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한정된 목숨을 기지고 태어난 인생, 슬픈존재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 (---) //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 버릴까봐 / 나는 두 팔로 껴안고 /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 왜 그래. / 왜 그래. / 왜 그래. / 내 눈물이 떨어져 /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 (---) ” < 괜찮아 / 한 강 >
살다 보면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순간들이 많다. 시인 이성복은 “오랫동안 나는 슬픔에 대해 생각해왔다. (---)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째서 슬픔 뒤에 다시 슬픔이 남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라고 시집 << 그 여름의 끝 >> 뒷날개에 후기를 썼다. 인간은 한정된 목숨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슬픈 존재일 수밖에 없는가.
추운 겨울날 흙길을 맨발 걷기 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발가락이 얼어붙을 듯 시리고 아프다. 20분이나 꾹꾹 눌러 참는다. 방에 들어오니, 발바닥에 피가 돌며 후끈해진다. 짜릿한 쾌감이 종아리로 온몸으로 퍼진다. 이런 고통은 썩은 이빨 뽑는 것처럼, 건강한 쾌감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참을만하다.
그러나 뜬금없이 슬퍼지는 날, 건강한 기쁨으로 보상받지 못할, 반대말이 없는 슬픔은 어떻게 감내해야 하나. ‘괜찮아 --, 다 괜찮아!’라고 나에게 말해본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 어떻게 해야 하는지 /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 괜찮아 // 왜 그래,가 아니라 / 괜찮아. / 이제, 괜찮아. < 괜찮아 / 한 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