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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Oct 22. 2022

인생여행에서 내 배낭은 몇kg인가?

두 달간 2천리를 걸은 한비야의 배낭은 10kg이었다

'인생은 최고의 여행'. 니체의 말이다. 

니체 같은 대철학자는 얼마만큼 짐을 지니고 인생 여행을 했을까. 

아마 책 짐이 많았을 것 같다. 저술가나 교수들은 책 짐으로 고생을 많이 한다. 

서울 성균관대 앞 한옥에 살던 한 퇴임 교수는 책 무게로 방고래가 꺼져 지하층이 있는 양옥으로 이사를 했다. <한국의 책쟁이들>에 실렸던 실화다. 

우리 같은 속인들이 인생을 ‘최고 여행’으로 만들려면 짐 무게가 얼마쯤 되어야 할까.




인천공항에 가면 수하물 계량기가 있다. 옛날 쌀집에서 쌀가마니 올려놓고 재던 계량기 비슷하다. 짐을 부치기 전, 무게가 얼마인가 미리 한 번 재보라는 셀프 계량기다.. 오가는 사람들이 짐을 올려놓아 본다. 15kg, 18kg. 한 소년은 재미 삼아 짐과 같이 올라선다. 42kg이다. 내 가방을 올려본다. 21kg, 허용치 23kg에는 못 미치지만 꽤 무겁다. 일찍 공항에 와서 아직도 두어 시간이나 출국 시간이 남아있다. 주위를 둘러보다 나도 살짝 올라서 본다. 65kg이다. 두꺼운 옷에다 신발 때문인지 실제 몸무게보다 3kg이 더 나간다. 가만 생각해보니 묵직한 내 짐 가방보다 3배가 더 되는 무게이다. 비행기 타는데 가장 무거운 짐은 사람일 것 같다.


널찍한 공항 출국장은 명동이나 충장로처럼 붐빈다. 다들 바퀴 달린 가방이나 카트를 가볍게 밀고 다닌다. 짐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바퀴가 없는데도 짐보다 무거운 몸을 잘도 옮겨 다닌다. 여행이란, 짐의 입장에서 보면 주인 몸 따라 이곳저곳 여러 장소로 옮겨 다니는 것이다. 짐 주인은 짐 싸고 옮기고 풀고 그러다 보면 여행이 끝난다.


짐 없는 여행은 없을까. ‘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여행한다’는 사람도 많은 세상인데 ---. 6년간 세계 65개국을 여행했던 여행가 한비야는 큰 여행을 떠나기 몇 주 전부터 ‘짐 싸기’를 한단다. 한비야 짐 싸기는 우리 짐 싸기와는 정반대이다. 한꺼번에 싸놓고 며칠씩 고심하면서 한 가지 두 가지 짐을 덜어낸다고 한다. 큰 여행일수록 더 공력이 든다는 짐 무게 줄이기 작전이다.


사람 사는 일도 길게 보면 여행이다. 살림살이라는 것이 짐 들여놓고 버리고, 싸고 옮기고 풀고 하는 일 아닌가. 그러나 인생 여행에서 짐 싸기는 무게 줄이기보다 무게 키우기 작전이 대부분이다. 큰 집, 큰 자동차, 큰 냉장고 --. 물질 만능주의 세상은 ‘큰 짐이 행복’이 된다고 가르친다. 상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죽자 살자 짐 늘이기 대열에 서야 한다.


살림 짐은 집을 옮길 때나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 된다. 유목민은 한 계절에 몇 차례씩 집을 옮겨야 한다. 그들은 짐 무게를 언제나 실감하게 된다. 지난여름 몽골 여행 때 원통 천막 같은 게르에서 이틀 밤을 지냈다. 누우니 천장에 뚫어진 통풍구로 밤 별이 찬란하게 보인다. 8월 중순인데도 새벽에 추웠다. 꺼진 장작불을 다시 붙이느라 헌 신문지에 불붙여 입김을 불었다. 타닥타닥 통나무 타는 향기, 일렁이는 불꽃, 정말 황홀한 잊지 못할 체험이다. 몽골 유목민은 이 게르를 한 시간에 뚝딱 분해해 두 시간 만에 옮겨 짓는 이동 생활을 한다.


얼마전 20여 년 살아온 아파트를 줄여 작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 먼저 짐 줄이기부터 시작했다. 큰 장롱은 중고가구점이 가져갔다. 책은 수백 권을 고물상에 넘겼다. 낡은 구형 소파는 가져가는 데가 없다. 너무 커 승강기 안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버리는 데도 돈이 든다. 결국 사다리차 빌리는데 7만 원, 인부 2만 원, 폐기물 처리비용 1만 5천 원까지 모두 10만 5천 원이 들었다.


세계여행에서 돌아온 한비야는 1999년 3~4월 두 달간 해남 땅끝에서 민통선까지 걸었다. 배낭을 메고 2천 리를 걷는 도보여행이다. 그때 배낭 무게가 10kg이었다고 한다. 인생 여행에서 내 배낭 무게는 몇 kg일까?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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