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동 김종남 Nov 15. 2022

사랑은 꼭 '발명'되어야만 하나?

'오늘날 사랑이 죽었을지 모른다'는 <에로스의 종말>을 읽다가 ---  

2015년 한국어판으로 발간된 <애로스의 종말> (사진출처 : brunch.co,kr)


<에로스의 종말; 2015년 발간>을 책 읽기 모임에서 읽었다. 

이상기후처럼 친해지기 힘든 단어들로 가득했다.

 베를린 예술대 교수 한병철이 쓰고 서울대 독문과 교수 김태환이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사랑의 재발명’이란 서문 제목부터 친해지기 어렵다.

 ‘사랑은 발명되었다’를 전제로 한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에 대한 통렬한 분석’이라는데 

‘발명된 그 사랑’을 다시 발명하라고?



서문을 쓴 알랭 바디우(1937~ )는 ‘신플라톤주의를 수호하는 프랑스 철학자’이다. 알랭 바디우는 “이 책을 읽는 ‘고도의 지적 경험’이 오늘날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투쟁 가운데 하나인 ‘사랑의 재발명을 위한 투쟁’에 참여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서문에서 권한다. ‘사랑의 재발명’이란 말은 ‘19세기 프랑스 천재 시인’ 아더 랭보(1854~1891)가 이미 한 말이란다.


세상일은 가끔 예상과는 엉뚱하게 번진다. 혹서에 가볍게 읽을 책을 고르던 발제자는 ‘1백여 페이지로 엷은 데다, EBS 추천만 듣고’ 쉬운 사랑 이야기인 줄 알고 가볍게 선정했단다. 덕분에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헤겔에 이르기까지 고금 철학자들의 현란한 이론에 휘말리는 ‘고도의 지적 경험’을 했다. 예상치 못한 치열한 이열치열이었다. 다행히 나는 저자가 2010년에 쓴 <피로사회>를 이미 읽어보았기에 다른 참석자들보다 고생을 덜 했다.


독일에서 ‘최고의 문화 비판가’로 꼽히는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란 책으로 유명해졌다. <피로사회>는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번역본이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어 7만 부나 팔렸다. 내가 <피로사회>를 읽게 된 것도 우연이다. <피로사회>를 읽고 토론을 벌였던 리더스 아카데미 회원들이 감상문을 쓴 후 감상문 평을 해달라고 부탁해왔다. <피로사회>를 읽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한가?, 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가? 에 대한 철학적 진단’이라는 책 소개에 먼저 반했다. 성공만이 최상 가치로 숭앙받는 ‘성과사회’, ‘자기 착취 사회(현대자본주의 사회)’는 ‘우울증 환자(자신의 수용소를 짊어지고 사는 현대인)’와 낙오자만 양산한다. ‘피로사회’는 피로를 주는 사회이자 역설적으로 ‘깊은 피로(욕망, 과잉활동을 억제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시키는)를 필요로 하는 사회’였다.


<에로스의 종말>은 <피로사회>와 <투명사회; 2014년 발간>에 마지막 처방을 내리는 계시록 같은 게 아닐까. “최근 사랑의 종말을 고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 오늘날 나르시시즘적 성과 주체는 성공만을 겨냥하면서 자신의 에고 속에 파묻혀 타자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성공 우울증에 시달린다.--- 오늘날 에로스는 욕구, 만족, 향락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에 타자의 결핍이나 지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에로스는 타자를 타자로서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이로써 주체를 나르시시즘의 지옥(우울증)에서 해방시킨다.”


오래전 일이다. 늦은 밤 귀가하다가, 차 속 라디오에서 정인이 부르는 ‘사랑은’이란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슴이 갑자기 소나기를 맞은 듯 후련해졌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 중학 3년 때인가 어느 골목길을 걷다가 처음으로 들었던 가야금 소리가 이런 충격(?)이었을까. “--- 사랑은 // 상처만을 남겼지만 / 사랑은 // 웃는 법 또한 알게 했고 / 사랑은 // 살아갈 이유를 주었다가 / 사랑은 // 절망이 뭔지도 알게 했죠 / 사랑은 // 내게 알려 주었죠 / 사랑은 // 이 모든 것들을 / 러브 이스 // ---”  구절마다 후렴처럼 되풀이 되풀이하는 ‘사랑은’이라는 쿨한 외침이 손끝까지 절절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사랑이 죽었을지 모른다”는 <에로스의 종말>을 읽는 중에 "살아갈 이유도, 절망도 알게 했다"는 이 노랫말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자아를 포기하고 타자를 받아들이는 에로스도 이처럼 소나기 오듯 뜬금없이 가슴에 젖어드는 것 아닐까. 유튜브로 노래 ‘사랑은’을 다시 들어본다. 가슴이 절절해진다. ‘영혼의 동력원이 되는 사랑’은 꼭 투쟁을 통해서 발명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2016.08.15.



작가의 이전글 '행복한 일상' 몇개 꼽을 수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