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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an 05. 2024

1막 5장. 지옥을 벗어나

나는 꼭 밤에 옮겨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그곳에 옮겨진 것도 밤이었다.

그곳은 미닫이 문이 여러 개이고 큰 마루가 있는 가정집이었는데 부부와 중학생쯤 되는 아들이 함께 살고 있는 듯했다. 

밤이 꽤 깊어 그곳에 옮겨져 영문도 모른채 졸린 눈을 비비며 앉아 있는 나에게 그 집의 남편이자 아버지인듯한 아저씨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이불속에 엎드려 누워 머리맡 빨간 석류 껍데기 속 석류알을 하나씩 파먹으며 내게 일렀다.


"이 집에서는 절대로 마당에 나가서는 안된다. 알았나..."


"........."


"여~가 오덴줄 모르재? 여~는 느그 아부지 집이고 우리는 이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다.

니가 나가 있으몬  아부지 가족이 니를 보게 될끼고 그라몬 큰일 난다.

매칠만 기다리몬 다른 데 가게 되니까 쪼매만 참아라"


'며칠????.... 그 무서운 며칠이라고???

여기가 내 아빠 집이라고?? 나도 아빠가 있다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여기가 나를 낳아준 아빠의 집이란다.

나가지 말라는 말을 순순히 듣고만 있을 리 없다.

이른 아침 문을 빼초롬 열고 몰래 나와 집을 둘러보자니 일반 가정집보다 더 크고 두꺼운 나무 대문을 들어서면 입구를 시작으로 오른쪽은 잔디밭인 나무 정원이고 왼쪽은 시멘트인지 뭔지 모를 돌길이었다.

왼쪽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면 집관리인이자 세 들어 사는 내가 옮겨진 집이 나오고 쭈욱 안으로 더 들어가면 2층짜리 더 멋있는 집이 보이는데 나의 아버지와 그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인 듯하다.

오른쪽 잔디 위에는 정리가 잘 된 나무들이 오밀조밀 심겨있고, 제법 큰 나무들도 꽤 많다.

잔디 정원 가운데는 땅을 파고 돌을 올려 쌓은 작은 연못에 금붕어들이 여러 마리 헤엄치고 있다.

어제 집주인이 먹던 석류 열매의 나무도 눈에 띄었다.


'이렇게 예쁘고 좋은 집이 나의 아빠가 사는 집이라고? 그래... 맞다.. 내가 세 살 쯤이었나 엄마와 함께 아빠 같은 사람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지... 국방색 군복에 군화를 신고 선글라스를 낀 아주 크고 늠름한 모습으로 뚜벅뚜벅 걸어와서는 아빠의 지프차까지 에스코트해서 우리는 뒷좌석에, 그 아저씨는 조수석에 앉았고 군인인지 머리를 짧게 자르고 군복을 입은 젊은 사람이 운전을 하고 있었어..... 

그리고 다방에 들어가 엄마와 아저씨는 뭔가 긴한 얘기를 하고 있었지....

아.... 그 사람이 내 아빠였구나....'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조심조심 까치발을 들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나는 밖에 나가면 큰일 난다는 말이 퍼뜩 생각나 얼른 아랫집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그토록 늦은 시간에 옮겨진 까닭도 아빠의 가족들 눈을 피하기 위한 이유였음을 짐작케 했다.


며칠이 지난 걸까?

그날도 역시 밤이었고 외숙모와 치가 떨리도록 보기 싫고 무서운 친적집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나 나를 또 어디론가 데려갔다.


아빠 집 연못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큰 금붕어가 헤엄쳐 다니는 커다란 수족관이 있는 넓은 다방이었다.

그들이 나를 또 얼마나 무서운 곳으로 데리고 갈지 몰라 마음 한편이 걱정으로 가득했지만 꼬리를 살랑대며 연신 입을 뻐끔거리는 금붕어들과 물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유리 수족관을 보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고 그런 나를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낯선 오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를 불러 인사를 시켰다.

영문도 모른 채 다방에 딸린 방에 맡겨진 나는 그들이 나누는 긴 이야기가 무엇일지 너무도 궁금하고 초조하다.

한참이 지나자 그들이 아닌 처음 보는 아까 그 사람이 내 손을 잡고 태워 몇시간이 흐르자 자신의 2층 양옥 집으로 데리고 올라간다.


늦은 저녁 현관문을 열고 꽤 넓어 보이는 거실에 들어가는 그 순간, 두려움과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내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나는 표정 없이 가만히 목석처럼 거실 한켠에 서 있다.

그런 내 두 손을 맞잡고 쭈그려 앉은 할머니는 나를 올려다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가 니 고모다....!!!"


'고모?.......?'


"내가 니 아부지 누나다. 니 고모다...

이 어린기 을매나 고생이 많았노...."


'내가 고생 많이 한 걸 말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지?'


나의 변변치 않은 행색과 나에게서 묻어나오는   어두운 분위기와 나를 건내준 그들의 말투를 보나.. 세상 이치를 보나 어른이면 뻔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아직 어린 나로서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아는지 놀라울따름이다.

학대의 후유증으로 감정이 메마른 나는 '고모, 아버지의 누나' 라는데 대한 감동이나 놀라움보다 이 상황이 나에게 불편할 것인지 아닐지 또는 나에게 좋은 사람인지 그리고 저 행동이 진심인지 또 어떤 다른 사람으로 변하여 나를 괴롭히지나 않을지 의심만 가득할 뿐이다.


