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는 단점을 꼽기 쉬운 영화다. 산발적으로 조각난 이야기들이 둥둥떠다는 인상을 남기며 하야오의 영화에 팬들이 기대하는 특유의 낭만도 부족하다. 다만 결말부에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노인이 된 거장의 자기인식은 은퇴를 앞둔 예술가만 전달할 수 있는 향취를 전달한다.
후반부 승계 장면. 이 세계를 만든 큰할아버지는 소년 마히또가 자신이 찾던 후계자의 자리에 맞는 인재라며 그가 세계를 물려받기를 제안한다. 이때, 큰할아버지, 마히토 모두 하야오 본인의 분신으로 볼 수 있다. 마히토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어린 소년이라는 점에서 어린 하야오, 큰할아버지는 만들어낸 거대한 세계의 후계자를 찾는다는 점에서 현재의 하야오다. 결국 할아버지, 현재의 하야오는 후계자를 찾는데 실패하고 마히또, 과거의 하야오는 자신의 미래를 만나 악의 없는 세계는 지탱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리고 승계는 무산된다. 독특하게도 이때 세계를 물려받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소년 마히또, 과거의 하야오다. 노인 예술가가 일평생 세워온 세계에 대한 어린 자신의 부정인 셈이다. 이는 마치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시 영화감독을 하실거냐'라는 질문에 대한 하야오의 답변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시간을 거스르는 모순적 결심이다.
영화의 알쏭달쏭한 모순은 영화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결국 무너져버리는 세계는 하야오가 쌓아온 예술세계다. 예술세계가 무너지고 현실에서의 삶을 결심하는 소년을 통해 하야오는 완전한 예술세계의 지탱 불가능함, 쓸데 없음을 이야기한다. 근데 이 예술의 무용성을 이야기하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도 영화다. 하야오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부정했지만 이 동떨어진 영화 또한 또다른 예술이다. 예술을 부정하는 예술은 왜가리의 거짓말에 대한 거짓말처럼 묘하게 스스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수수께끼다.
모순이 안밖으로 감싸고 있는 하야오의 예술이 그가 기존에 천착하던 환상적인 세계의 낭만, 회복에 대한 낙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노인의 무너지는 세계와 맞물린 건 새로운 가족을 찾는 소년의 회복 서사다. 이번 영화는 하야오 세계의 변주보다는 팽창처럼 느껴진다. 다만 그 팽창이 과욕이어서 소화불량을 유발할 뿐이다. 이 작품으로 은퇴하겠다는 결심을 번복하고 벌써 다음작품을 준비 중이라는 하야오는 큰할아버지보다 소년 마히또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예술이 현실에서 지탱불가능하다는 노인의 예술가가 소년의 정신으로 다시 한번 만든다는, 다시 한번 모순인 행보다. 원래 사람은 모순된 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