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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시작, 검수

식자재를 맞이하는 한 시간

by 급식이모


아침 7시 20분. 사무실 문을 연다. 컴퓨터 전원을 누른다. 흰색 가운을 걸친다. 마스크를 쓰고, 위생모에 긴 머리를 뱅글뱅글 꼬아 넣는다. 위생안전관리시스템인 휴대폰기계를 아래 주머니에 넣고, 문구용 칼을 윗주머니에 넣는다. 휴대폰 기계는 식재료 검수용이고, 커터칼은 식자재 배송 기사님들을 도와 박스의 포장 제거를 위한 것이다. 위생화를 신은 후 주방으로 들어간다. 검수실에서 손세정제로 손을 씻고, 바로 옆 손 소독기 밑으로 손을 대면 촤- 하고 알코올이 분사된다. 이때 차가운 알코올에 상쾌해지는 기분이 좋다.

검수실로 들어서면 조리종사원(여사님)들이 검수 준비를 마치고 계신다.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올 때 오염이 되기 쉬운 장화를 소독하기 위한 소독물을 발판에 부어 놓는다. 검수실의 에어커튼에서는 강한 바람이 나와 지금(25년 1월)처럼 한파일 때는 추위가 배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벌레와 이물질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 꼭 켜야 한다.


학교의 식자재 업체는 농산물, 공산품, 육류(소, 돼지), 가금류(닭, 오리), 김치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교차 오염을 예방하기 위해서 검수 순서도 위와 같이 진행하고 있다.

먼저 농산품, 즉 야채를 검수한다. 저울에 무게를 잰 후 원산지 및 소비기한(유통기한)을 확인한다. 기사님이 불러주시거나 물건이 많을 때는 내가 바로바로 확인하면서 검수서에 작성을 한다. 온도계로 식품의 표면 온도도 잰다. 식품의 신선을 위함이다. 봉지와 박스에서 야채를 분리하여 소쿠리에 담은 후 전수 검사한다. 품질이 안 좋은 식자재(특히 야채)는 곧바로 교환 또는 반품 요청을 하지 않으면 조리 과정에 차질이 생겨버린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더라도 일일이 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야채를 검수하면 30분이 지나있다.

다음은 공산품이다. 냉동식품(돈가스, 만두 등) 및 양념류(간장, 고추장 등)를 검수한다. 야채의 유통기한은 비슷하지만, 공산품의 경우 유통기한이 모두 상이하며 포장지에 적혀 있는 위치도 다르기 때문에 눈을 더 크게 떠야 한다. 글씨가 작거나 투명으로 적혀 있는 경우, 하나에 5분을 소요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여사님, 기사님 모두 숨은 그림 찾기를 하기 시작한다. 공산품을 검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수파악이다. 박스 당 몇 개가 들어있는지, 낱개 포장 개수는 몇 개인지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 추위에 머리가 굳을 때면 계산기로 빠르게 계산한다. 이렇게 십 수가지의 물건을 검수하면 또 20분이 흘러가 있다.

육류와 가금류, 김치는 앞의 물건들에 비해 수월하다. 사용하는 날에만 들어오기도 하고, 식자재의 종류가 1,2가지이기 때문이다. 무게를 재고 바로 박스를 뜯은 후 유통기한만 확인하면 끝.

그러면 나의 검수도 마무리한다. 한 시간가량 식자재들을 맞이했다.


기사님들 중에서는 투잡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다. 마치고 다른 학교를 가시거나 다른 일을 가셔야 하기에 움직임이 빠르시다. 나도 덩달아 조급해실 때도 있지만, 그럴 경우 식자재의 상태 확인을 놓치는 경우가 있어 최대한 차분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학교는 한 달마다 입찰을 하기에 업체도 매 달 변경이 된다. 그래서 어떤 기사님이 오느냐에 따라 검수의 진행상황이 순조로울 때도 있고, 더딜 때도 있다. 이번달 기사님은 성품도 좋으시고, 손이 빠르시면서 정확하셔서 검수 시간이 매끄럽고 문제 발생이 없다. 지금 내가 있는 학교는 1000명 이상, 3 식인 학교라는 큰 힘듦이 있다. 양도 어마어마하고, 하루 들어오는 식재료만 해도 60가지가 넘는다. 그러므로 속도는 생명이다. 기사님 덕분에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검수를 마무리한 후 사무실로 돌아와 한숨을 돌린다. 그 후 서류를 정리한다. 축산물, 가금류, 난류(달걀)의 등급 판정서를 축산물 원패스라는 사이트에 등록하고 철을 한다. 친환경 농산물을 받을 경우 -주로 콩나물, 숙주나물, 치커리 등- 친환경 인증서를 철 해놓는다. 그날 받은 거래명세서는 한 달이 끝나면 행정실에 제출을 해야 하므로 또 업체 별로 모아 놓는다.


시계는 8시 40분 하루 업무를 마친 것 마냥 집에 가고 싶을 때도 있다. 체력이 소진된다. 다행스럽게 모든 물건이 차질 없이 들어오는 날에는 2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하지만 중량이 다르거나 내가 입찰 시 넣었던 제품이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업체와 통화를 하고 상황을 처리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식자재 업체가 어떤지에 따라 하루의 업무에 큰 영향을 미친다.


9시. 이제는 여사님들과의 음식의 전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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