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사람만 이 연극을 보라 - <트랩>

당신은 무죄인가요?

by 한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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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만찬, 불쾌한 진실의 문턱


연극 <트랩>은 가볍게 즐기는 연극은 아니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심문이 시작된다. 무대 위에 조명이 켜지고 와인이 따라진다.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에 수프가 놓이는 순간, 관객석에 앉은 우리는 어느새 피고처럼 숨이 조여온다. 배우들의 대사는 객석을 향해 쏘아붙이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과연 떳떳한가?' 물음이 공기 중에 맴돌며, 연극은 추리극도 재판극도 아닌 양심을 시험하는 겸허한 의식으로 바뀐다.


시골 저택에 자동차 사고로 묵게 된 외판원 트랍스가 맞닥뜨린 저녁 식사는 평범한 만찬이 아니었다. 판사, 검사, 변호사, 사형집행인으로 이루어진 노인들이 매일 밤 벌이는 '모의재판 놀이'는 정교한 연출과 식사로 포장된 잔혹한 게임이다. 기괴한 재판복을 입은 이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와인을 따르며, 마치 까마귀 떼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유쾌함과 기이함 사이에서 묘한 몰입을 만든다.


무대는 T자형 다이닝룸으로 되어 있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실제로 음식을 먹는 연출 방식은 극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음식을 맛있게 즐기는 도중에도 심문은 멈추지 않는다. 와인의 연도와 종류는 재판의 수위와 맞물려있고, 식사 코스는 피고의 진술과 함께 진행된다. 코스가 정갈하게 이어질수록 심문은 더 날카로워진다. 마침내 1893년산 '샤토 마고'가 등장하는 순간, 트랍스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진다.


이 재판은 법적 효력이 없다. 그저 놀이일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피고는 결국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목을 맨 채 발견된다. 자신의 죄를 받아들이고 무거운 책임을 진 것이다. 놀이로 시작된 재판에서 트랍스는 기묘하게도 '진실'을 몸소 실현하게 된다.



놀이에서 진실로, 관객을 향한 심문


처음에는 재판이 노인들 주도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까마귀 복장의 늙은 법조인들은 만찬을 준비하고 피아노 연주를 즐기며 놀이가 시작된다. 하지만 재판이 본격적인 심문으로 변하면서 놀이의 주체는 서서히 피고로 바뀐다. 피고로 초대된 트랍스는 농담처럼 시작된 심문에 무심코 응하고, 자신의 무죄를 강하게 주장하며 논리를 펼친다. 그런데 점차 분위기가 바뀐다.


검사의 심문은 법이 아니라 '양심'에 호소한다. 증거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라는 질문이 핵심이다. 진술을 이끌어내는 전략은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다. 변호사는 피고의 말을 끊임없이 막으려 하지만, 검사는 그의 과거를 파고들며 사건의 빈틈을 찾아낸다. 심문의 과정에서 트랍스는 오래 묵혀 두었던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점점 드러난다.


오랫동안 설명하지 않았던 사건의 배경, 판단의 동기, 감정의 앙금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된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진술은 점점 진실된 고백으로 변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강제하지도 않았지만, 결국 피고는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판결에 동의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완성된다.


모의재판 놀이는 바로 그 순간 뒤집혔다. 결국 진실과 마주한 건 재판을 꾸민 노인들이 아니라 피고 트랍스였다. 오히려 노인들은 놀이가 진지해지자 혼란스러워한다. 사형 판결이 현실이 되자, 그들은 '재판이 망가졌다'고 말한다. 죽음을 가지고 노는 일상의 게임이 실제 죽음으로 이어지자, 그제야 놀이의 한계를 깨달은 것이다. 노인들은 그저 지루한 삶을 달래줄 놀이로서의 재판을 원한 것 뿐이었다.


반면 피고는 심문을 끝까지 견디고, 자기 과거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결정적인 장면은 판결 내용이 아니라, 피고가 판결을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강요된 죽음이 아니라 스스로 받아들인 결말이었다. 그 순간 연극은 극적 긴장을 넘어 우리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극의 결말은 한 인물의 파국을 그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트랍스의 죄가 미필적 고의가 담긴 유죄냐 무죄냐, 판결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던 사실, 감춰 두었던 동기, 외면했던 감정을 마주할 수 있느냐다.


연극 <트랩>은 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의를 설교하지도 않는다. 다만 스스로를 속이던 마지막 벽이 무너지는 순간을 보게 만든다. 관객은 피고를 통해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진실 앞에 무너지는 피고의 마지막 장면은 끝이 아닌, 관객 내면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로 이어진다.


설명이 없는 연출,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구성, 침묵으로 이끄는 시선은 해석의 공간을 넓히고 감정의 여백을 만든다. 놀이로 시작된 재판은 결국 놀이를 파괴하면서 끝난다. 극장의 조명이 꺼진 후에도 우리 내면의 심문은 끝나지 않는다. 무대 위의 덫은 사라졌지만, 진짜 덫은 밖에 설치된 게 아니라 바로 우리 내면에서 만들어진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 피고는 트랍스가 아니다. 피고의 자리는 무대 저편에 앉아있는 관객의 마음에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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