다음날이 되자 고모는 빨간색 바탕에 하얀색 작은 점박이가 가득한, 가운데는 고양이 그림의  주머니가 달린 발목까지 내려오는 원피스 잠옷을 사 들고 왔다.

내 생전 처음 입어보는 예쁜 잠옷이라 좋은 느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정말 내가 입어도 되는 옷인지 너무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그날밤부터 내가 그 예쁜 잠옷을 입고 잠을 자게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곳은 내가 살던 마산에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대구란다.

2층 양옥집에 아래층은 두 셋집에 세를 주었고, 계단을 오르면 서너 평 남짓한 마당 같은 공간이 있는데 예닐곱 발자국 안쪽으로 더 걸어 들어가면 울룩불룩한 두꺼운 유리가 끼워진 현관문이 보인다.

 마당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긴 하나 주인집인 고모네만 왔다 갔다 하는 듯했다.

서너 평 되는 2층 마당에서 왼쪽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직 푸른 기운이 온전히 남아있는 풀숲바람에 따라 출렁거리는데 노을 지는 저녁에 그곳 벤치에 앉아 있노라면 예닐곱 살의 아이에게도 앳되고 유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현관으로 들어가 바로 왼쪽엔 소파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 또 문이 있어 풀숲이 보이는 2층 마당 왼쪽으로 나갈 수 있다.

넓은 거실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작은 텔레비전이 벽끝 중앙에 놓여있고 그 텔레비전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목욕탕이 달린 방이 있는데 여기에 고모라는 사람을 작은 엄마, 큰 엄마라고 부르는 남자 두 명이 기거하고 있었다.

무슨 관계인지는 도대체 알 수가 없고, 왜 이 사람들은 자기 엄마랑 안 살고 여기서 사나 궁금한 날이 많았지만 한 번도 묻지 않았다.

큰 엄마라 부르는 사람은 내가 보기에 이십 대 중후반쯤으로 보였고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를 앓아 하지 장애가 있어 양반 다리로 앉아 양 손바닥으로 마룻바닥을 밀며 이동을 했다.

소파에 올라앉을 때도 손바닥으로 중심을 잡아 힘겹게 올라앉았고, 가끔 외출을 하자면 다리에 온통 지지대를 감고 철제 목발로 계단을 내려가 대문 앞에 정차된 사륜 오토바이를 타는데 일반적인 오토바이 옆에 낮고 넓은, 아이들이 탈만한 장난감 자동차쯤 되는 공간이 덧붙여져 있었다. 목발은 여기에 두고 운전을 하여 외출을 하곤 한다.

작은 오빠는 열일곱 살이라 하였고, 마른 몸에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학교 시험 성적이 떨어진 까닭인지 이 집에서 규율을 잡고 있는 큰 오빠가 성적표를 훑어보고는 작은 오빠더러 손수 매를 들고 오게 했다.

작은 오빠는 옥상 마당에 놓여진 빨간 원통에서 그리 길지 않은 각목을 들고 울상을 지으며 방에 들어가고 곧, "퍽! 퍽!" 소리와 함께 "아!~" "아~!"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텔레비전 중앙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난 방은 사용할 사람이 없어서인지 세를 주었고, 방 문은 잠그고 살았지만 내가 온 이후로 그곳에 사는 아홉 살 언니와 놀기 위해서는 가끔 우리쪽에서 잠금 장치가 있는 그 문을 열고 그 집의 방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현관에서 걸어 들어와 거실 중간지점의 오른쪽에 또 방이 있는데 그곳은 거의 잔 짐을 보관하는 곳이었고 겨울에는 난방을 하지 않아 바깥 찬기가 그대로 느껴지는듯 했다.

냉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그 방과 세를 준 방문 사이엔 한 칸이나 푹 꺼진 작은 공간이 있다.

그곳은  작은 식탁, 싱크대와 냉장고 등이 있는 주방인아담하고 포근한 분위기다.

여기서 고모가 주무시는 듯했고, 나도 그곳에서 고모와 함께 잠을 자게 된단다.

그 집엔 또 다른 가족이 존재했는데 생긴 것은 검은색과 갈색 털이 얼룩덜룩한 시고르자브종(시골잡종)인 암컷 개였고 '복녀'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우리가 자는 주방에서 함께 잠을 잤다.


그날밤 주방에 이불을 깔고 공주처럼 예쁜 잠옷을 입고 자리에 누우니 고모라는 사람이 나를 끌어안고 엉덩이를 두들기며


"내 강생이~... 아이구 귀여운 내 강생이~~!!"


정작 강아지는 우리 발치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는데 날더러 강아지라니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데다 너무나 어색하여  온몸이 또 빳빳하게 굳어있다.

나를 살갑게 대하는 태도가 너무 불편해서 제발 그만 해 주기를 바랐다.


'이 사람이 정말 내 고모일까? 고모라는 사람은 나를 해코지하지 않을까'


죽음을 앞두었던 내가 몸서리가 쳐지도록 소름끼치는 그 지옥 속에서 구출되어 생전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나는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를 것이며 또 어떤 무수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장작처럼 뻣뻣한 몸뚱이의 반응과는 다르게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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