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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Jan 03. 2023

인생여행 끝날 때 남길 유산은?

  365쪽 짜리 책을 1년에 1권씩 쓴다

인생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쓰고 읽을 책,

오늘 일기장을 펼친다.

만년필을 손에 쥔다.

마치 요술 지팡이를 손에 쥔 소년처럼 가슴이 설렌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찍듯 백지 위에 까만 글씨들이 춤을 춘다.  




한 해에 365쪽짜리 책을 한 권씩 쓴다. 일기책이다. 2011년 부터 매일 하루도 빼지 않고 일기를 써왔다. 그전에도 일기를 쓰긴 했으나 하루 이틀 빠지기도 하고, 한 달여 안 쓰고 넘어갈 때도 있었다. 일기장을 열고 만년필을 잡았는데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얗게 비어버리는 날도 있었다. ‘오늘 무얼 했지? 하루가 갑자기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느낌’이 드는 날이다.      


 습관의 힘은 위대하다. 십수 년 계속 하면서 일기 쓰기가 생활이 되었다. 드디어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변했다. <월든> 작가 소로(1817~1862)의 유난한 일기 사랑이 생각난다. 소로는 “일기를 쓰기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소로는 초월주의 사상가 에머슨(1803~1882)의 권유로 20세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 폐결핵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24년간 모두 39권(2백만 단어)을 썼다.      


 <월든>은 월든 호숫가 오두막 생활(28세부터 2년 2개월 2일 동안)을 끝내고 7년 후인 37세(1854년) 때 발간되었다. 사실은 소로가 20세부터 17년간 쓴 일기를 바탕으로 한 체험담인 셈이다. 당시 다들 황금을 찾아 서부로 떠나던 때, 20세에 하버드를 졸업한 천재 소로가 그 조용하고 작은 콩코드 마을을 평생의 거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일기 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24세(1841년 2월 8일), 소로는 이렇게 쓴다. “나의 일기는 추수가 끝난 들판의 이삭 줍기다. 일기를 쓰지 않았더라면 들에 남아서 썩고 말았을 것이다.  <소로우의 일기(Thoreaw’s Journals) 오델 셰퍼드 편집, 윤규상 옮김 ; 1996년 도솔 출판>”       

<월든> 초판본 표지 사진이 들어있는 <소로우의 일기> 90~91쪽.

    

 일기장을 연다. 하얀 백지장이다. 오늘 날짜만 상단에 선명하게 씌어있다. 언제나 새페이지 새날이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 때마다 돌아오는 새해가 큰 매듭이라면 오늘 하루는 지구가 스스로 한 바퀴 도는 24시간마다 생기는 작은 매듭이다. 보름 만에 10m나 자라는 대나무는 매듭이 수십 개 있어 부러지지 않고 거센 폭풍을 버텨낸다. 우리 한 해 인생도 날마다 주어지는 하루라는 매듭이 365개나 있어 거친 세파를 견뎌낸다.


 일기 쓰기는 24시간마다 새로운 매듭을 짓는 일이다. 9살 때 전신화상을 입어 죽다 살아난 <On Fire> 저자, 존 오리어리(39)는 ‘사람은 살아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며 ‘24시간마다 굿 뉴스(good news)를 만난다’고 말한다. “24시간마다 새로운 하루(new day)가 오니 굿 뉴스(good news)”라는 풀이이다. 아침마다 맞는 ‘굿 뉴스’를 저녁에 매듭짓는 일이 일기 쓰기이다. 굿 뉴스도 '인생책'에 기록해야 인생 매듭이 된다.      


 새해가 왔다. 365개 옛 매듭을 한 권 역사소설책으로 꽂아 넣고 새로운 일기장 365일을 연다. 옛 일기는 혼자만 보는 비밀 역사책처럼 재미있다. 비결서를 훔쳐보듯 옛 일기책을 훑어본다. 1월 1일은 언제나 새로운 마음 다짐이다. 2017년 ‘썩지 않도록 매일매일 모과처럼 나를 닦자’, 2014년 ‘원래 내 것은 없다, 고통 괴로움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자’. 올 1월 1일은 무슨 다짐인가. ‘일기책은 인생 여행에서 내가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다’.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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