이 버스에 타서 사람들이 건네주는 작은 사진과 진짜 얼굴을 일일이 확인해 보는 경우는 어떤 경우란 말인가?

세상 경험 없는 아이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신기하여 두려움과 초조함도 잊은 채 헌병이 하는 양을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끝까지 따라갈 뿐이다.

잠시 후 아무 이상 없다는 듯 다시 승객을 향해 힘찬 경례를 붙이고 헌병이 버스에서 내리자 곧 문이 닫히고 다시 운행을 시작한다.


이곳이 종점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보따리를 든 사람, 우리처럼 큰 가방을 든 사람들 서너 명이 버스에서 함께 내린다.

이곳은 아주 시골인지 어둠 속 차갑고 빈 공간의 바람이 여과 없이 내 얼굴에 부딪힌다.

조금 더 걸어가니 싸리담장으로 둘러쳐진 집들이 작지만 규모 있게 오밀조밀 모여있다.

그 작은 동네에서는 제법 큰 길가에 대문이랄 것도 없는 싸리 담장을 지나 가장 첫 번째 집 마당에 들어서자 사십 대 초반의 여자와 사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고모와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아이고...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오는데 하루가 다 가삤네...."


"배고프시겠네, 어서 들어오세요"


"너도 오느라 힘들었겠다. 그치?"


"..........."


고모와는 원래 알던 사이인지 서로 오가는 말투가 어색하지 않았으며 이곳 사람들은 내가 살던 경상도 지역의 말투와 사뭇 다르다.  

문도 없는 입구를 지나 앞으로는 마당이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댓돌이 있고 툇마루와 격자 나무에 한지를 붙인 자그마한 문이 있다.

댓돌 위에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가 어른들은 고개를 숙이고 방 안으로 들어가고, 나도 그 뒤를 뒤따른다.   

 방 안엔 세간이라고 할 것도 없이 방문을 열자마자 오단쯤 되는 나무 서랍이 보이고 왼쪽 벽면엔 장롱이 놓여있으며 서랍과 장롱 사이에 아까 걸어 들어왔던 큰길로 나가는 문이 또 하나 있었다.

밝지 않은 누런 전등이 방 안을 더욱 작아 보이게 하는 듯하다.

우리가 방 안에 앉자, 그곳 안주인인 듯한 여자는 얼른 방문을 열고 나가 마루 옆에 붙어 있는 마당옆 부엌으로 들어가고 그에 맞추어 아저씨는 둥그런 나무 상을 편다.

곧 문을 열고 김이 펄펄 나는 냄비를 들고 들어와 사기로 만들어진 국그릇에 뜨거운 그것을 한가득 퍼 주며 배 고플 테니 얼른 식사들부터 하라고 했다.

뭔가? 싶어 숟가락을 들어 그릇을 찬찬히 살펴보자니 쫀득한 찹쌀과 대추와 인삼이 든 닭죽이 허기진 나의 식욕을 자극했다.

집주인인 낯선 아줌마는 숟가락으로 내 그릇에 담겨있는 죽을 아래위로 뒤섞으며 연신 입으로 '호~호~'불어가며 친절을 베푼다.


"대추는 먹을 수 있니?"


내가 옆으로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자 대추와 인삼을 숟가락으로 건져내어 상 위에 올려놓았다.   

긴장된 마음과는 다르게 그날 먹었던 별반 화려하지 않은 그 닭죽이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혀가 데도록 뜨거운 닭죽을 간신히 식혀서 먹고 나니 어른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는지 신발을 신고는 우리가 들어왔던 집의 오른쪽 벽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다른 방이 하나 더 있었다. 

일종의 사랑채 같은 것이었나 본데 그 방안엔 단정한 커트머리의 백발 할머니가 미색의 한복저고리를 입고 앉아있었고, 날 데려다준 아저씨는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생각지 않은 상황에 당황하여 인사도 없이 멀뚱히 앉아 있는 나를 보던 할머니가 한마디 툭 내뱉는다.


 "아이고.. 애가 미련하게 생겼다~"


할머니 또한 인상이 썩 좋지 않은데 처음 본 날더러 그런 말을 하다니 뭘 보고 그런 무례한 말을 하는가?

분명 어린 내가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을 줄 알았겠지?

낯선 할머니의 미련하다는 말 한마디에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던 어린 자존심이 확 상하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탁 튀어 오르는 듯했다.

