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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Dec 22. 2023

1막 3장. 유통기한 지난 꿀꽈배기맛

친척 중 엄마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는 사람들 너덧은 모두 자매지간인데 사는 형편이 다들 변변찮아 보였다.

그 자매 가운데서도 가장 성격이 표독스러운 집에 외숙모는 나를 보냈다.

물론 가끔 집에 들르는 엄마에게는 이런저런 없는 얘기까지 하소연하며 애써 나를 보냈을 게 뻔하다.


외숙모의 눈치가 보이긴 해도 외삼촌 집이 그립다.

돌멩이로 빻으면 이내 붉은색을 내며 소꿉장난에 지대한 역할을 해 주던 맨드라미도, 쪽쪽 빨면 달콤한 즙이 나오던 샐비어가 핀 화단도 이곳엔 없다.

대문을 들어서면 시멘트 바닥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나와 소꿉놀이를 하던 외삼촌 집에 세를 살던 여자 아이도 없고, 가끔 내게 심술을 부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친구가 되어 같이 놀아줄 사촌 언니도 이곳엔 없다.

이곳은 외곽지역인지 집 앞은 맹지로 둘러싸였고 동네에 나와 노는 아이들도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그곳은 외삼촌이 외숙모와 투쟁하며 나를 지켜준다.


길가에 덩그러니 서 있던 그 친척 집은 2층이었는데 1층엔 양쪽으로 집이 각각 한 채씩이다.

그 중앙에 나 있는 회색 시멘트 계단을 십여 개 올라가면 서로 바라보는 문이 한 개씩 자리해 있고, 그중 오른쪽 나무 문을 열면 바로 친척집 현관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 벽면에 겨울엔 냉기가 가득한 좁은 화장실과 현관 앞엔 방이 나란히 두 개인데 작은 방은 현관을 바라보고 큰 방은 현관 왼쪽의 주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실이랄 것도 없는 좁은 공간 옆엔 좁은 베란다가 전부인 집이다.

그곳엔 나와 육촌쯤 되는 할머니와 그의 남편, 이십 대 초반쯤 되는 큰 딸과 중학교 2학년이던 막내가 다 같이 큰 방을 사용하고 장가간 아들과 며느리는 안방 옆 작은 방을 쓰고 있었다.  

명목은 엄마에게 빌려간 돈을 갚지 않는 조건으로 나를 봐준다는 거였는데 그렇게 삶이 팍팍한 사람들이 짐덩이인 대여섯 살 아이를 먹이고 돌본다는 것이 쉬운 얘기인가?


이십 대 초반의 선희 언니는 유흥업소라도 다니는지 아침나절이면 잠을 자고 저녁 무렵이면 짙은 화장에 속눈썹을 붙이고 일을 하러 나갔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자는 동안 나는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조용히 있어야 했는데 그녀가 내게 요구한 미션은 멀찍이 떨어져 고개를 숙이고는 무릎을 꿇고 조용히 앉아 있는...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다섯 살 아이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고통의 시간이었다.

다리가 저리고 몸이 베베 꼬이고 숙인 고개가 너무도 아팠지만 엄마 없는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엄마를 만나야 한다.

어느 날은 그녀가 깊은 잠에 빠진 듯했기에 잠시 고개를 들고 작은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자 잠귀가 밝았던 그녀가 날더러 무릎을 꿇어 손을 바닥에 짚고 네 발로 기어 오게 했다.

그리고 얼굴을 살짝 내리라더니 누운 자리에서 아이의 뺨을 눈이 빠져라 연달아 서너 대를 때렸다. 그리고는 다시 기어서 돌아가 자신이 요구한 자세 그대로 앉아 있으라고 한다.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긴 손톱에 찍히고 긁히면서 뺨에서는 불이 나는 듯했고, 서러움에 목이 메었지만 훌쩍이는 소릴 내면 또 한 번 인정사정 할 것 없이 따귀를 갈겨댈 테니 고문과도 같은 그 짓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철제 책상옆에 놓인 좁은 플라스틱 서랍장 앞이 내 전용 자리였다.

나의 그 자세는 중학생 은주 언니도 좋아하는 것인지 전영록 오빠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종이학을 접는 내내도 그렇게 있어야 했고, 팬레터를 쓸 때도 그렇게 있어야 하니 다리가 저리다 못해 감각이 없고 키가 자랄 리 만무했다.

가끔은 지루한 그 고통의 시간에서 해방되는 때가 있었는데 내 손에 오십 원을 쥐어주며 꿀꽈배기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킬 때였다.

