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동 김종남 Oct 18. 2022

왜 우리는 시를 암송해야 하나요?

한 마리 제비를 보고 천하에 봄이 왔음을 느낀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  ”  

                                           < 바람이 불어 /  윤동주>





 “왜 우리는 시를 암송해야 하나요?” 장자 철학을 공부하는 자리였다. 일요일인데도 비움 박물관은 시민 수강생들로 가득 찼다. 최진석 교수가 ‘시인은 문자의 지배자이고, 일반인은 문자의 사용자이다. 우리는 시를 암송해야한다.’고 얘기하자 한 수강생이 던진 질문이다. 시 읽기를 그냥 막연하게 좋아하는 나도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최교수는 ‘지적인 삶, 노력하는 삶을 살기위해, 함부로 막 사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시를 암송해야 한다.‘고 답했다. 혹시 시를 암송하지 않으면 ’함부로 막사는 삶‘이 되는 건 아닐까라고 느껴질 만큼 확실한 어조였다. ’지적인 삶‘을 살기 위해 적극 노력은 못하더라도 삶이 함부로 막사는 삶이 되도록 놓아둘 수는 없겠다. 


 시 암송과 가까워진 계기가 생각난다. 십수 년 전 첫눈 오는 날 깜짝 동창 모임에서 김춘수의 시 <꽃>을 낭송했던 사건(?)이다. 그해 늦가을 동창회 때 사업가 친구가 ‘첫눈 오는 날, 술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대학 때 문학도였던 사업가 친구는 조건을 하나 걸었다. ‘시를 한 수씩 외워오라’였다. 첫눈 오는 날 깜짝 모여 시를 읊으며 술을 마신다, 운치가 있는 제안이었다. 


 시 암송이라니! 고교시절 외웠었던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이육사의 <청포도> 몇 구절, 그것도 토막토막 생각난다. 그때 김춘수 시인(1922.11.25.~2004.11.29.)이 타계하셨다는 신문 기사가 났다. 대표 시 <꽃>도 소개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 -------”  


 짧지 않은 시지만 구절구절 마음에 닿았다. 시인이 말하는 ‘꽃’은 봄여름 벌 나비가 좋아하는 꽃만은 아니었다. 열심히 외웠다. 한 달이 안 되어 첫눈이 내렸다. 시를 혼자 암송하는 것도 어려운데 여럿 앞에서 메모도 보지 않고 큰 소리로 줄줄 낭송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단 한 번 시 낭송이었지만 나에게 새로운 시 읽기 세상을 열어준 사건이었다.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저자 신영복 교수(1941~2016)는 <담론>에서 ‘장기자랑 때 <서시>를 암송했던 초등학생 이야기’를 전한다. “가난하여 비싼 과외 대신 시 암송모임에 다녔던 초등학생이 소풍가서 장기자랑 차례가 되자, 암송 모임에서 공부했던 윤동주의 <서시>를 암송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놀랍게도 그날은 물론 그 후 그 아이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아이돌그룹의 춤을 흉내 내거나 유행가를 부르는 다른 아이들의 화려한 장기자랑’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아이들은 밋밋하고 무거운 시 낭송에 갈채를 보냈을까. 영화 속 이야기처럼 놀랍고 신선하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 세상이어서 가능했을 일이다. 설마 ‘죽는 날까지’로 시작되는 <서시>의 시구에 감동하지는 않았겠지.

신영복교수는 “시를 암송한다는 것은 시인들이 구사하던 세계 인식의 큰 그릇을 우리가 빌려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마리의 제비를 보고 천하에 봄이 왔다는 것을 알아내는, 상상력을 키우는 일’로 비유한다.


 어른인 우리는 시를 얼마나 암송해야 상상력이 커질까. <서시> 암송에 갈채를 보내는 초등학생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황룡강 바람길’을 걸으며 윤동주의 <바람이 불어>를 소리내어 암송한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 바람이 부는데 /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2019.04.08.          

작가의 이전글  '묵언수행' 할 수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