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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Oct 18. 2022

 '묵언수행' 할 수 있나요?

마스크 세상을  겪으면서도 막말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거리에 나설 때마다, 사람이 보일 때마다 마스크를 고쳐 쓰던 세월이었다.

얼굴없는 마스크가 인간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마스크 시대 3년을 거치면서 우리가 달라진 것은 무언가.

막말이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난무하는 세태는 이찌해야 할까.  

  



“우리가 얼마나 거짓에 막말을 했으면 입을 마스크로 틀어막고 살라 하시겠습니까?”  ‘웃어 보시길’이라는 SNS 유머 다. 이제 몇년동안 입을 마스크로 막아왔으니, 우리 막말도 좀 줄었을까. 실상은 그리 쉽지않다. 오히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지니 막말 빈도와 강도가 높아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사회적 피로도가 쌓이면서 높아지는 스트레스를 막말로 푼다는 얘기다. 


최근 콜센터 아르바이트 1년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전화로 고성 막말을 퍼붓던 민원인(소위 진상)이 나중에 가서야 아르바이트 생에게  “당신에게 한 말이 아니다. 내가 어디다 풀 곳이 없어서”라고 사과했다고 한다. 막말은 마스크로 막아지는 게 아니었다. 디지털 문자로 변한 악담, 악플, 가짜뉴스가 SNS를 통해 단숨에 지구를 몇 바퀴 돈다. 디지털 막말은 육성 막말보다 더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막말은 세상사람을 아군과 적군으로 편을 가를 때 생겨난다. 상대편을 적으로 몰아세우기서다. 퍼 나르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처럼 자기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적과 아군, 좌우, 동서로 쉽게 나눌 수 있는 2분법 관계가 아니다. 상하좌우, 동서남북, 적 아군 중립 초월 등 4분 5분 되는 다양성 관계다. 다양성인데다 그마저 시간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아군, 오늘의 아군이 내일은 적군이 된다. 어제 내가 던진 막말이 오늘 나를 겨눈 칼이 되어 돌아온다. 예전 건넨 ‘감사합니다’ 한마디가 어느날 장미꽃송이가 되어 날아오기도 한다. 


“잊지 마! 네 ‘말’이 누군가에겐 ‘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취미는 악플, 특기는 막말>이란 옴니버스 소설책이 표지에 써붙인 표제어이다. ‘언어폭력 시대에 악플과 막말을 재미로 사용하는 아이들에게 권하는 5편의 처방전‘이라는 소개말대로 어린 시절 막말 세례에 꺾이고, 또 그걸 넘어서는 성장 이야기가 실제처럼 절절하게 펼쳐진다. 2분법이 아닌 4분법 5분법 생존 처방을 배운다. 


사람은 고난을 겪고 교훈을 배우면서 살아남아야한다. 마스크는 1,2차 대전보다 더 혹독한 코로나 고난에서 인류를 구원해낸 천사다.  3년여 마스크를 쓰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 부산 어느 목사님은 ‘마스크는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계시’라고 설교했다. 배웠으면 달라져야 한다. 마스크를 쓰고서도 달라지지 않는 사람은 구제불능이다. ‘내 말 줄이고 남 말 많이 들었나’ 반성한다. 


'내말을 줄이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최상의 방법은 불가에서 행하는 묵언수행이다. 말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어느 커뮤니케이션 교수는 방학동안 43일간 묵언수행을 실천하면서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라는 책을 냈다. 손짓발짓 하는 대신 스파트폰 메시지가 있어 훨씬 쉬어졌다지만 묵언수행은 고행이다. 

나는 며칠이나 묵언수행할 수 있는가?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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