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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Nov 12. 2022

 '투룸 체험'후 찾은 무등산일출

철학은 극한적인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


언론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에릭 와이너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2021년 한국판 발간>에서 

‘죽은 철학자에게서 얻은 인생 교훈’이라며 “삶의 의미를 찾는 것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라”라고” 말한다.

‘자연주의 철학자 소로(월든 작가)의 다르게 보기 법’도 권한다.

소로는 2년 2개월 동안 월든 호수를 언덕 위에서, 호숫가에서, 호수 위 보트에서, 물속에서,

달빛 아래서 보고, 또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보고, 머리를 다리 사이로 끼워 거꾸로 보기도 했다.





한 달 동안 집 근처에 있는 투룸을 빌려 살았다. 이십 수년간 살아온 아파트를 수리하느라 집을 비워야 했기 때문이다. 역시 살림살이는 이사를 해야 정리가 된다. 보관이사, 투룸 이사, 또, 옛집으로 이사, 3번이나 이사를 하면서 많이 버렸다. 책은 두꺼운 대사전, 한자 자전, 인명사전, 기증받은 자서전 등등 버릴 게 많았다. 10년 전 일기도 다 버렸다. 잘 안 입는 옷도 몇 뭉치나 내놓았다. 제일 어려운 버림은 사진이다. 날짜가 씌어진 사진 중에서 몇 장만 골라 남기고 모두 던졌다.


엉뚱한 소동도 있었다. 현관 앞에 신발 두 뭉치가 놓여있길래 버릴 신발인 줄 알고 헌 옷 수거함에다 던져 넣었다. 알고 보니 한 뭉치는 투룸 이사 후 당장 신어야 할 신발 포대였다. 헌옷수거함은 항시 열쇠가 잠겨있다. 어렵사리 담당자와 연락해 다음 날, 신발을 골라 찾느라 조금 고생(?)했다. 고생한 만큼 ‘한 달 투룸 생활’ 후 여유롭게 헐렁헐렁 비어있는 책장, 옷장, 신발장을 볼 때마다 쾌변 후 뱃속처럼 후련하다.


한 달 후 살림 공간만 후련해진 게 아니다. 가장 놀라운 후련함은 창을 통한 전망이다. 이십수 년간 보아왔던 똑같은 그 창, 그 전망인데 달라졌다. 구름 흐르는 푸른 하늘이 커튼을 걷어버린 창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줄 몰랐었다. 베란다 끝 창을 열고 무등산일출을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한 달 동안 신문지 서너 장 크기의 투룸 창을 통해 옆 투룸 건물 벽만 쳐다본 후 깨닫게 된 후련함이다.


“신문지 크기의 창문, 그 창을 통해 독방에 쏟아지는 햇볕에서 삶의 의미를 느꼈다.”는 쇠귀 신영복(1941~2016)얘기가 떠오른다. 신영복은 <담 론 ; 2015년 발간>에서 “나는 왜 자살하지 않고 기약 없는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가? --- 하루 기껏 2시간, 겨울 독방을 비추는 신문지 크기의 햇볕 때문이었다.”라고 자문자답한다. 그에게 “독방은 최고의 철학교실이었다.”


철학은 독방 옥살이 같은 극한적인 상황 안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 인간은 어려운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 자연스레 철학자가 되어간다. 전쟁 같은 코로나 위기를 겪어본 후엔 평범한 일상이 평화인 줄 알게 된다. 병에 걸렸다 나은 후에는 아침에 벌떡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막상 역경에 빠졌을 때, 철학자가 되지 못한 사람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채 허우적거린다. 


길을 걷다가 ‘소로의 다르게 보기’ 중 하나인 ‘고개를 기울여보기’를 시도해본다. 머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앞을 본다. 도로와 자동차와 아파트 숲이 오른쪽으로 내려앉고 구름이 둥둥 흐르는 푸른 하늘이 왼쪽에서 솟아오른다. 마치 그림 액자를 돌려보는 기분이다. 고개를 왼쪽으로도 돌려본다. 이제껏 보지 못하던 추상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이제 난 고개를 기울이거나 머리를 거꾸로 할 필요가 없다. 매일 새벽 베란다 창을 열고 무등영봉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본다. 쏟아지는 아침햇살이 마음 속까지 가득채운다.투룸 체험 후 찾은 행복이다.    202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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