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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Nov 10. 2022

중 1년생들은 무슨 책을 좋아할까?

"어른들이란 다 한때는 어린애들이었던 것이 아닌가"

중 1년생들은 무슨 책을 좋아할까? 좋아하는 책 이름 하나만 쓰고, 또 좋아하는 이유와 기억나는 구절이나 줄거리를 써보라고 했다. 자유학기제 중 1년생을 멘토링 하는 시간에서였다. 


지언이는 초등학교 6년 독서토론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주신 <엄마>라는 책이 좋다면서 ‘암에 걸린 엄마가 죽어 별꽃이 되는’ 줄거리가 감동적이라고 했다. 수범이는 ‘뺑소니범 아들과 살인자의 딸이 친해지는 예상치 못한 스토리에 끌렸다’면서 <치타소녀와 좀비소년>을 들었다. “우리는 친해지는 중이다. 하지만 너무 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너무 힘들지만 우리는 사랑한다”는 문구를 기억나는 구절로 소개했다. 


태현이는 이해하기 힘들고 친하지 않은 과학을 쉬운 이야기로 풀이해주고 궁금증에서 시작한 과학자들의 성장 이야기로 가득한 <과학은 공식이 아니라 이야기란다>를 꼽았다. 구인이는 ‘남강민(주인공)’이 형과 아빠에게 자주 혼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게 자기 사정과 비슷해서 <개같은 날은 없다>가 좋다고 얘기한다. 혜영이는 <귀신전>, 나린이는 <<엘릭 시걸의 러브스토리>, 유민이는 <방탄소년단>이란 만화책을 좋아한다. 


나로선 들어보지 못한 책들이다. 덧붙일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아이들의 발표를 열심히 듣기만 했다. 중학생 때 난 무슨 책을 좋아했을까. <이솝우화>나 <톰소여의 모험> 정도 였다. 지금 아이들은 그런 책을 모른다. 그들도 커 가면서 좋아하는 책이 여러 번 바뀔 것이다. ‘어릴 때 나는 이런 책을 좋아했다’고 얘기할 책을 찾다 서재에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발견했다. 


누렇게 바랜 표지를 열자 책 맨 뒷장에 읽은 날자가 씌어있다. ‘1973년 5월16일5월 16일’, 43년 전, 어릴 때가 아니다. 청년 때이다. 그 밑에 또 날짜가 적어져 있다. 1987년 3월1일, 장년 때이다. 2차 대전 군용기 조종사였던 생텍쥐페리(1900~1944)가 43세 때 쓴 어린왕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기보다 어른을 위한 동화다. 노년인 지금 다시 읽어본다. 


맨 앞장은 ‘꼬마이었을 때의 레옹베르뜨에게’ 보내는 헌사(獻辭)다.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것에 대해 나는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 그 어른이 지금 추위와 굶주림을 겪으며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어른을 달래줄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책을 그 어른의 어린 시절에 바치고 싶다. 어른들이란 다 한때는 어린애들이었던 것이 아닌가, ---” 


역자인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은 책 뒤쪽에 ‘작품해설’을 써 붙였다.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를 죽음의 위협 속에서 만났듯이, 나도 나의 ‘어린 왕자’와, 삶의 무의미가 주는 위협을 버티어내다가 만났다” 김현은 20대 대학생 때 비좁은 골목을 아홉 개나 돌아서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자취를 하면서 생존의 어려움, 삶의 건조함과 무의미 속에 빠져 헤매고 있을 때 ‘어린 왕자를 만나 삶의 상당 부분을 의미 있는 어떤 것으로 바꿔 놓을 수 있었다’고 서술한다. 


내가 ‘어린왕자’를 만난 때는 언제였나? 처음은 청년기였다. 두 번째는 장년기였다. 그때 ‘어린 왕자’가 나에게 감동을 준 구절은 무엇이었을까. 빨간 밑줄이 쳐져 있다. “사람들이란, 특급 열차를 집어 타지만, 무얼 찾아가는지 모르고 있어. 그래서 초조해가지고 빙글빙글 도는 거야--- 하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장미꽃 하나에서도 물 조금에서도 찾아지는 건데---” 


아이들 덕분에 30여 년 만에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다. 세 번째다. 이번에는 본문이 아닌 김현의 ‘작품해설’에 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20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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