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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Oct 17. 2022

억새와 갈대, 구별할 줄 아나요?

길은 어디에나 있다, 아름다운 별에 발자국을 찍고 있는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 

                                       <무식한 놈 /  안도현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물론 억새와 갈대도 구별하지 못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 떠나지는 않아도 / 황혼마다 돌아오면 가을이다 // ------ <가을의 노래 / 김대규 >” 가을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서창 들녘 억새 축제에 갔다. 영산강 변 서창들녘 3.5km 길. 맘 놓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환하게 웃음꽃 피운 사람 물결이 은빛 억새밭 사이로 흐른다. 억새밭 포토존 액자에 두 아이와 아내를 앉히고 사진을 찍는 젊은이, 멀리 가설무대에선 ‘그곳으로 떠나요’ 노랫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억새 들녘 길엔 억새만 있는 게 아니다. 갈대도 있다. 길섶에는 쑥부쟁이, 강아지풀이 구색 맞추듯 무더기무더기 피어있다. 


지난 주에는 장성 노란꽃 잔치에 갔다. 3.2km 황룡강 변에 펼쳐진 백일홍, 코스모스, 구절초, 해바라기 꽃길을 인파에 묻혀 세 시간 걸었다. 막말 쏟아내는 TV도 없고 취업난, 무역분쟁도 보이지 않는다. 다들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자유로운 육체’답게 얼굴이 밝다. 환경운동가이자 비핵주의자인 리베카 솔닛이 <걷기의 인문학>에서 말한 대로 ‘자유로운 걷기에는 자유로운 장소, 자유로운 시간, 자유로운 육체가 있다.’ 


자유로운 걷기는 행복이 동반자다. ‘행복의 양은 자유의 양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2000년 <걷기 예찬>에서 "걷기는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걷는 사람은 시간 부자다. 그는 자기 시간의 하나뿐인 주인이다.“라고 걷기예찬을 했다. 걷기 명상을 전 세계에 전파한 틱낫한 스님은 2003년 3월 한국을 방문하여 우리나라 여러 곳을 명상하며 걸었다. 방한에 맞춰 '삶을 바꿀 수 있는 힘, 내 안에 있다'는 부제로 한국판 <힘>을 발간했다. 


 책을 찾아 다시 읽어본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도 잠시 책장을 덮고 가만히 걸어보라. (----)  마음을 발끝에 모으고 한 걸음 한 걸음 자유인으로 걸어라. 정말 멋진 일 아닌가? ” 틱낫한 스님은 숲길, 꽃길, 여행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명상 걷기는 꼭 길이 있어야 걷는 걷기가 아니다. 아름다운 지구 위에 발자국을 찍는 걷기다. 틱낫한 스님은 2017년 <너는 이미 기적이다>에서 “지금 우리는 아름다운 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다. 우리의 걸음 자체가 이미 하나의 기적이다.(--- )발바닥으로 땅에 입 맞추듯 어루만지듯 걸어가는 걷기 명상 속에 큰 사랑이 깃들어 있다.”라고 말한다. 


 책장을 덮고 집 앞 우산공원을 걷는다. 흙에 입맞춤하는 느낌, 대지의 힘이 발끝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지는 느낌을 느끼려고 마음을 발끝에 모은다. 나는 아름다운 별에 발자국을 찍고 있는가?   “---  //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바람에게도 길은 있다 / 천상병> "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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