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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산다는 것은 잘 잊어버리는 일

추억의 초가라도 지어야한다

by 현동 김종남

“만남보다 이별이 익숙한 나이가 되면

전화번호 잊어버리고 주소 잊어버리고

사람 잊어버리고, 나를 슬프게 하는 것 모두

주머니 뒤집어 탈탈 털어 잊어버린다 (---)”

< 은현리 홀아비바람꽃 / 정일근 >


난 지금, 몇 사람 이름이나 외울 수 있나. 사람 이름은 외우기 어렵다. 누구와 얘기하다 상대방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 명함을 주면 꼭 되묻는다. “이름을 한자로 어떻게 쓰십니까?” 이름을 잘 기억하기 위한 방식이다. 한자가 가진 뜻과 모양을 함께 떠올리면 그래도 더 오래 머릿속에 남는다.


잊어버리는 일에도 순서가 있다면 아마 사람 이름이 가장 먼저일 것 같다. 다음은 땅 이름일까. 슬픈 일, 괴로웠던 사건, 행복한 날들도 잊혀진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기억마저도 화사하게 덧칠해지면서 추억으로 변한다. 세상사란 모두 기억이란 성곽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만약 기억의 성곽이 무너지면 추억의 초가라도 지어야 한다.


고교 졸업 60주년 기념사진을 들여다보며 친구들 이름을 한자로 써 본다. 함께한 60년 세월이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맞다, 산다는 것이 잊어버리는 일이라면, 잘 사는 것은 잘 잊어버리는 일이라는 것을---. “나도 홀로 피어있을 뿐이다 / 그것이 내 인생이다 / 내가 나를 인정하고부터 편안하다 / 편안해서 혼자 우는 날이 많아 좋다 // 다시 바람 불지 않아도 좋다 / 혼자 왔으니 혼자 돌아갈 뿐이다 < 은현리 홀아비바람꽃 / 정일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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