어느 때는 변변한 신발이 없어 어른 슬리퍼를 끌고 계단을 내려가다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모르는 남자아이가 쏜 새총에 눈두덩이를 맞아 눈이 빠질듯한 고통을 느끼며 울며 되돌아오기도 했지만 어떤 이도 나에게 위로의 말조차 건네는 이가 없었다.

추운 겨울이고 뜨거운 여름이고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사 온 꿀꽈배기를 어린 나는 아랑곳 않고 까드득 까드득 소리를 내며 씹어 먹는 소릴 듣고 있자면 나는 침만 꿀떡꿀떡 삼키며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있어야만 했다.

차라리 고개를 숙여 내 표정이 보이지 않는 게 한결 나은 듯도 했다.

그러나 가끔 그 환상의 과자가 온전히 내 것이 되는 날이 있기도 했다. 그것은  유통기한이 뭔지 모르는 내가 동네 시골 구멍가게에서 기일이 지난 과자를 사 올 때였고 그럴 때면 '유통기한이 지났네'라며 혼잣말로 투덜대며 내게 한 봉지를 다 먹으라고 주곤 한다.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았어도 다리가 저린지도 아픈지도 모르게 한 봉지를 다 비워내며 유통기한이 지난 과자를 또 사 오는 행운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 날이 여러 번이었다.


모두가 집에 없었던 어느 날 항상 점심을 걸러야 했던 나는 배고픔을 참을 수 없어 이것저것 뒤져보다 스크래치가 많이 난 반투명한 연두색 플라스틱 양념통의 뚜껑을 열어보니 고소한 냄새가 가득한 통깨가 절반 넘게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검지 손가락으로 꾹 찍어 혀에 가져다대니 고소함 가득한 그 맛에 숨어있던 허기가 더 느껴지는 듯했다.

혼 날 것을 알기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딱 한 번만 더'라며 손가락으로 깨를 찍어내자 이제 침이 묻은 손가락에는 처음보다 더 많은 깨가 달라붙어 더 진한 고소함이 느껴지는 것이 유통기한 지난 꿀꽈배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이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며 또 한 번 손가락에 깨를 가득 찍어 들어 올렸지만 결코 그 손가락을 멈출 수 없어 결국 깨통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고 그날 저녁은 허리띠로 맞아야 했다.


참 희한한 짓을 많이도 시켰는데 모두가 잠든 밤, 그 집 할머니는 자신의 발바닥을 내 손톱으로 살살 긁으라는 것이다. 모두가 코 골고 자는 밤, 어둠 속에서 다섯 살 아이 혼자 깨어 앉아 그 이상한 짓을 하고 있노라면 꾸벅꾸벅 졸기도 했는데 그러자면 잠이 깨어 '빨리 안 하고 뭐 하냐'며 다시 드릉드릉 코를 골며 잠에 빠지는 것을 자주 보았다.

어느 날은 선희 언니가 선심을 베풀듯 옆에 누우라 한다.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고문이 뭔지 아나?"


"아니예..."


"이래 사람을 눕힌 다음에 천장에서 눈 하고 눈 사이, 똑같은 자리에 물을 한 방울씩 계속 떨어뜨리는 고문이라 카대.. 이~는 떨어지는 물이 없응께네 지금 천장에서 물이 니 눈 사이에 계~속 떨어지는 상상을 해라~"


"............"


실제 그런 고문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알 수도 없고, 다섯 살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고문을 왜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처가 되어 서러운 눈물을 삼켜야 했다.

또 어떤 날은 단체 가학쇼를 즐기는 날도 있는데 삼 남매가 모두 모여 나를 가운데 세워 놓고는 양팔을 앞으로 나란히 뻗게 하고 다리는 스쿼트 자세로 살짝 구부린 후 가만히 있으라 한다.

그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어린 나의 몸이 덜덜 떨리게 되는데 이게 바로 일명 '오토바이 자세'라며 셋은 나를 보며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곤 했다.

바닥에서 오토바이 고문이 끝나면 2단계로 동그란 나무 의자 위에 올라가게 하는데 거기서도 같은 자세를 취하고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양손을 옆으로 뻗어 날개처럼 퍼덕거리며 뛰어내리라고도 한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도 수치스러움을 역력히 느끼는 순간이었지만 그런 것을 따지고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다.  


