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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Dec 29. 2023

1막 4장. 지옥 속에서....

"아가.... 이리 온나.....!!!"


"엄마!!! 엄마아!!!!"


"그래 엄마 여기 있다 애기가 빨리 엄마한테 달려온나"


"엄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나!!! 꿈에서도 엄마만 보이고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오데 갔었노?"


"엄마도 애기 많이 보고 싶었다. 엄마도 갈게 빨리 온나"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잃을 듯했다.

한 걸음이라도 빨리 엄마에게 가고 싶었던 나는 아파트 베란다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먹는 것도 변변찮았던 데다 내내 무릎을 꿇고 오래 앉아 있었던 탓에 또래보다 유난히 작아서인지 거의 목까지 닿는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떻게든 난간 위에 올라가겠다며 발버둥을 치다 기진맥진해진 나는 타는 듯한 노을 속에서 어서 오라며 손짓하던 엄마의 모습은 나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환영이었고, 환청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있었다.


'분명히 엄마였는데... 어깨까지 내려오는 파마머리에 빨리 오라고 손짓하던 사람은 분명 엄마였는데....'


다시 바라본 하늘엔 무심한 구름만이 가득할 뿐이다.


나를 가끔 찾아와 돈을 주고 빚을 탕감 해 준다는 엄마 때문에 대변을 가릴 수 없게 된 나를 어찌 할 수도 없고 도저히 감당이 안 됐던 탓인지 다시 외삼촌 집으로 보내버렸고, 그동안 외삼촌은 방이 세 개 딸린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빨리 일어나봐라..."


"싫다... 더 잘끼다"


"애기도 왔다 아이가 일~나라"


"애기는 가고 없는데 애기가 오데 있노"


"이 봐라 서 있는기 애기가 아이고 누고?"


외삼촌의 말에 힘겹게 눈을 뜬 사촌 언니가 나를 올려다 보더니  


"진짜 애기네!!!"라며 반가워한다.


'애기'란다....

또 다시 가슴이 아릿한 행복한 이름이다. 사랑받는 느낌이다.


엄마가 보고 싶은 허전한 마음이야 이를 데 없지만 외삼촌 집이라면 이제 외숙모도 속옷만 입혀 밖에 내놓지 못한다.

다른 친척 집에서는 시래깃국에 혀가 아프도록 매운 배추김치가 다였는데 외삼촌 집에 오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쌀밥에 마가린과 생계란을 깨뜨려 간장을 넣은 밥도 먹을 수 있고, 고기와 감자, 당근이 들어간 카레도 먹을 수 있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일이 조금 늦어질 때면 언니가 내 저녁밥을 챙기곤 했는데 식탁 의자를 싱크대 앞까지 끌고 가 찬장에서 꺼낸 밥공기에 밥을 담아 애기가 먹기에는 크다며 깍두기를 언니 앞니로 반씩 잘라 그릇에 담아주기도 했다.

종종 외삼촌, 외숙모 부부, 언니와 함께 샤워를 할 때면 내게도 진짜 아빠 엄마가 있는 듯 목욕탕 속 자욱한 안개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이제 언니는 따로 잠을 자기에 외숙모가 날 보고 상처나 실컷 받으라는 듯 언니를 물고 빨며 가슴을 후벼파지 않는다.

다시 아무렇게나 변을 보는 일은 없어졌다.

살 것 같았다.


그러나..... 학교와 일터로 모두 나가 텅 빈 집안엔 나 혼자다.

놀이터에 나가 시소를 타봐도, 그네를 타다 고꾸라져 모래밭에 처박혀도 집에 들어오면 나 혼자다.

무료함을 잊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가 외삼촌이 하던 대로 네모진 얇은 면도날이 끼워진 면도기로 수염도 나지 않은 인중을 긁어 보았다. 이내 피가 줄줄 흐르고 코 밑이 쓰리고 아프다.

화장지를 한 움큼 뜯어 쓰라린 인중에 가만히 대고 있어 보기도 한다. 

화장대 위에 놓인 이어폰 줄을 카세트 구멍에 연결해 귀에 꽂아 보니 집안에 사람도 없는데 귀속으로 아줌마 아저씨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이어폰줄을 던지듯 잡아 빼고 무서움에 덜덜 떨기도 했다.

불을 켜지 않은 거실에 외삼촌이 조각해 둔 하얀 흉상 두 세 점이 살아있는 듯 나에게 다가올 것 같은 무서운 상상이 될 때도 있다.

또 어느 날은 저녁이 되도록 가족들이 오지 않아 너무도 배가 고프던 나는 냉장고 속에 반으로 잘려 비닐로 덮인 수박을 손가락으로 조금씩 파 먹었다.

집으로 돌아온 외숙모는 쥐가 파 먹어댄 모양의 수박을 보고 "또 시작이라"며 화를 냈다.


"그래예~ 매칠만 데꼬 있다가 다시 보낼께예~"


다시 그 지옥 같은 친척집에 보내진단다.

며칠이 며칠이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마음에 며칠이라는 날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나는 다시 그곳으로 보내졌다.

며칠이 지나면 이곳에, 며칠이 지나면 또 저곳에....

내가 원치도 않는 곳에 물건처럼 여기저기 옮겨졌다.

나는 며칠이라는 말이 참 싫었다.


어느 날 그 친척집에 나타난 엄마가 하필이면 성냥팔이 소녀 인형을 선물이라며 사 왔다.

