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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Nov 24. 2022

어느시대 '내비'속을 달리고 있나요?

미래를 비춰주는 내비게이션은 철학뿐이다

‘철학은 인간을 위한 내비게이션이다’라는 강연을 들었다.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카페 필로소피아 20주년 콘서트에서 발제한 제목이다. 

“구시대의 내비게이션을 달고 백성들을 이리저리로 몰고 가는 정치권 운전기사들이

 큰소리를 치고 있는 오늘, 이 땅은 그야말로 혼란을 넘어서 공동체 존재 위기를 겪고 있다.”

 이교수는 정치권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구시대 내비게이션’! 얼마 전 일이 갑자기 떠오른다. 선배 차를 얻어 타고 목포 고하도에 놀러 갔을 때다. 그 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은 몇 년째 업그레이드하지 않아 새로 생겨난 목포대교가 없었다. 내비게이션 지도에 고하도가 목포 앞바다에 달랑 떠 있다. 차는 높직한 목포대교 위에 올라섰는데 내비게이션에는 푸른 바다만 펼쳐진다. 차는 바다에 선을 그으며 날아간다. 희한한 경험이었다. 


그때 일은 처음부터 아예 내비를 믿지 않고 차를 운전한 일이었으니 그저 웃을 만했다. 조금 황당한 경험도 있다. 지난달 4 부부가 12인승 차를 빌려 서해안 2박 3일 여행을 했다. 첫날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는 베테랑이었다. 부안 근처에 바지락 국을 잘한다는 식당 주소를 내비에 찍고 갔다. 거의 도착할 무렵인데도 도대체 비슷한 식당은 보이지도 않고 간신히 차 한 대 다닐만한 좁은 길을 따라 산속 마을로 계속 가고 있었다. 


식당으로 전화를 걸어 다시 확인해보니 입력해놓은 번지가 틀렸었다. 결국 생전 가보지 못할 산골 마을 구경하게 되고 점심시간은 1시간 늦어졌다. 그다음 날 운전자는 나였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미리 다음날 갈 장소를 길 찾기 앱으로 찾아 숙소에서부터 목적지까지 경로를 숙지했다. 요즘 스마트폰 길 찾기 앱이나 맵(지도)은 정밀하기 그지없다. 몇m 가서 좌회전, 또 몇 m 가서 우회전, 네거리 이름까지 세세하다. 


내비양은 더 하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경로를 잘못 들어섰습니다.” 바로 경고를 내고 곧 새로운 경로를 찾아내 바꿔준다. 12인승 차를 하루 운전하면서도 이리 긴장이 되는데 몇천 몇만 백성을 승객으로 모시고 운전하는 ‘정치권 운전기사’들은 얼마나 대단한가. 항시 정치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벗어본 일이 없다. 그들이 삐끗 잘못 운전하면 얼마나 많은 백성이 해를 입을 것인가. 


세월호 선장은 세월호라는 배 하나를 잘못 운전해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치인들은 세월호 선장보다 수천수만 배 책임이 큰 선장들이다. 영국을 브렉시트로 몰고 간 영국 캐머런 총리의 말이 회자된다. “국민은 나라의 승객이 아니라 운전자다.” 브렉시트가 국민투표로 결정한 사항이었으니 국민이 책임지라는 말이었을까, 이미 사임한 후였지만 너무 무책임한 말로 들린다.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가 차를 엉뚱한 데 박아놓고 승객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어찌 될까? 운전대를 쥔 사람은 누구나 운전대 크기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 대한민국을 운전하는 지금 우리 정치인들은 어느 시대 내비를 가슴속에 지니고 있나? ‘정치는 생물’이란 말처럼 하루가 다르게 길이 달라지는 게 정치판이다. 정치에는 이미 만들어진 내비게이션이 있을 수 없다.


이명현 교수는 말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미래를 비춰주는 내비게이션은 철학뿐이다. 오늘 이 땅은, 이 시대가 당면한 문제들에 정면승부를 거는 지적 용기와 실천력을 지닌 생동하는 철학자를 요청하고 있다.” 그는 정치인만 닦달한 게 아니었다.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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