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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Nov 09. 2022

 붓펜으로 내길 그리세요

병역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청년들의 고민은 무엇인가?

군인들에게 인생나눔 멘토링을 나갔다. 

‘엄격한 규율 아래 병역을 수행하고 있는 청년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제일 큰 고민 하나만 써보라’고 주문했다.

‘공부’, ‘진로’, ‘직업’, ‘취업’, ‘돈’, ‘장래’ 등등--. ‘공부’와 ‘진로’란 단어는 몇 번이나 나왔다.

예상대로 진로에 관한 고민이 가장 컸다.

'고민을 글쓰기로 해결하는 법’을 주제로 두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

멘토 선생만 떠드는 한 방향 강의는 아니다. 서로 주고받는 쌍방향식이다.

오히려 수강자인 멘티들이 자기 생각을 발표하는 시간이 더 많다. 




병역중인 그들의 장래 꿈은 무엇일까? 역시 구체적인 단어로 쓰라고 했다. ‘히어로’, ‘부자’, ‘재벌’, ‘월드스타’, ‘뮤지션’, ‘빌딩주인’, ‘요리사’, ‘광고디자이너’, ‘선생님’, ‘사업가’, ‘행복’ --. ‘부자’ ‘재벌’이란 단어가 몇 번씩이나 나왔다. 추상적인 단어도 많았다. 젊은 그들이 생각하는  부자, 재벌의 기준은 어느 정도일까? ‘몇십억, 몇백억?’ 한 번 물어보았다. 선뜻 대답을 못 한다. 


"자기가 버는 것보다 더 적게 쓰는 사람이 부자이다.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쓰는 사람은 가난뱅이이고---" 유머식 답을 던져보았다. 너무 엉뚱한 썰렁 개그였을까. 웃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긍정하는 것 같지도 않다. 물론 자신들도 아직 확실하게 기준이 서 있을 리 없다. 단지 부자나 재벌이 되면 장래에 대한 고민들이 단박에 모두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을 터이니까.


대학 재학 중에 온 청년도 있겠지만 학교를 나왔건 안 나왔건 병역을 마치면 취업 문제가 코앞에 닥칠 것이다. 나 역시 군대 시절 진로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강원도 양구 최전방에서 ROTC 장교로 복역했다. 아무리 고민해보아도 제대 후 취업할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학자가 되기 위해 학업을 계속할 자신도 없었다. 군 생활은 사회와 가장 단절된 체제이다. 세상 정보도 어두웠다. 


2년 반이라는 세월은 짧지 않다. 그러나 군대 생활은 빨리 지나갔다. 사회에 복귀하자 한동안 허우적거렸다. 산속에서 수도를 하다가 속세로 나온 스님처럼 세상에 빨리 적응하지 못했다. 군대 생활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은 별로 쓸모가 되지 않았다. 군대에서 간간이 들여다본 영어단어장이나 몇 권의 세상 서적도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차라리 그때 소설을 썼다면 어땠을까. 격리된 세계인만큼 특이한 일도 많았다. 내가 당직사관을 서던 밤, 고문관(?) 병사가 술을 먹고 난동을 부렸다. 엄하게 질책을 했다. 뛰쳐나간 그가 칼을 들고 나타났다. 부하들이 말리는 사이 난 도망쳤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던 겨울날 부대 앞 개울에서 스케이팅을 배우다 개울이 쩍쩍 갈라져 허둥거렸던 일도 있다. 청와대 기습사건을 벌였던 김신조 일당 때문에 걸린 비상 출동, 며칠씩 언 땅을 깨고 야영하던 고생 등등--. 김신조사건 덕분에 복무기간도 3개월 연장 되었었다.


지금 되돌아 보면 마치 먼 달나라 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까마득하다. 정말 그런 일들이 있었을까. 소설은 못 썼더라도 일기는 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그 시절이 나의 인생에 확실한 획을 그은 기억으로 뚜렷이 자리 잡았을 터이다. 더 나아가 진로에 대한 고민은 틀림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추상적인 고민을 구체적인 고민으로, 허황한 부자의 기준을 내 수준에 맞는 현실적인 기준으로 만드는 과정이 바로 해결의 길이다. 세상에 나와 허우적거리지 않고 제 길을 갔을 것이다.


준비해간 붓펜과 일기메모장을 멘티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고민을 이 붓펜으로 또박또박 석 달 열흘 동안 일기메모장에 써보라’ 당부했다. “군대 생활은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입니다. 사람들은 비싼 돈을 들여 멀리 여행을 떠나지만 여러분은 국가에서 장기간 여행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이 천재일우 여행 중에 큼직하고 확싷한 붓펜 글씨로 자신의 길을 찾으세요.”        2015.10.30.


서예와 추상화를 접목한 화가 오수환의 작품 (출처: archive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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