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동 김종남 Oct 13. 2022

새벽 한 시간, 노자를 읽는 이유

도덕경은 자연을 모델로 사는 삶을 가르쳐준다

 노자는 도덕경 80장에서 자연을 모델로 삼는 삶의 길을 가르쳐준다.

 “(---)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그걸 탈 곳이 없으리라. (雖有舟輿 無所乘之),

 비록 갑옷 무기가 있어도, 그걸 펼칠 데가 없게 하라. (雖有甲兵 無所陳之) (---)

 자신의 먹거리를 달게 여기고 (甘其食), 자신의 입을 옷을 곱게 여기리 (美其服), 자신의 사는 곳을 편히 여기고 (樂其居), 자신의 습속을 즐겁게 여기리(樂其俗). (---).” 




새벽 5시, TV도 스마트폰도 없는 한 시간, 노자 도덕경을 읽는다. 어딜 읽을까, <文으로 읽는 노자도덕경 / 註解 양회석>, 접혀진 페이지가 펼쳐진다. 도덕경 81장 가운데 가장 짧은 제40장 ‘유생어무(有生於無)’편이다. “되돌아감은 도의 움직임이요 (反者道之動), 부드러움은 도의 쓰임이로다(弱者道之用).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기지만 (天下萬物生於有), 유는 무에서 생기느니라(有生於無).” 


 ‘유’ ‘무’ ‘되돌아감’ ‘부드러움’ ‘쓰임’ 등 추상적 단어가 추상화를 보는 느낌이다. ‘1950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 광주출신 강용운화백(1921~2006)의 ‘드로잉’추상화처럼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내식의,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쇠귀 신영복선생은 <나의 고전독법 강의>에서 “노자가 말하는 돌아감(歸)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이고,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의 근원적 질서”라고 해석했다. 


우리가 전쟁처럼 겪었던 코로나 팬데믹도 ‘천지인의 근원적 질서, 자연에서 너무 멀리 떠났으니 그만 돌아오라’는 계시, 자연이 인간에게 내리는 채찍 아닐까? 노자식으로 해석해본다. 그렇다면 대홍수, 대형산불, 이상기후도 ‘자연이 스스로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일까! 실천철학자 최진석교수는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에서 ‘공자의 철학은 인간성 회복, 노자 철학은 자연을 모델로 하는 문명건설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량소비, 대량생산을 뿌리로 삼아 몸을 키운 현대문명은 ‘우주의 질서, 자연’을 모델로 하는 문명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현대문명의 선두주자, 미국은 세계 1차 대전 전승국으로 1920년대에 세계 제조업의 42%를 차지하며 사치와 향락, ‘광란의 시대’를 누렸다. 그러다가 1929년 10월24일 (검은 목요일), 하루아침에 주가가 절반으로 꺾이며 실업률 25%의 경제 대공황에 빠져든다. 


 전남대 사학과 김봉중교수는 ‘과잉생산과 과잉설비, 과잉재고가 1930년 경제 대공황의 큰 원인중 하나’라로 말한다. 대량소비를 바탕으로 하는 한, 어떤 문명이든 거품경제 키우기와 거품경제 터짐의 되풀이이다. 세계 2차 대전으로 다시 호황을 맞았던 미국경제는 2008년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위기를 겪는다. 한국은 미국을 모델로 삼아 현대문명 선진국 대열에 빨리 올라섰다. 덕분에 1998년 호된 IMF 경제위기를 겪었다. 


‘코로나 대전’은 나라끼리 인간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은 아니다. 우주의 질서에 거스르는 인류가 맞는 재앙이다. 자연에 반하여 일어난 재앙은 문명선진국, 후진국을 가리지 않는다. 최대강국도, 어떤 개인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재앙에서 인간 개인이 살아남는 길은 무엇인가.


도덕경 80장을 주문처럼 소리 내어 외워본다. ‘감기식, 미기복, 락기거, 락기속,’ 맛있게 밥 먹자! 편안하게 거하자! 길 걷고 일기 쓰며 다반사(茶飯事)를 즐기자! 창문을 연다. 새벽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신다. 새로운 아침이다.      2021.08.16.

작가의 이전글 디지털 한국이 만들 유토피아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