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특정인을 색상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상이 적합할까? 준비된 여러 색종이 중에서 하나를 골라 해당인에게 전달하고 색종이를 받은 당사자는 본인이 생각하는 본인 소개와 받은 색종이에 대한 감정을 즉석에서 솔직하게 표현해 보는 문학 강좌 수업 시간에 내가 받은 색종이는 16개 중 15개가 빨간색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멤버는 나를 제외하고 모두 여성 멤버들이시다. 그날 참여하신 16명 여성멤버 중 15분이 사전 합의라도 하신 듯 빨간 색종이를 나에게 몰아주셨다. 이런 재미난 유희적인 일을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실 분은 안 계시겠지만 그 많은 색 중에 하필 빨간색을 15/16분이 주신데는 나름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본다.
내가 나에게 준 색종이도 빨간색이었다. 나는 나를 대충은 알기 때문에 빨간색을 골랐다. 그렇다고 빨간색의 의미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발끈하는 급한 다혈질 성격인 데다 까다롭고 직설적이기까지 한 성질머리로 미루어 어쩐지 빨간색이 적절할 듯싶었다. 모르긴 몰라도 차분하고 침착한 성격에 어울릴 듯한 푸른색 계열 사람은 아닌 듯했다. 16분 중에서 15분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빨간색을 나에게 주신 걸까? 그건 아닐 거다. 왜냐면 전체 멤버 중에 남성은 단 한 사람, 그것도 머리 허연 할배인 데다 둥근 탁자에 4명씩 둘러앉는 강의실이라서 여성분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건 내 성격상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대화 기회가 없었으니 당연히 내 성질머리를 들킬 기회도 없었다고 짐작한다. 대화 한 번 안 해 보고 사람을 알 수 있을까? 수업 내내 말없이 얌전하게 앉아만 있는 나를 그들은 혹시 점잖은 노인쯤으로 생각하셨을까? 그렇다면 빨간색보다는 갈색톤이나 회색을 고르셨을 거다. 노인에게 빨간색은 얼토당토않다. 왜 빨간색일까?
혹시, 첫인상을 기준으로 빨간색을 주셨을까? 그것 역시 아닐 거다 내 얼굴 어디에 첫인상이라 말할 수 있는 특징이 남아 있기나 할까.빨간색을 단체로 주실만한 확실한 빨간 개성이란 것이 내 얼굴 어디에 남아 있을까? 축 처져버린 얼굴은 그렇다 치고 적어도 눈, 코, 입은 비뚤어지지 않고 선명하게 제자리에 붙어있어야 첫인상이든 마지막 인상이든 척 느낌이 올 것 아닌가 나도 지금의 내 사진을 보며 '이게 나라고?' 놀라, 즉시 삭제하는데 남이 지금 내 얼굴을 보며 "당신의 첫인상은 빨간색이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건 내가 아닙니다. 나는 이미 내 얼굴에 없어요"라고 말하겠다. 그러니 첫인상으로 빨간색을 주셨을 리는 만무하다는 거다. 대화도 없었고 첫인상 이랄 것도 없고 도대체 무얼 보고 너도 나도 빨간색을 압도적으로 주셨을까?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라는 유행가가 있다. 유행가치고는 무거운 가사다. 어느 누구라도 잘 아는 척 쉽게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가 인간이다라는 말일 것이다. 도둑놈 사기꾼이 아니고 사람 됨됨이가 너무 못된 인간만 아니라면 우리는 그냥 같이 살아간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은 점쟁이가 손님 얼굴 이리저리 훑어보고 뜯어보고 현미경을 들이대듯 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럭저럭 살아가다 보면 갈 사람은 가고 옆에 남아있을 사람은 남게 되고 그렇게 적당히 살아간다. 사람을 기분대로 마구 잘라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잘라내고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느냐?라는 질문은 세상 살면서 그다지 중요하지도 필요치도 않다. 우문(愚問) 일 수밖에 없고 그 질문에 솔직히 대답할 사람도 없고 솔직한 답을 기대하는 사람도 없다. 빨간색을 주신 한 분 한 분께 이유를 들어본들 듣기 좋은 말씀만 하실게 분명하다. 이유를 나름 추리해본다.
이미 책을 내신 작가이시거나 혹은 글 쓰기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전문적인 여성 멤버 16명(저를 포함 17명)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다. 어떤 주제이든 전혀 사전 준비 안된 상태에서도 "지금 생각을 말해 보시오" 라는 지도 선생님의 지시에 그들은 거침없이 본인의 생각을 쏟아내신다. 그런 능력과 실력을 갖추신 여성분들이 단 한 사람, 앉아있는 자리가 늘 바늘방석일 남성 멤버에게 주시는 빨간색종이, 그것은 젊은 여성 작가분들이 노인 멤버에게 말로 하기에는 많이 거북했을( 건방졌을 ), "용기내셔요" 쯤이 아닐까? 주눅들어 늘 말이 없는 오직 한 사람, 노인 멤버에게 하나같이 몰아 주신 붉은 색종이. 따뜻하고 자상한 붉은 응원의 함성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