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받다 하루가 다 가고 이틀이 가고...
4일 확진을 받고, 12일 세브란스 진료를 보기가지 단 하루도 혼자 가만히 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갑자기 불쑥 밥 먹자며 나타나는 동생, 밥 먹자며 또 나타나는 엄마, 갑자기 휴가 냈다며 밥 먹으러 나가자는 남편 등등.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모두가 귀찮게 한 덕분에 일주일이 많이 우울하진 않았다. 그 와중에도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울컥하기도 하고, 왜 나한테?라는 억울함도 있었지만. 나름 그렇게 depressed 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병원 진료를 보러 간 날, 유방암센터 바로 옆에 있는 내분비내과를 5년 넘게 다녔음에도. 처음 들어가 본 공간이었다. 음, 생각보단 작고 사람이 그리 많진 않네.라고 생각하고 뒤를 돌아 들어간 순간. 빼곡하게 앉아계신 환자 분들을 보며 솔직히 좀 많이 당황했었다. 중년의 어머님들을 중심으로 대다수가 항암으로 투병하고 계신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곧 머지않아 나의 모습이라고 느껴지면서 다리가 저려왔다.
각종 검사를 위해 금식을 유지한 채 도착했었다. 하루 종일 내가 받아야 하는 검사는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렇기에 초1 어린이의 하교와 픽업을 위한 친정엄마&동생이 대기 조가 되어주었다. 함께 병원에 간 오빠(남편)와 나는 마치 방탈출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느낌이었다. 서로 다른 건물, 서로 다른 층수, 대기와 대기를 반복하며 하루를 보냈다. 도대체 밥은 언제 먹나요!? 를 외치며, 사실 나는 밥보다 커피를 빨리 마시고 싶다고. 의리로 함께 굶고 있는 오빠는 무슨 죄냐며.
검사 전, 교수님과의 진료에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검사 결과에 따라 선항암 여부를 결정할 테고 암 타입이 무엇인지에 따라 정확한 치료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라는 것. 현재 보기에는 부분 절제술이 예상되며, 동시 복원을 원하는지도 물어보셨다. 당연한 이야기지. 이왕 복원하는 거 내 평생의 소원이던 plastic surgerlly를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브라카 유전자 검사도 추가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건 이미 공부를 해 왔기에 가족력은 없지만 만 40세 이하에 해당하기에 검사할 것을 알고는 있었다. 채혈을 한다고 했고, 암예방과 교수님은 오늘 진료는 못 보니 진료 날짜를 잡고 가라고 했다.
이래저래 유방외과 검사와 함께 나는 내분비내과 채혈까지 해야 하는 상황인데. 오늘 도대체 몇 통의 피를 뽑는 건가. 심지어 혈관도 미리 알고 있다는 것처럼 원래도 안 보이는 혈관이 더 숨어버려서 채혈에서만 두 번 넘게 고생.. 검사가 오늘이 끝인가. 하면 그렇지 않지. 대학병원 검사가 이렇게 쉽게 끝날 수 없지. 내일도 검사가 있다. 내일은 뼈 검사. 핵의학 검사가 기다리신다.
방사선 주사를 맞고 3시간가량 뒹굴 거리면 검사할 시간이 된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물을 계속 마시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스캐닝을 시작하는데, 폐쇄공포증이 있다면 좀 많이 힘들 수 도 있겠다 싶었다. 눈앞에까지 와 있는 기계와 수 없이 돌아가며 시간의 늪에 빠져버린 기분. 움직이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나면 원래도 안 움직일 수 있는데 괜히 더 움직이고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 대략 20분 정도 한 자세로 누워 있다 보면 쥐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처음에는 무서웠다가, 좀 지나고 나면 여기에 저기에 암이 더 전이된 걸로 나오면 어쩌지 하다가, 너무 지겹고 지루해진 이후에는 에이씨 몰라. 그냥 지금은 일단 일어나고 싶고. 빨리 나가고 싶고. 너무 불편해.라는 생각만 든다.
이렇게 모든 검사 일정이 끝나고 나면, 불안과 초조가 가득한 공포의 시간이 시작된다.
과연 전이는 없을지, 나는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건강해질 수 있을지, 내 가족과 계속 행복할 수 있을지... 최악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가정해야 그 어떤 결과도 받아들이기 쉽기에, 최악을 대비하지만 희망을 가진 마인드로 시간을 보냈다. 1주일 후 대망의 검사 결과를 듣는 진료일. 매일을 하루같이 걱정으로 지새운 엄마와 오빠가 함께 갔다. 병원에 도착해서 대기실에 앉아있을 때까지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다. 진료 시간은 딜레이가 길었다. 40분 지연이었나. 도파민 중독이나 되어야 지겹지도 우울하지 않겠다 하여 동물 릴스를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1시간 반 즈음 지나고 있던 때였는데, 내 순번이 9번째로 바뀌었다.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바뀌는 모습을 보는 순간이었다.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떤 감정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두려움, 걱정, 초조함 따위의 감각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왈칵 터진 눈물로 참고 있는 엄마의 감정을 건드렸고, 함께 버티고 있는 남편의 감정까지 건드릴 뻔했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시간을 보냈지만 진료실에 들어가기 직전이 되는 순간, 한번 더 무너지고 말았다. 갑자기 손과 발에 피가 안 통하더니 단 몇 초 사이에 손이 백지장이 되어 버렸다. 호흡도 제대로 안되기 시작했다. 엄마가 팔과 어깨를 주무르고 등을 쓰다듬어 주는데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어지는 느낌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간 진료실. 차근차근 설명을 충분히 해주시는 교수님이다. 결과는 불행 중 행운이었다. 초진에서 확인했던 암은 2~2.5센티 사이즈이고, 해당 종양은 부분절제 기준이었다. 다만 해당 암 근처에서 mri상 아주 미세한 종양 범위가 발견되었고, 사이즈 측정이 불가능한 정도의 작은 세포들이나 범위가 넓어 안전하게 전절제를 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타 장기에 전이 소견도 없었다. 암 타입은 호르몬양성 HER2 음성으로 나왔다. 수술을 먼저 진행하는 것으로 확정되었고, 항암 여부는 그 이후 결정이 난다. 부분 절제가 아닌 전절제로 수술 방법이 결정 나면서 방사선 치료도 제외되었다. 앞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항호르몬제로 치료를 이어가게 될 것이다. 수술까지 컨디션 잘 관리하면서 행복한 수술 결과를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