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기록장 : 암묵적인 룰
나는 되도록 남편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원래 그렇게 지냈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건 아니다.
연애 때는 핸드폰이 뜨거워질 정도로 잠깐 떨어진 순간에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상대가 부재중인 나의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의 일과를 궁금해했다.
결혼 후 큰 아이가 태어나고도 한참을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내 기준에서 지나치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육아의 외로움을 공유하고자 했다. 남편은 대책 없는 공감과 이해보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편이었고, 그의 직언들은 출산 후 급변하는 호르몬과 그나마도 별 거 없었지만 업무적인 커리어조차도 없어진 그저 주부가 된 현실을 마주 보게 만들었다. 말을 할수록 상처를 받았고, 그렇게 내 마음은 곪아갔다.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돈을 벌지 못하는 나의 일상들은 한심하게 느껴질 것만 같았고 그렇게 나는 남편에게 연락을 차츰 줄이게 되었다.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연락을 지나치게 하지 않는 것에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게 회사 업무를 보는 평범한 직장인의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남편도 작년 한 달 반 정도는 열심히 연락을 했었더랬다. 나는 남편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했고, 남편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불편한 상황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원했던 연락의 총량을 채웠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나 바쁜 업무 때문에 연락을 못 하는 것이 아니었고, 필요성이 없어 연락을 안 하는 것이었다는 걸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더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휴대폰 속 남편의 이름도 애칭에 하트를 더한 달달한 텍스트에서 계약관계가 느껴지는 세대주, 그것조차 불편해서 이름 석자로 바뀌었다.
길고 긴 명절 연휴가 끝이 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오늘
어제 잠들기 전 남편과 주고받던 대화 속에 투정과 불만을 섞어 장난인 듯 던졌던 말 때문에 오늘은 먼저 연락이 오지 않을까 조금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간 회사이니까, 비가 많이 내리니까... 여러 가지 건수는 많았다. 하지만 전화도 카톡도 단 한 번도 연락은 없었다.
역시는 역시다.
남편의 한결같음에 고마워진다. 그래야 나도 더 미워할 수 있으니 무신경함에 고맙다.
남편이 자주 하는 말 중에 내 마음이 힘들지 않기를 바란다는 건 거짓말이다. 남편은 그저 가족이 다 함께 보내는 주말이나 휴일을 불편하게는 지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전부다. 연속성이 없는 관계라는 게 가능할까?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정확히는 지속하고 싶지 않다.
나와 아이 둘, 우리들의 일상에 본인이 원할 때 입장했다가 퇴장을 원할 때는 미련 없이 훅 빠지는 남편이 원망스럽다. 회사를 가야 먹고사는데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변명은 우습다. 내가 원하는 건 늘 함께하는 동행을 원하는 것이 아니란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 저런 변명을 하는 것은 억지다.
관심, 그 조금의 관심과 표현이라는 배려를 바라며 기다려왔다. 하지만 기다림은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나는 사는 동안 즐겁고, 재밌게 지내고 싶다.
감당하기 벅찬 행복보다는 작은 행복을 여러 번 느끼면서 소소하게 살고 싶다.
이런 다짐 같은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난 남편에게서 멀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