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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an 12. 2024

1막 6장. 세 가지 신을 믿으면 모든 불행을 막아줄까

참 이상하기도 했다.

주방에서 한 칸 올라와 셋집 방문 앞, 텔레비전을 올려두는 낮은 서랍이 있었는데  텔레비전 옆엔 액자가 하나 놓여있다.

옆이 더 넓은 직사각 액자 속엔 아래위 지름이 약 2센티쯤 되는 타원형 안에 시계 방향으로 부처, 성모마리아, 예수님의 얼굴이 열두 시 방향까지 서너 번 뱅 둘러져 있고, 그곳에 사는 구성원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 그 액자 앞에 세 번 목례를 하며 나에게도 그것을 시켰다.

그것이 별로 어렵고 두려울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시키는 대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세 번씩 목례를 했고, 내가 감기에 걸리자 병원에 가는 대신 귤껍질 달인 물을 사발에 떠 와서 세 번에 나누어 마시고, 또 그 액자 앞에 가서 세 번 절하며 '빨리 감기 낫게 해 주세요'를 세 번 반복하여 읊조리라고 한다.

속으론 이게 과연 내 감기를 낫게 해 줄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도 들었고, 세 가지 신을 믿는 이들에게 3이라는 숫자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참 여러 궁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를 뿐이었다.

때로는 고모라는 사람이 외출할 때 하얀 저고리에 종아리쯤 오는 검은색 한복 치마를 입고 머리에 쪽을 지고 어디론가 다녀오곤 한다.

퉁퉁한 체격의 큰오빠라 불리는 사람은 이마 가운데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부처님과 비슷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며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얘기하며 서로 웃곤 했다.


외삼촌 집에서 혼자 통글자를  익혔던 나는 이곳에서 큰오빠에게 ㄱ, ㄴ등의 낱글자를 배우고 네모 공책에 글자 쓰기를 시작했다.

하루는 큰오빠가 1부터 100까지 쭈욱 외워 보라는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59 다음이 뭐였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 거다. 계속 다른 숫자를 얘기하자 일어서게 했고, 낚싯대인듯한 가느다란 막대로 종아리를 때렸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위로 펴게 해 두꺼운 국어사전을 올려둔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지만 오히려 정신이 더욱 혼미해져 100가지의 숫자가 어지럽게 뒤섞인채  아무 숫자나 내뱉으면 그다음엔 사전 위에 곰인형을 올렸다. 그렇게 연신 회초리를 맞은 나의 종아리는 스타킹을 신은 듯 빽빽이 시퍼렇고 가느다란 멍이 다리에 가득했고, 서러운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어떻게든 울음을 참고만 있던 나는 고모가 문을 여는 소리에 얼른 2층 마당으로 나가 계단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서 있으니 울먹이는 내 얼굴을 본 고모는 깜짝 놀란다.


 "얼굴이 와이리 벌겋노!! 지금 울고 있나?"


내가 말없이 슬쩍 바지를 걷어 보이자 온통 멍으로 감싸인 다리를 보더니 내 손을 잡고 곧장 오빠들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나를 세워둔 채 바지를 내렸다.


"지금 니가 이기 뭐하는기고? 엄마도 없는 아~를 꼭 이래야되겠나... 니는 아~가 불쌍하지도 않나!! 이 어린것한테 너무 하는  아이가!~!!"


고모는 울고 있었고 큰오빠는 대역죄인이 된냥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밤마다 끌어안고 엉덩이를 두들기며 '내 강생이'라 할 때도 고모의 진심을 의심했었는데 내 다리에 생긴 상처를 보며 자신이 아픈 듯 울고 있는 것을 보며 비로소 내 마음에 의심이 사라지고 있었다.


'나를 위한 마음이 진심이었구나.. '


그때부터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세 종류의 신을 섬기는 종교를 믿는지라 교회에 다니는 것은 무조건 허용해 주었기에 셋집에 살고 있는 언니들과 함께 매주 일요일마다 동네 교회를 다녔다. 