상한 마음과는 달리 별 대꾸 없이 볼 것 없는 작은 방을 둘러보며 말없이 할머니와 어색한 모양새로 앉아 있자니 다시 궁금함이 일어선다.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이 낯선 곳에 살게 되는 걸까? 아니면 다시 고모 집에 가게 되는 것일까?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이고 이곳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느새 늦은 밤이 되어 고모도 함께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긴 여정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나의 피로함이 하루종일 날 선 긴장과 초조함을 이기고 깊은 잠을 몰고 왔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어젯밤 잠들어 무슨 꿈을 꾸는지도 모르게 곤한 잠을 자던 나는 우르르~ 우레와 같은 소리와 수많은 남자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내지르며 노래를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깼다.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너무도 궁금해진 나는 툇마루로 들어온 문이 아닌, 길에 난 다른 문을 열자 어젯밤 보다도 더욱 차가운 공기가 당황스럽도록 확 들이쳤다.

그러나 당황스러움도 잠시, 수백 명의 군인들이 웃통을 벗고, 아래는 군복 바지와 워커를 신은채 열과 행을 지어 군가를 부르며 달리고 있다. 아까 번개와도 같던 소리는 수백 개의 워커가 얼음 바닥을 박차고 나가는 발자국 소리였으리라....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다.


고모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곳을 떠난다고 했으며 나는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한단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제부터 내 이름이 '장양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했고, 여기 있는 사람들을 아빠와 엄마라 불러야 한단다.

'장양경.....'

그랬던 거구나 얼마 전 고모와 함께 교당에 갔을 때 총무라 불리던 사람이 새로 지었다는 이름이 내 이름이었구나...(여기서 말하는 '장양경'이라는 이름은 가명이 아닌 그 당시 실제로 새로운 이름으로 불려졌던 이름이다.)

고모라 했던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더욱 배신감이 느껴졌다.

하긴... 그 나이 되도록 호적에도 오르지 못하고 유령처럼 살았었을 나를 나이 든 고모가 키우는 것보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아빠와 엄마를 만들어 호적을 올려 주는 것이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겠지...

자식이 없고, 사는 형편도 그리 어렵지 않은 데다 고모가 연락하며 아이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곳을 오랜 기간 동안 알아보았겠지만 어린 나로서야 그러한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없었으니 그저 고모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이곳 사람들은 내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대할지 알 수 없기에 더욱 불안하고 초조하다.

하루아침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아빠와 엄마라 부르고 성과 이름이 모두 바뀐 채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일곱 살 어린아이에게는 받아들이기 너무 힘든 현실이었지만 그래도 어쩌랴.....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무섭고도 끈질긴 생존 본능이 환경에 순응하도록 만들었다.

마당에 난 부엌에 들어가면 아궁이가 있고, 큰 가마솥이 걸려 있다.

그곳에서 불을 때던 아줌마.... 아니 새엄마.... 아니.... 엄마가


"여기서는 경상도 사투리 쓰면 애들한테 놀림받아, 그러니까 말을 바꿔야 돼"


"네, 알겠어요"


어제 처음 들었지 그 외에는 드라마에서나 들었음직한 말투와 억양으로 단번에 바꾸어 대답하는 내 모습에 나 조차도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나는 0.1초의 거스름도 없이 여태 살아오던 지역의 말을 바꾸고 그곳 태생인 양 살아가기로 한다.

아버지는 말수가 많이 없는 사람이었다. 군인처럼 머리를 바짝 깎은 모습이 이상하다.


'군인인가? 군인이라 하기에는 나이 들어 보이고, 부대도 안 나가는데 뭐 하는 사람이지?'


내가 그곳에 산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이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어디에 다녀오시는 길인지 싸리 담장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뒷자리의 고정끈을 풀어 종이로 싼 납작하고 네모진 것을 방으로 들고 들어간다.

종이 포장을 벗겨내자 대구 고모 집에서 보았던 부처, 성모마리아, 예수님이 번갈아 그려진 액자다.

아버지는 그것을 방문을 열자마자 바로 왼쪽벽, 어른 키높이만 한 곳에 못질을 하고 걸어 두었다.

어린 내 느낌으론 고모가 이 집에 그 종교를 포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날은 두껍고 기다란 나무 막대 양쪽 끝에 노끈으로 나무 물통을 매달아 덜렁덜렁한 것을 아버지의 어깨 뒤에 짊어지고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간다.


"미끄러져, 조심히 걸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 게 많은 나는 촐랑거리며 따라가다 결국 얼음판에 자빠지고 만다.

엄마는 손재주가 아주 좋았다.

음식도 곧잘 만들고 재봉틀로 나의 팬티며 닝을 몇 장씩이나 금세 만들어내고, 뜨개실로 스웨터와 외투를 짜서 입히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빨간색 실에 떡볶이 나무 단추가 달린 외투가 황홀하도록 예뻐 보였다.

게다가 집에서 단발인 내 머리를 직접 파마도 말아주신다.  

교통이 불편하고 편의 시설이 없는 곳이다 보니 이곳 사람들은 서로 자급자족하고 사는가 보다.

