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고 쉬러 왔는데 쉬는 곳이 아닌 곳
산후조리원 동기
별 탈 없이 임신기간을 보내고, 5시간 진통 끝에 나는 첫 아이와 만날 수 있었다.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도 너무 기뻤지만,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기쁨은 살아오면서 느낀 감정중에 제일 벅찼다. 어머님은 조리원 비용을 들으시고는 산후조리를 도와주시겠다 하셨지만, 이번에도 남편이 내편이 돼주어 내가 원하는 산후조리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지내는 이곳은 2주에 350만 원. 다른 곳 보다 조금은 비싸지만, 마시지횟수가 다른 조리원들 보다 세 번 정도 더 있어서 따지고 보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었다. 나는 103호에 머물렀고, 105호에는 같은 날 입실한 산모가 있었다.
수지 옆 바구니에는 블루라는 태명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블루는 엄마를 쏙 빼닮아 신생아인데도 잘생겼었다. 나와 블루 엄마가 입실한 뒤로 5일 동안은 신입 산모들이 없어서 우리는 남편이 없는 시간에 거의 같이 있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보다 2살 많으시니까,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블루 엄마는 나보다 2살이 많았다. 그녀의 이름은 최혜림. 언니는 나와 자매로 보일 정도로 많이 닮았다. 신생아실 선생님들도 아이를 바꿔서 주실 정도로 많이 비슷했다.
"나도 말 놓을게 그럼. 괜찮지? 하연 씨는 수지 아빠가 참 잘 도와주더라."
언니는 부러운 듯이 말했다.
"머리 감겨주는 의자 말이야. 나는 그거 한 번도 못썼어. 자기는 남편이 매일 감겨주더라. 그게 제일 부러워."
"진짜요? 그럼 언니는 언니가 매일 감아요? 허리 아프지 않아요?"
"아프지. 등도 당기고. 머리숱도 많아서 한참 걸리는데, 수유할 때 땀이 나니까 안감을 수도 없고. "
언니는 남편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초산이 아니라 두 번째 출산이라 능숙해 보이긴 했지만 어딘가 안쓰러웠다. 씩씩하다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하는 동안 우울함이 조금씩 내비쳤다.
"근데 언니네 시부모님은 어쩜 그렇게 하루에 두 번씩 애를 보러 오세요?"
"말도 마. 아들 밥 굶을까 봐 오셨지. 친정엄마가 첫째까지 봐주신다는데도 3시간을 달려서 두 분이 오셨어. 손자가 그렇게나 좋으신지. 신생아실 선생님들한테 눈치 보인다니까. 자기는 조리원 끝나면 그 뒤에 어떻게 하기로 했어?"
"저는 시어머니가 2주 정도 도와주신대요. 친정엄마는 일하시거든요."
"그거 잘 생각해야 해. 나 첫째 때 시어머니가 해주셨는데. 아기 목욕을 무섭다고 못하시는 거야. 남편도 벌벌 떨지 결국엔 내가 했다니까. 그리고, 나는 고기가 너무 먹고 싶은데. 고기반찬을 안 해주셨어. 어머님이 고기를 안 좋아하시거든. 그래서 내가 마트 가서 닭고기 사다가 닭볶음탕을 만들어 먹었어.'
"진짜요? 아니 왜 말을 하죠~"
"그게 문제야. 요구하는 게 쉽지 않아. 더 기가 막힌 건. 나는 2주는 있다가 가시겠거니 생각했지. 근데 일주일 만에 가신다는 거야. 삼칠일도 끝났겠다. 옛날에는 애 낳고 밭을 맸다며 그래서 그랬나 싶었지. 근데 말이야 왜 가셨는지 알아?"
"왜요? 왜?"
"어머님이 농사를 좀 지으셔, 2백 평에다가. 가족들 먹고 남으면 조금 팔 정도. 그때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였나. 고구마 서리 맞으면 안 된다고 가셨어. 고구마 서리 맞는 게 나보다 중요하신 거지."
"진짜예요?"
"진짜라니까. 하하하. 어느 집 엄마는 닭 모이 주신다고 시어머니가 집에 가셨다던데?"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언니는 별별일을 다 겪어서 인지 지나간 이야기들을 재밌게도 말했다.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인생 중 10년을 서로에게 들려주었다.
조리원에 입성한 지 일주일째. 호르몬 변화가 가장 크다는 출산 후 열흘 째 날이었다. 옆방에서 큰 소리가 났다. 자세히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싸우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문을 닫는 소리와 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과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발을 동동거렸다.
"언니 너무 불쌍해. 가볼까?"
"아냐, 일단 있어봐. 울고 있으니까 좀 진정되면 가봐."
다음 날, 언니는 퉁퉁 부은 눈을 하고 나왔다.
"괜찮아요?"
"다 들렸지? 하... 진짜 나는 왜 이러고 사는 걸까."
블루 아빠는 매일 조리원에 들르기는 했지만, 어제 처음 자고 간다고 언니가 신나 했었다. 블루 아빠는 집에서 노트북을 챙겨 와서는 계속 영화를 봤다고 했다. 언니는 세 시간마다 수유 콜을 받고 유축을 하고 누울 새도 없이 바빴는데, 블루 아빠의 뒷모습만 보던 언니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당장 집에 가라고 했지.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아휴... 너무하셨네."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 너는 지금 여기서 쉬고 있잖아!라고 하는 거야."
그랬다. 블루 아빠는 언니의 모습을 보고도, 너는 쉬면서 나는 왜 영화도 보지 못하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대단한 사람이었다. 듣는 나도 눈물이 났다.
"자기 우는 거야? 어머 미안해."
"아니에요. 알잖아요 호르몬 때문인 거. 눈물이 요즘 내 마음대로 안돼요. 아... 근데 정말 너무 화나요."
유축을 하다가도 또르르 눈물이 나고, 아이가 사랑스러운 대도 안고 있다 보면 또 눈물이 났다. 그런 나에게 언니는 기분을 풀어준다며, 웃긴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다.
"처음 조리원 왔을 때, 여기 원장님이 모유 수유하는 거 알려주시잖아. 그때 나는 남편이 아니라 시부모님이랑 왔었거든. 근데 두 분이 방에서 안 나가시는 거야. 원장님이 두 분은 나가시라고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뭐 어떠냐고 그러셨어. 웃기지? 하하하하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더 목놓아 울었다.
"으앙~~ 그게 뭐예요. 우리가 젖소도 아니고. 엉~엉. 이게 뭐가 웃겨요. 엉~~~ 엉."
한참을 울었다. 언니 몫까지 내가 다 울었다. 우린 그렇게 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