또 어떤 날은 이 근처에 경북 대학교가 있다며 놀러 가 보자는 말에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가니 잔디밭 캠퍼스에 대학생 오빠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갑작스러운 꼬마들의 출현에 깜짝 놀라며 '얘들아, 나가라! 여기는 애기들이 오는 곳이 아니다'라는 말에 다시 몰려 나가기도 했고 어떤 날은 아랫집에 놀러 갔다가 뜨거운 연탄불 근처에 넘어지며 엉겁결에 연탄뚜껑을 손바닥으로 짚는 바람에 불붙는 듯 뜨거운 손바닥을 감싸 쥐고 울면서 2층 집에 올라갔다.

그때가 새해 명절 무렵이었는지 막 결혼해서 인사를 왔다며 고모집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젊은 부부가 찾아왔고, 손바닥이 덴 나를 며느리더러 잘 돌봐주라고 부탁하자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상냥하게 웃으며 내 목에 커다란 수건을 둘러 세수를 시키고 밥을 먹여 주는 모습에 '여기는 다 천사들만 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고모가 하루 동안 집을 비운다고 했다.

큰오빠가 우리의 밥을 책임진다며 다리가 불편한 오빠를 위해 곤로를 거실에 가져다 두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어묵을 넣어 김치찌개를 끓여주던 생각이 난다.

아침마다 고모가 우유 가루를 따뜻한 물에 타서 나에게 먹이곤 했는데 하루는 커피 잔에 식어있는 우유가 거실 바닥에 있기에 아무도 먹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마시고 보니 복녀를 주기 위해 식혀 두었던 거라며 오빠들이 '우유 도둑'이라 놀리기도 했다.


고모가 어디서 얻어왔는지 옥상 마당에 사과를 펼쳐 놓고 크기를 고르던 날이었다.

과연 사과의 도시답도록 색깔이 어찌 그리 고운지 반짝반짝 새빨간 윤이 나는 것이 눈깔사탕보다 조금 클까 한 귀여운 사과가 내 눈에는 보석처럼 예뻐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너처럼 예쁘게 생겼다'며 내 손에 쥐어 주던 그 사과가 얼마나 맛있던지....

'너처럼 예쁘게 생겼다'는 말이 생각나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여섯 살 10월 중순쯤 이곳에 와서 일곱 살 가을로 막 접어들 때였다.

고모가 내 손을 잡고 그들의 교당으로 데리고 갔다.

모두 다 하얀 저고리에 종아리까지 닿는 검은색 한복 치마를 입고, 머리에 쪽을 진 여자들만 족히 수십 명은 넘는 듯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기다란 상을 여러 개 쭈욱 몇 열이 되도록 붙여두고 하얀 상보를 덮어 그 위에 차려진 음식을 먹고 서로 인사를 나누기도 하며 떠들썩했다.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갈 무렵, 역시 같은 옷차림의 연배가 더 있어 보이는 할머니가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뭔가 한참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식사 시간이 웬만큼 끝나자 고모는 내 손을 잡고 이제 막 마이크를 내려놓으려는 그 사람에게 나를 데려가 인사를 시킨다.


"총무님, 이 아~입니더"


"아.. 그래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더. 직접 지어 주신 아이 이름 잘 받았습니더"


"이름이 마음에 듭니꺼?"


"예, 총무님이 지아 주신 이름인데 얼마나 신경을 써서 지었겠습니꺼"


"다행입니더. 다음에 또 봅시더. 잘 가라~ 다음에 또 만나자~"


"예, 총무님 다음 예배 때 봅시더"


고모가 왜 나를 그 사람에게 인사를 시켰는지, 무슨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는 건지, 그 아이가 혹시 나인지... 그렇다면 내 이름이 바뀐다는 것인지,

왜 이 사람들은 쌍동이처럼 같은 옷과 같은 머리 스타일을 한 채 수십 명이 모여 있는지, 오늘 보았던 풍경이 신기하기 짝이 없지만 혼자만 생각에 잠길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세 가지 신을 한꺼번에 믿는다는 이 사람들은 과연 모든 불행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일까?

존재 여부도 정확하지 않은 인간의 전생부터 곧 우리 앞에 당면한 현세의 고난과 현실적 문제, 또 앞으로 다가올 내세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생로병사에 대한 의문과 태생적 두려움, 고난 등에 대한 해결책을 얻고, 죄책에 대한 면죄를 받으며 영원까지 살 수 있는 걸까?

나도 이들처럼 같은 신들을 섬기면 내 앞의 모든 고난과 역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정말 그렇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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