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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Oct 15. 2022

'나는 못 해요!' 말할 용기 있나요?

'팔자소관' 밑 바닥에는 '내 길을 찾아 내달린 용기'가 있었다

‘나는 못 해요’라고 남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용기다. 

모두 부러워 몰려가는 환한 길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내 길을 찾아 나서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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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못 해요'라고 남에게 말하는 용기는 

'난 내길을 갈 수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용기다. 






서울 사는 친지 한 분은 고향인 광주에 들렀다 귀경할 때는 꼭 기차를 이용한다. 술자리 모임에 참석한 후 버스를 탔다가 고생을 겪은 후부터다. 출발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생리작용이 급해진 것, 중간 휴게소까지는 한 시간 더 기다려야 한다. 용기를 내어 ‘중간에 한 번 멈춰달라’고 기사에게 사정하려다 참고 또 참았다. 너무 참아서 막상 휴게소에 내렸을 때는 걷기조차 힘들었다.

 

그때 고생한 일은 술자리에서 두고두고 얘깃거리다. 남 얘기가 언젠가 내 얘기가 된다. 얼마 전 유성에서 송년 모임이 있어 참석한 후 바로 차편이 닿아 광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광주까지 2시간 걸린다. 그런데 40여 분 달리자 소변이 급해졌다. 송년회 술자리가 화근이었다. “중간에 한 번 안 쉽니까?” 기사님께 물어보았다. “아니요.” 답이 너무 간단하다. 10여 분 더 견디다 결국 ‘용기’를 냈다. “한 번 쉬어갑시다.” 달리는 고속버스를 나 한 사람 때문에 멈추게 한 일은 처음이었다.

 

‘용기’란 ‘남을 위할 때만 내야 하는 기운’이라고 믿던 때도 있었다. 서울 친지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참고 또 참으며 용기를 못 냈다. 혜민 스님은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에서 ‘나 자신을 위한 용기’를 말한다. 이규경 시인의 <용기>라는 시를 소개하며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라고 말한다. 올해도 고시에 또 떨어졌다고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소개한다.

 

“‘나는 못 해요’라고 말해도 됩니다. 나에게 맞는 길을 남에게 묻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천천히 잘 찾다 보면 고시에 붙은 것보다 결국엔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길게 보면 낙방한 것이 훨씬 더 잘된 일이 될 수 있으니 처음엔 좀 답답하고 막막하더라도 용기 내어 나의 길을 찾아보세요.”

 

<90년생이 온다>에서 저자 1982년생 임홍택은 우리나라를 ‘취준생(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이 공시족인 나라’라고 표현한다. “20대 한국청년들(1990년대 생)은 9급 공무원 되길 원하는, ‘9급 공무원 세대’라고도 할 수 있다”라며 ‘공시생(‘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100명이 시험을 치르면 약 2명만 합격(2016년 최종합격률 1,8%)하고 나머지 98명은 대부분 또 이듬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말한다.

 

몇 년째 시험에 매달려 사는 취준생, 공시생은 혜민 스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혜민 스님은 하버드를 나와 미국 대학교수 생활을 하다 용기를 내어 한국 스님이 되었다. ‘나는 못 해요’라고 남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용기다. 모두 부러워 몰려가는 환한 길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내 길을 찾아 나서는 용기다. 달리는 고속버스를 멈추게 한 용기는 10분 고통 끝에 나왔지만 새 인생길을 찾는 용기는 몇 년 고통 끝에 나올지 모른다.

 

20대 한국 청년들은 21세기 이 나라를 이끌어갈 중심세력, 21세기의 주인이다. 주인이 걸어가야 할 인생길은 하루 이틀 머무르다 떠날 손님이 가는 길과 다르다. 손님이 정해줄 수도 없다. “저 길에 한 아이 노래 부르며 가네 / 별빛 같은 그 노래 멀리서 가물거리네 / 동그만 어깨위에 어스름 내리는데 / 세상에 없는 노래 부르며 멀리 가네 / 세상에 없는 노래 부르며 멀리 가네” 국악인 한승석이 노래하는 <없는 노래>가 떠오른다.

 

한승석은 29살 때 뒤늦게 판소리를 시작했다. 그는 ‘서울법대를 나왔으면서 어떤 계기로 국악인이 되었느냐?’는 질문을 100번 이상 받았다고 한다. 그는 ‘팔자소관’이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한다. 대학 때 우연히 들어간 사물놀이패 동아리, 진도 출신, 가족 DNA 등등이 작용한 ‘팔자소관’이다. 그러나 '팔자소관'이란 말 밑바닥엔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내달린 용기’가 크게 자리잡고 있음을 누구나 짐작할만하다. '나는 못 해요'라고 남에게 말하는 용기는 '난 내길을 갈 수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용기다.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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