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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Jan 12. 2023

 내가 내릴 '인생 역'은 어디입니까?

 내릴 역을 놓치지 않으려면 항시 깨어있어라

 

 “우리는 이 삶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하라.

 삶은 안락한 집이 아니라 

 죽음으로 향하는 기차이다. ---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2013년 이상원 옮김 > 186쪽 ” 

톨스토이는 81세 때 명상 글모음 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를 간행하고 

 유언장을 쓴 후 다음해 10월 ‘편도열차’에 올라탔다.




갑자기 서울에 조문 갈 일이 생겨 오후 2시 40분 광주송정역에서 열차를 탔다. 두 시간도 안 지났는데 서울이다. 장례식장에 두어 시간 머문 후, 오후 7시 10분 돌아오는 열차에 올랐다. 한나절 만에 서울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빠른 세상이다. 빠른 세상은 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 돌아오는 밤 열차는 승객이 적어 조용하다. 앞뒤 옆 좌석도 비어있다. 창밖 풍경도 없어 신문을 읽다 깜박 졸았다.      


 “잠시 후 목포역입니다. 내릴 준비 하세요” 안내방송 소리에 깨어났다. 내가 내렸어야 할 광주송정역은 30여 분 전 이미 지나쳤다. ‘출발하는 시간’만 챙기다 ‘내리는 시간’을 깜박한 것이다. 사실은 장례식장에서 상주 위로한다고 두어 잔 한 게 깜박 잠을 불렀다. 열차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역에 내려 본 적 있는가? 아니 이번엔 종착역에 내려졌다.      


 1910년 10월 31일, 82세의 톨스토이는 랴잔 우랄 철도 중간 한 시골 역에 내린다. 내리려고 내린 역이 아니다. 철도여행 중 병이 위중해져서 내려진 것이다. “11월 7일 오전 6시 5분 톨스토이는 아스타 포보 역장관사에서 눈을 감았다”라고 기록은 전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저자, 톨스토이는 왜 열차 여행을 마지막 여행으로 선택했을까? 이름도 모르는 어느 시골 역에서 죽음을 맞고 싶어서였을까.      


 열차 여행은 인생과 자주 비유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닿는 순간까지 타고 가야 하는, 왕복 여행이 아니라 편도여행” 시인 정연복은 <인생열차>라는 시에서 인생열차를 ‘편도여행’이라고 부른다. 안락사가 인정되는 스위스로 편도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내릴 역을 정해놓은 승객이다. 그러나 인생 열차는 내릴 역을 모르는 승객만 있다. 안내방송도 내려야 하는 사람 혼자에게만 들린다. 


방송을 들은 사람은 옆자리 승객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홀로 내려야 한다. ‘인연 맺은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일’도 내려놓아야 한다. 멀리 서울 가고 싶은 맘으로 느긋한 승객에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생소한 다음 역에서 내리라면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따라 내리는 동반자도 없다. 


난 종착역인 목포역에서 내려 다시 티켓을 끊고 광주행 열차에 올라탔다. 광주-서울 왕복 여행이 목포-서울 왕복 여행으로 바뀐 셈이다. 밤 10시 반, 송정역 도착시간 7분 전이다. ‘광주송정역에 내릴 준비 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한 시간 반 전, 서울쪽에서 광주근처에  갔을 때도 ‘잠시 후 내릴 준비 하라’고 여러 차례 방송했었을 거다. 그때 난 잠든 채 지나쳤다. 이번엔 깨어있다. 안내방송 나오자마자, 열차 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항시 깨어있으라’, 내릴 역을 놓치지 않으려면 항시 깨어있어야 했다. 그러나 인생 편도열차에선 '내리라는 방송 못 들었다, 깜박 잠이 들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전지전능하신 차장은 어김없이 내릴 승객을 내려놓는다. 내가 내릴 인생열차 역은 어딜까. 언제쯤 안내방송이 나올까?     2018.09.03.

2007년 발간된 한국판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상원 옮김> 186~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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