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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Nov 14. 2022

'행복한 일상' 몇개 꼽을 수 있나요?

일을 끝내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면, 일을 하는 동안 행복하기 어렵다

“일을 끝내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일을 하는 동안 행복하기 어렵다. 

 천천히 일해야만 매 순간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  (2003년 발간 < 힘 / 틱낫한 > 123쪽)” 

‘삶을 바꿀 수 있는 힘, 내 안에 있다’는 부제를 내건 <힘>에서 찾은 잠언이다.


 ‘구름과 달팽이와 불도저를 닮은' 틱낫한 스님은 “무슨 일이든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최대한 빨리--,

 꼭 끝내야--,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아주 잘-- 같은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인생 나눔 멘토’가 되기 위해 1박 2일 워크숍 교육을 받았다. 교육 장소인 대전 KT 인재개발원은 대학 캠퍼스 부럽지 않다. 시원스럽게 넓은 연수관, 호텔 같은 숙박시설과 식당, 천연잔디 깔린 대운동장까지.


 교육 시간, 강사 선생님이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5가지를 써보라’ 했다. 전제가 ‘일생에서’가 아니라 ‘일상에서’였다. 처음 들을 땐 ‘일상’이 아니라 ‘일생’인 줄 알았다. 내가 속한 소모둠 멤버 중 한 분도 ‘일생’으로 들었던가 보다. 제일 먼저 손을 들어 호기롭게 발표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원하던 직장에 취업했을 때. 첫 승진되었을 때, 아들이 고시에 합격했을 때 ---” 나머지 하나는 마저 듣지 못했다. “일생이 아니라 일상이랍니다.”라고 곁에서 일러줬기 때문이다. 


 일상은 늘 되풀이되는 생활이다. 밥 먹고 청소하고 대소변 보고 일터에서 일하고 TV 보고 잠자고 ---. 날마다 반복되는 일 중에서 행복한 순간을 찾으라는 주문이다. 한 여성분은 ‘집 안 청소 끝내고 커피 한 잔 마실 때. 화분 물 줄 때,--’ 또 어떤 분은 ‘유등천 천변 걸을 때, 1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들러 책 읽을 때, 친구에게 문자 보낼 때, 공원 흙길 산책할 때, 책 보면서 낮잠 잘 때’라고 했다. 

정원에서 한가로이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신다 (출처 ; istock photo.com )

 소모둠은 예닐곱 멤버들과 느낌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어느 순간이 행복한지 느낌을 들을 수 있었다. 행복 순간들은 비슷비슷했지만 커피 맛이 다 다르듯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정도는 달랐다. 그러나 왜 커피타임이 행복한가? 왜 산책이 행복한가?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다. 사실 ‘왜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처럼 행복에 이유를 묻는다는 자체가 이상스럽다. 다 그런 생각들이었을 것이다.


듣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청소 시간을 줄이고 커피타임을 늘이면 행복 순간이 늘어날까? 아니 아예 청소나 일을 않고 종일 커피만 마시고 종일 산책만 하면 종일 행복할 것인가. 아무래도 답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써놓은 행복한 순간도 돌아보았다. ‘새벽잠 깨고 침대에 누워 20여 분 뒹굴뒹굴할 때, 차 마시며 아침 신문 읽을 때, 마감이 2주 이상 남은 글을 쓸 때, 매주 두 번 서당에 가서 한문 공부할 때--.’ 


돌이켜보니 우리 행복 순간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느긋함’이었다. ‘다급하지 않은, 쫓기지 않는, 천천히’였다.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느긋하게 걸어보니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글을 쓸 때도 몇 줄 쓰다 막히면 느긋하게 신문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해찰하면서 했더니 행복해졌다. 그렇다면 하기 싫은 일, 돈 벌어야 하는 고된 일도 틱낫한 스님 말씀처럼 느긋하게 천천히 하면 행복해질 것인가? 

 

그러나 돈을 버는 일들은 대개 정해진 시간 안에 아니 최대한 빨리, 그것도 잘해야 되는 일들이다. 직장인이 천천히 느긋함을 부린다면 보나 마나 사장 눈 밖에 나기 십상이다. 자영업자라도 돈 벌기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느긋하게 해도 성과를 올리는 달인이거나 돈벌이에 초탈한 도인 정도 되어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역시 보통 사람이 일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높은 수련이 필요하겠다. 


오는 길, 유성에서 광주까지 버스를 탔다. 우등고속이 아닌 일반고속이다. 40여 좌석에 승객은 10여 명뿐이다. 두 좌석을 혼자 차지했다. 한여름 짙푸른 녹음 속을 버스는 달린다. 다급할 일이 없다. 신문 쪼가리를 몇 줄 읽다 졸기도 하고 창밖 녹음에 눈을 돌린다. 눈이 시원하다. 두 시간 동안 행복했다.     201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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