인형의 두 눈 밑에 하늘색 눈물방울 모양의 천이  아래로 두방울씩 덧대어진 헝겊 인형이었는데 그걸 받으면서도


 '인형이 나하고 똑같네... 왜 엄마는 이런 인형을 사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엄마가 가고 난 다음날 중학생 딸은


 "이 인형이 꼭 니 같다. 니 맹크로 울고 있네,

이 인형처럼 잘못했어요 해봐"


라며 인형의 손을 마주대어 포개며 비비는 시늉을 했다. 그러더니 학교에서 가정수업 시간에 필요한 재료라며 엄마가 사 준 인형을 시커먼 무쇠 가위로 배를 갈라 솜을 꺼내고 얼굴과 온몸을 박박 오려대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내 온몸이 가위로 잘리는 듯 고통스러웠고, 엄마와 나의 추억이 뭉개져 버리는 것 같은 괴로움에 목이 메도록 소리 없는 눈물만 흘러내렸다.


그나마 그 인형 선물이 마지막이었다.

엄마는 수개월이 넘도록 그 어느 곳에도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인자 즈그 아~를 버맀는갑다"


"그라모 그 집에 있는 짐을 우리가 전부 갖고 와야 안되겠나?"


어느 날 엄마와 내 추억이 가득한 눈에 익은 물건들이 그집으로 가득 실려왔다.

패션감각이 뛰어났던 엄마에게는 예쁜 옷이 참 많았는데 큰딸이고 며느리고 서로 이것 저것 입어보고는 한껏 멋을 부렸고 엄마와 내가 함께 찍은 백일 사진이며 내게 읽어주던 책들은 모두 버려졌다.

모든 희망도 사라져 버리려는가....


내가 여섯 살이 되어 그나마 애기태를 좀 벗었던지 학대에 가담하지 않던 친척집 할아버지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고도 어린 나에게 자신의 성기를 내 입속에 넣는 일이 잦았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너무도 불쾌하고 역겨우며 이상하기 짝이 없는 행위를 강요하며 내게 성추행을 일삼았지만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어느 곳에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구해 줄 만한 사람은 없는 듯했다.

밖에서 가끔 들리는 하이힐 소리에도 엄마가 나를 구하러 오는 발자국 소리였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지옥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 망령난 자가 내게 했던 미친 짓 때문인지 집안에 난리가 벌어졌다.

급기야 친척 할머니는 날과 손잡이가 전부 은빛인 과도를 들고 나를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이년!!! 내가 오늘 이 년을 쥑이삘끼다!!!"


나를 죽이려는 사람의 눈을 십 센티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본 이가 있는가?

나를 꼭 죽이고야 말겠다는 독한 기운을 뿜어내는 광기의 눈을 그렇게 또렷이 마주한 사람이 있는가?


나는 차가운 방바닥에 눕혀진 채 그 여자는 내 배 위에 올라타 오른손엔 칼을 치켜들고 짐승처럼 으르렁댄다.

죽음이 무언지 잘 알지 못했던 나는 여러 모양으로 익숙해진 공포 중에 한 가지쯤 되는냥 무덤덤히 그 여자의 눈을 한치도 피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큰 떨림도 없었다. 마침내.......


"이년, 죽어라!!!"


팔을 더 높이 치켜들며 내 얼굴인지 목인지 가슴인지 모를 곳을 찌르기 위해 칼을 내리꽂으려는 찰나......


"엄마!!! 엄마 안된다!!! 사람은 죽이면 안 된다!!!!"


짐승의 소리에 가깝도록 소리를 지르며 중학생 딸이 자신의 두 손으로 그의 엄마의 손과 칼날을 감싸 쥐었다.

엉겁결에 아무데나 잡았던 그 딸의 손에서 흐르는 피가 내 얼굴에 뚝뚝 떨어진다.

이내 난 의식을 잃고 혼절하고 말았다.


그대로 잠이 들었던가......

깨어보니 아침이었고 가족들이 시래기 된장국에 김치를 곁들여 밥을 먹고 있었다.

나에게는 허락된 밥이 없어 그들이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중학생 딸의 손에 하얀 붕대가 두껍게 친친 감겨 있는 것이 어제 내가 겪었던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니 때문에 내 손이 이래 됐다. 알았나?"란다.


나 때문인가?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이란 말인가?


엄마가 선물해 주었던 성냥팔이 인형처럼 울고 싶지만 결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눈물이 흐른다는 것은 나를 지켜줄 사람이 있을 때,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있을 때라는 것을 어려서 깨달았다.


나는 나를 지켜내야 한다.

나를 위로해 주고 지켜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절대 울어서는 안 된다.......


천벌 받을 자는 따로 있는데 배가 갈려 속이 다 꺼내지고 박박 찢긴 인형처럼 내 모양이 꼭 그랬다.


P.S. 어디까지 얘기를 털어놓아야 하는지 한참을 망설이고 주저했다.

누구에게도 꺼내놓은 적이 없는 디테일한 이야기를 얘기할 필요가 있는지 또는 그래도 되는건지 한참을 망설였지만....

용기 내어 꺼내어 본다.


여전한 사실은....

나는 부끄러움 한 점 없는 이 사건의 피해자이다...


앞으로 서술되는 사건들의 주인공이자 작가로서 성실하고 신실하게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끝까지 잘 마무리하자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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