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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Oct 23. 2022

평생 해낸 일 중 가장 잘한 일은?

'별 헤는 밤'의  끝부분 4줄이 덧붙여지게 된 사연

정병욱 교수(1922~1982)를 아는가?

국민시인 윤동주(1917~1948)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윤동주 육필원고를 보존해 오늘날 수천만 국민이 윤동주 시를 애송할 수 있게 했던 정병욱을 모르는 사람은 많다. 

정병욱 가옥(2007년 근대문화유산 지정)이 있는 광양에서 정병욱 탄생 1백 주년을 맞아 제4회 전국 윤동주 시 낭송대회가 열렸다. 

2022년 9월 24일부터 9월 25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에서 모여든 50여 시 낭송가들은 광양 문화예술회관에 모여 윤동주 혼을 불렀다.

윤동주의 육필원고 (이미지출처 : v.daum.net) 

                                   

2019년 ‘밤마실 남도 한 바퀴’를 타고 ‘시를 품은 집’을 보러 갔었다. 광양 망덕포구, 전어 횟집들 사이에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이 있다. 해변 길에서 유리창을 통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1925년 지어진 점포형 주택, 윤동주 육필 원고(하늘과바람과별과詩)를 마루장 밑에 감춰, 수천만 국민이 윤동주 시를 애송하도록 살려낸 ‘시를 품은 집’이다.


문화관광 해설사는 초겨울 노을빛이 반짝이는 섬진강 끝자락 망덕 바다를 바라보면서 윤동주 유고 한 부가 살아남게 된 사연을 서사시처럼 풀어간다. 1940년 정병욱(鄭炳昱;1922~1982)은 윤동주(尹東柱;1917~1945)를 연희전문에서 만나 하숙방 글 벗이 된다. 1942년 윤동주는 자필로 19편의 시를 3권 써서, 한 권은 자신이, 또 한 권은 스승에게, 마지막 한 권은 가장 가까운 글벗인 후배 정병욱에게 건네고 일본으로 떠난다.


1944년 1월 정병욱은 학도병으로 끌려가기 전 모친에게 윤동주 육필원고를 맡긴다, 모친은 점포 마룻장 3장을 뜯어내고 원고가 든 항아리를 묻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정병욱은 항아리 속 유고를 꺼내 1948년 윤동주 시집을 발간한다. 정병욱이 윤동주 시를 살려냈다. 그 후 정병욱은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가 되어 27년간(1957~1982) 재직하면서 판소리학회(1974년)를 창립하고 고전시가와 민족예술을 학문으로 전달한다. 가장 큰 업적은 윤동주 알리기다. “동주의 노랫소리는 이 땅의 방방곡곡에 메아리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으니 ---- 내가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줄 수 있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밤늦게 ‘광양 밤마실’에서 돌아와 정병욱이 1975년께 쓴 ‘잊지 못할 윤동주’라는 수필을 인터넷에서 읽었다. 윤동주가 자필 시집 3부를 쓰게 된 사연, ‘풍화작용’이라는 시어 한 마디 때문에 몇 달간 고민하는 사연, ‘별 헤는 밤’ 끝부분 4줄을 덧붙여 쓰게 된 사연이 영화를 보듯 생생하다. “'별 헤는 밤'에서 그는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로 첫 원고(原稿)를 끝내고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에게 넌지시 '어쩐지 끝이 좀 허(虛)한 느낌이 드네요.'`    xxxxxxxxxxxxxxxxxxxxxxxxxxx 하고 느낀 바를 말했었다. 그 후, 현재의 시집(詩集) 제1부에 해당하는 부분의 원고를 정리하여 '서시(序詩)'까지 붙여 나에게 한 부(部)를 주면서 ’ 지난번 정 형이 별 헤는 밤의 끝부분이 허하다고 하셨지요. 이렇게 끝에다가 덧붙여 보았습니다.’ 하면서 마지막 넉 줄을 적어 넣어 주는 것이었다.”


2016년 영화‘동주’를 보고 윤동주 시집을 샀었다. 1955년 정음사(正音社)가 발간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그대로 복사한 복사본이다. 그때 정병욱이 항아리에서 꺼내 세상에 공개한 유고시집(복사본)도 같이 왔다. 유고 복사본을 다시 들쳐본다. 좋은 세상이다. 윤동주가 바로 지금 쓴 듯, 항아리에서 바로 나온 듯, 누르끼한 색깔까지 400자 원고지 26장 그대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또박또박 담백한 필체, 옛 철자법, 줄로 긋고 옆에 고쳐 쓴 단어, 행간에 조그맣게 써서 끼워 넣은 글, 윤동주 숨결이 그대로 느껴진다. ‘별헤는 밤’ 원고 끝 날짜 “1941.11.5.”를 쓴 뒤에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 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덧붙인 4줄도 선연하다. 정병욱이 ‘허하다’고 해서 덧붙여 적어 넣은 4줄이다. “별하나에 추억과 / 별하나에 사랑과 / 별하나에 쓸쓸함과 / 별하나에 동경과 / 별하나에 시와 /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


‘별헤는 밤’을 암송해본다. 정병욱이 묻고 답한 물음을 스스로 물어본다. ‘우리가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은 무언가?’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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