어떤 날 저녁엔 이웃집 아주머니가 와서 양엄마에게 주사를 놔주고 가기도 한다.


동네 언니, 오빠들을 따라 몇 발짝 안 되는 자그마한 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니 사열대옆 화단에 이승복 동상이 손을 뻗어 어딘가를 가려는 듯 서 있고, 그중 한 언니는 사열대 앞으로 가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 후 애국가를 부르며 두 손을 휘휘 저어 지휘 하는 시늉을 한다.

학교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며 숨바꼭질이며 마음껏 뛰어놀다 이번엔 산으로 우르르 올라간다.

소꿉놀이를 한다며 나무뿌리를 캐내어 돌멩이로 짖지어 그릇에 넣고는 반찬을 만드는데 이곳 산은 손이나 짱돌로 조금만 흙을 파내면 도라지인지 더덕인지 모를 것이 파내는 대로 연신 나온다.

아이들은 그것을 겉에 묻은 흙만 대충 썩썩 어내어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나 또한 그들이 하는 대로 그것을 입에 넣으니 버적버적 흙과 함께 쌉싸래한 것이 끝에는 단맛이 묻어 나오는 것이 그리 거북스럽지 않다.

이곳 산속에서는 파내고 따내면 죄다 그냥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만 먹어도 한 끼 요기는 충분했다.

산에서 반나절쯤 시간을 보내다 다시 아래로 내려와 바로 옆 군부대로 몰려간 아이들이 건빵을 달라고 조르면 군인 아저씨들은 군말 없이 건빵 봉지를 몇 개씩 건네곤 했다.

그렇게 하루가 모자라도록 놀다 집으로 들어온 어느 날, 아저씨... 아니 새아빠... 아니 아빠는


"양경아, 다른 애들이 군부대 가서 건빵 달라고 할 때 너는 절대 그러면 안돼, 알았지?"


"네....."


건빵을 달라 졸라 본 적도 없지만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나는 단박에 알았다고 대답한다.


화장실은 마당 가장 안쪽 가장자리에 있다.

벽돌이나 시멘트가 아닌 나무 기둥을 촘촘히 세워 네모지게 만든 뒷간엔 잠그는 걸쇠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그리 높지 않은 깊이를 파고 양쪽에 널빤지를 올려두었는데 쭈그려 앉아 앞을 보니 바닥에는 아궁이에서 불을 때고 남은 재가 한가득이며 옆에 있는 삽으로 재를 퍼 올려 대변을 묻어두게 해 두었다.

휴지도 변변찮아 철 지난 일력을 반으로 잘라 화장실 한편에 올려두면 그것을 구겨 뒤처리를 한다.

마당엔 아직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보이는 '제리'라는 황구가 목줄에 메어져 있고, 화장실과 같은 지붕을 이어둔 다른 칸엔 집채만 한 황소 한 마리가 눈을 껌뻑이며 서 있었다.

캄캄한 밤중에 귀신이라도 나올 듯 무서운 화장실을 오갈 때면 제리는 별반 도움이 못되어도 덩치 큰 황소가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위안이 되곤 했다.

화장실을 오가는 길에 내 얘기에 큰 눈만 꿈뻑꿈뻑하는 황소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아이들과 소꿉장난을 하거나 숨바꼭질을 할 때마다 그중 가장 나이 많은 언니가 유독 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너는 지금 엄마가 더 좋아? 옛날 엄마가 더 좋아?"


정말 그 대답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사실 잘 모르겠다. 지금 엄마가 잘해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이 썩 드는 것도 아니고 진짜 엄마가 날 찾지 않지만 너무나 보고 싶은데... 그렇지만 나는 이곳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지금 나 키워주는 엄마가 훨씬 좋지...."


"그럴 수밖에 없지, 옛날 엄마는 너를 버렸지만 지금 엄마는 너를 키워주잖아"


옆에서 떠드는 또래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틈에서 혼자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참 듣기 싫다.

그 언니는 낳아준 엄마와 키워준 엄마를 다 겪어 본 적도 없으면서 내 마음을 어떻게 알겠나...

나를 낳아준 진짜 엄마가 나를 버렸다니.... 나를 버린 게 진짜일까?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하긴 엄마가 나를 찾지 않는 건 나를 버렸기 때문이겠지.... 왜 버렸을까? 정말 버렸을까?

너무나 괴롭고 우울하다.

지금 엄마가 나에게 지극정성 잘해 주는 것을 알지만 마셔도 마셔도 해갈되지 않는 마음속 갈증이 나를 더욱 목마르게 한다.

아이들 앞에서 자꾸만 같은 질문을 하는 그 언니가 참으로 야속하고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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