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
암 환자가 되었다.
아직은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수술과 아마도 항암을 거치고 나면 장기적인 항호르몬치료가 이어질 것이다. 아직 나의 일상에서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난 여전히 초딩 1학년 어린이의 엄마이고, 어찌 보면 조금 열정적이기도 한 엄마의 생활을 하고 있다. 어린이의 독립과 자주성을 키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불안감이 쉬이 떨쳐지지 않는, 뭐 그런 상황.
일상이 정신이 없다 보면 내가 아픈 사람이지 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바쁘고 혼란스러워야 편안하다. 이게 무슨 말이야 방귀야 싶지만, 정말 그렇다. 혼자 가만히 앉아있기라도 하면 인터넷의 수많은 글들을 검색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난 이미 여명을 선고받은 말기 암환자가 되어 있다.
암 확진을 받고 나서 한 2주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깨달은 것이 있다면,
1. 암환자 커뮤니티는 가입하지도, 검색하지도 않는다.
처음엔 멋도 모르고 유방암 환자 카페를 가입했다. 가입 신청은 또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신청하고 나서 며칠이 지나서야 승인이 되더라. 암 확진 초기, 나에게 아무런 정보도 없고 한 치 앞이 막막한 순간이기에 인터넷에 나와있는 수많은 정보와 경험담들을 찾아 헤맸던 것 같다. 그런데, 카페 글들을 검색하고 읽어가며 난 더 우울하고 불안감이 심해져만 갔다. 이상했다. 잠시 회사에서 일하는 뇌를 탑재하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만들었더니 이 카페는 탈퇴해야 정답이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이유는 명료했다.
어차피 그 게시판에 써진 질문들은 나와 비슷하게 무지한 사람들, 아직 답을 모르는 사람들의 궁금증이 대부분이고. 모두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위안을 얻으려 글을 쓰고 있었다. 답변을 하는 사람들도 아직 치료 중인 사람들이 대부분. 표준치료를 완료한 이후, 일상을 회복한 사람들은 사실 그 카페를 거의 드나들지 않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을 하는 사람도, 대답을 하는 사람도, 모두들 자신의 경험과 자의적인 해석을 담은 대화를 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다수의 게시글들은 너무 슬펐다. 재발했고, 전이가 되었고, 체력이 바닥이 났고, 가족도 암 환자가 되었고... 무언가에 홀린 듯 글을 읽다 보면 나는 울고 있고, 보조제를 검색하고 있고. 그러고 있었다. 고작 며칠이지만 그런 나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랬다. 결국 바로 탈퇴. 정말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남편을 통해(커뮤니티에 가입시킴) 정제된 정보를 전달받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고 유일하게 소통하는 채널은 치료하는 병원의 환자들끼리만의 대화 정도(이건 긍정적 효과가 큼)
궁금한 것이 있다면 내가 공부를 하면 되고, 논문을 찾아보면 되고, 주치의에게 질문하면 된다. 덕분에 책을 여러 권 읽었다. 내가 읽은 책들은 나중에 짧게 리뷰를 해봐야겠다.
2. 블로그를 열심히 보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들도 누군가 검색해서 들어오기도 할 테지만, 혹여라도 읽으시는 분이 있다면 이것만은 명심해 주세요. 누군가의 투병일기가 본인의 상황에 딱 맞아떨어질리는 전혀 없다는 사실. 지금 그대가 읽고 있는 이 글의 주인보다 당신은 훨씬 더 일찍 회복할 수도 있어요. 온 마음으로 감정을 담아 자신을 대입하지 마세요.
내가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
잊지 않으려고.
투병하고 치료하는 과정이야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세세하게 남길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시간들 속에서 경험하게 될 나의 마음과 심리를 어딘가에 표출하고 기록해 두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분명 몸 안 어딘가에서 스트레스로 썩어가게 될 테니까 말이다.
누군가의 블로그를 보게 된다면, 이웃을 추가하지도 말고 즐겨찾기도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 그 블로그의 글이 올라오지 않는 어느 날, 걱정과 염려의 마음은 나의 몫이 된다. 그 글의 작성자가 몸이 좋아져서 더 이상 안 쓰는 것인지, 그냥 귀찮아서 안 쓰는 것인지, 혹은 병세가 악화돼서 안 쓰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 같은 환자들은 가장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게 마련이다. 그 상상이 되는 순간, 그 상상 속 상황은 나로 귀결된다. 이러한 일은 겪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블로그를 열심히 팔로우하지 않아야 한다.
3. 암밍아웃은 급할 것 없이 필요한 순간, 필요한 사람에게만 한다.
치료도 받기 전이지만, 내 심신이 힘들면 겉으로 당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요즘의 근황을 묻기라도 한다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질 수도 있지. 하지만 감정 조절을 정말 잘해야 한다. 나에게는 매우 큰 사건이라 말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상대에게는 걱정과 더불어 가십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진단 확정 이후 친정 가족에게만 먼저 말했다. 그리고 주치의를 통해 암 타입, 수술 여부, 치료 일정 등의 최종 확정된 계획을 듣고 난 이후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초1 어린이의 등하교 과정에서 혹시라도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는 사람. 즉, 어린이 친구의 엄마.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좋은 두 분에게 따로 말할 기회가 주어졌었다. 너무 다행히도 편히 들어주신 두 엄마에겐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두 번째, 바로 회사의 상사였다. 바로 위 관리자는 남자 선배라, 나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 자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패스. 여성 상급자 분께 연락을 했다. 휴직 기간을 알고 있기에 다들 복귀에 맞춰 업무도 준비할 테고, 대체인력의 근무 기간도 검토할 테니 미리 말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았다.
4. 맛있게 먹고, 즐겁게 생활한다.
항암을 시작하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늘 뭐든지 잘 먹으라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워낙에 경계성 성격을 가졌기에 그건 잘 안되더라. 유제품은 이제 안녕... 술도 안녕... 고기도 좀 줄이고(원래도 잘 안 먹으면서)..
덕분에 사랑하고 좋아하는 야채를 원 없이 듬뿍 먹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오색찬란한 형형색색의 야채들을 즐겁고 신나게 먹는다. 그리고 즐겁게 지낸다. 잘 웃고, 땀 많이 흘리고, 많이 돌아다닌다. 빨빨거리는구나 싶을 정도로 온 동네를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렇게 행복 지수를 높이면 면역력에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어딘가에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 누군가의 시선, 누군가의 표현...
이제 시간이 지나면 보다 많아질 텐데 그 모든 것들은 데스노트 마냥 기록해 두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