어느 날은 나를 데리고 자신의 여자 형제 집으로 데리고 갔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쯤으로 보이는 그 집 아들내미가 어른들이 다른 것을 하는 때를 틈 타 나를 살살 꾀어내어 어디론가 데려갔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지나자 차들이 다니는 큰 길이 나오고 큰 건물에선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나를 잠시 후 데리러 오겠다며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다.

차들은 도로 위를 쌩쌩 달리고 있지만 모두 나와는 상관이 없다.

나를 버리려 했나 보다.

어쩐지 아까 나를 데리고 가면서 혀를 내밀고 놀려댔다.

속셈이 있었던 거다.


'그래.... 여기서 울고만 있을 수는 없지... 나는 나를 지켜야 하니까... '


외삼촌 집에서 사촌 언니의 책을 보며 혼자 통글자를 어느 정도 익혔던 나는 그곳이 마산 MBC 문화 방송국 건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듬더듬 내가 왔던 미로 같던 골목을 어렵게 찾아간다.

이 골목에 들어갔다가 내가 본 풍경이 아니면 다시 돌아 나오고 또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다른 골목이면 다시 돌아 나오고...

해 질 녘이 다 되어서 친척집에 도착하니 내가 혼자 집을 나가 길을 잃었는 줄 알았는지 모두가 나를 찾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우리 엄마가 아이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면 난리가 날 일이었으니 얼마나 나를 찾아 헤매었겠는가....

다시 돌아온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심술궂은 오빠를 보니 화가 나기도 쌤통이다 싶은 고소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결코 그날 일을 말하지 않았다.

모두들 나 혼자서 집을 나갔다가 다시 어렵게 집을 찾아온 거라고 알고 있겠지.....


그들이 유일하게 나를 공주 대하듯 할 때가 있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고 검은 덩어리가 올라앉은 나의 을 친히 따뜻한 물에 담그고는 손등이 벌게지도록 때수건으로 사정없이 밀어대고 양쪽에 한 명씩 앉아 양갈래로 머리를 묶고, 닭을 삶아대는 등 난리 법석을 떨어 무슨 일인가 했더니만 오랜만에 엄마가 날 만나러 오는 날이었던 거다.


"아~ 돌봐 주니라꼬 수고가 많다. 작은 돈이라도 쪼매 받아봐라"


 "아이고~!!! 아이다!!! 무슨 이런 거를 다 주노~ 아~가 순해서 있는 줄도 모른다. 옛날에 숙이 느그 엄마 보는그맹크로 참 착하고 똑똑하드라"


'참나... 죽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사람을 괴롭히더니 엄마 앞이라고 저런 소릴 하네....'


내가 무슨 얘기라도 할 것 같아선지 엄마와 내 옆에 누구라도 한 명은 딱 붙어 앉아 입술에 기름칠을 한 것처럼 연신 아양을 떨어대듯 이 말 저 말 지껄여댔다.

캄캄한 저녁, 은주 언니가 굳이 나를 업고 계단을 내려가 내가 꿀꽈배기를 사러 다니던 가게에 간단다.

유통기한 지난 꿀꽈배기를 줄 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양새에 업혀 있는 나로서도 어색하기 짝이 없어 팔로 목을 감을 수도, 내 몸을 업힌 등에 밀착 시킬 수도 없어 마른 장작처럼 뻣뻣하게 몸을 세운 불편한 자세가 가게 주인으로서도 영 이상했던가보다.


"무슨 일인데 아~를 업고 왔노??" 


"이 아~ 옴마 왔다 아입니꺼"


겨우 하룻밤 엄마 옆에서 자고 났을 뿐인데 다시 나를 떠나가야 한다는 말에 여기 남아 그 끔찍한 일을 다시 겪어을 것을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나는 자지러지게 울며 필사적으로 엄마를 불러댔다.


"아이고~ 이 아~가 한 번도 안 이랬는데 와이라는지 모르겠네!!!"


그들은 나를 잡아끌고 나는 온몸에 땀을 내며 목이 쉬어라 악을 쓴다.


"엄마~ 가지 마! 엄마 내도 데꼬 가라~!!! 엄마~!!!"


나는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래도 엄마는 가 버렸다.

종이봉투에 가득 든 바나나만 남겨놓고 엄마는 내 곁에 없다.

그리고 다시 학대에 시달리던 다섯 살 아이는 변의를 느껴도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변을 보는 퇴행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엔 그 여자의 발바닥을 긁다 앉은자리에서 옷에 똥을 싸고 그 똥을 그들의 가구에 조금씩 발라 놓는 기이한 행위를 저질렀다.  


아침이 되자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으며 매를 맞는 내 눈에는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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