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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Nov 16. 2022

3행시 열리는 꿈나무 하나 있나요?

볼 때 마다 '사랑해' 하트 이파리 흔드는 계수나무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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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

                               <그 여름의 끝 / 이성복>  


대상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그런 노랫말 같은 시가 '생에 활기를 주는 생활 시' 아닐까. 유례없이 폭염이 길었던 이번 여름, 붉은 꽃들을 매단 나무 백일홍을 볼 때마다,  이성복의 시 <그 여름의 끝 >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중 1년생들을 멘토링 하면서 나무에 관한 3행시를 쓰도록 했다. 좋아하는 꿈나무를 하나씩 정해 그 나무에 관한 3행시 짓기다. 학생들이 시를 짓기 전, 내 꿈나무와 3행 시를 먼저 들려주었다. 나의 꿈나무는 우리 아파트 현관 입구에 있는 계수나무다. 


“계수나무, 달 속에 있다는 월계수 옥토끼 생각이 난다 / 수채화처럼 맑은 하트형 잎사귀들, 솜사탕 냄새가 난다 / 나의 집 앞에 서서, 볼 때마다 ‘사랑해’ 앙증스럽게 하트 손을 흔든다” 계, 수, 나를 첫 글자로 시작한 3행시다. 앞 글자에 묶이지 않고 자유스럽게 쓴 ‘강아지풀’ 3행시도 들려주었다. “강아지처럼 살랑살랑 꼬리를 치며 반긴다 / 바람이 불지 않아도 꼬리를 흔든다 / 가만히 손대면 손바닥을 간질인다.” 


무궁화가 꿈나무인 도현이는 “무궁무진한 / 궁전처럼 / 화하고 아름다운 무궁화 ”라고 썼다. 은목서를 좋아하는 혜영이는 “은목서의 꽃은 언제 필까, 기다리며 물어보면 / 목청껏 답하는 은목서의 향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 서서히 피어나겠지, 그렇게 은목서의 향기에 귀 기울여 기다려본다.” 은행나무를 택한 구인이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커가는 너를 보면 / 행복하단 걸 느낄 수 있어 / 나는 행복하지만 너는 어떠니? ” 


다들 앞 글자를 나무 이름과 맞추느라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앞 글자를 무시하고 느낌을 자유스럽게 써보라고 했다. 그건 더 어려운듯 답이 쉽사리 안나온다. ‘로즈마리’를 꿈나무로 정한 수범이는 글자 수에 맞춰 4행시를 썼다. “로, 로즈마리 나의 로망은 / 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 / 마, 마이프렌즈 로즈마리, 사랑해 / 리, 리자로 끝나는 말은 미나리, 개나리, 로즈마리.” 억지로 앞 글자를 맞추느라 ‘즈’를 ‘자’로 받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지막 ‘리’자를 살려낸 기지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박수를 쳤다. 이젠 로즈마리를 만날 때마다 수범이 시가 떠오를 것 같다. 


'나의 꿈나무' 계수나무를 알게 된것은 사실 몇년되지 않았다.  이 아파트에서 15년이 넘도록 살면서도 집 앞에 무슨 나무들이 서 있는지 몰랐다. 관심이 없었다. 알고 보니 의외로 많은 나무들이 살고 있었다. 열매를 맺는 감나무, 대추나무, 봄마다 화사하게 꽃을 피우는 자목련, 백목련, 철쭉, 수국, 현관 입구 양쪽에 수문장처럼 서 있는 주목, 그 옆에 향나무, 단풍나무, 그리고 유난히 수채화처럼 맑고 얇은 하트형 이파리가 향기를 내는 나무가 있었다. 


하트형 이파리들은 다른 나무들의 잎보다 일찍 맑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땅에 떨어졌다. 코에 대면 달콤한 솜사탕 냄새가 났다. 어릴 적 학교 앞 ‘구루마(짐수레)’에서 구름처럼 피워 오르던 솜사탕 추억까지 불러온다. 이름을 알고 싶어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관리실 직원도 모른단다. 결국 숲 해설사인 동생에게 물어 알아냈다. ‘계수나무’, 달나라에 산다는 월계수가 생각나는 이름이다. 이름을 알고 보니 더욱 좋아졌다.


3행시 짓기 시간이 끝나자 아이들에게 집앞에서 주워온 하트형 계수나무 낙엽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계수나무 이파리는 여름내 품었던 태양 볕을 달콤한 향기로 풀어낸다. 손바닥이 향기롭다.      201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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