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복이 많은 여자

나는 죄가 없어요

by 에토프

조리원에서 집에 돌아온 첫날. 다들 지옥이 시작된다 말했다. 나는 무슨 복을 받았는지, 수지는 울지도 않고, 계속 잠만 자서 시간에 맞춰 젖병만 물리면 됐다. 시어머니는 '하나 달고 나왔으면 얼마나 좋아~'라고 하시는 바람에 남편이 출입금지명령을 내렸다. 바람직한 조치였다.

부랴부랴 도우미를 알아보고, 3주를 지냈다. 도우미 이모님도 나랑 잘 맞아서 스트레스도 없었고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시간은 느리게 갔지만, 분명 예전보다는 아이 돌보는 일이 익숙해졌다. 아이는 뛰어다니고, 단어 열개 정도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아이를 낳은 뒤, 일을 그만두고, 아이 키우는 일에 전념했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더 쉽겠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학습이 되는 것이 부러웠다. 어서 빨리 자라서 앉아, 기다려를 알아듣게 되기를 바랐다. 아들을 키우는 혜림 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언니와는 여전히 자주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언니는 아직도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 수유도 끝났겠다, 언니와 밤에 만나 맥주 한잔을 하고 싶었다.


"오빠, 나 나갔다 와도 될까? 혜림 언니랑 맥주 마시고 싶어서."


"그 집은 잘 지내?"


"뭐, 똑같지. 그래서 언니 얘기 좀 들어주고 오려고."


"그래. 수지는 내가 잘 보고 있을게."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불안하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가 어렸을 적에 나보다도 이유식을 잘 먹였고, 잘 재우고, 잘 놀아줬다. 가끔 사랑을 뺏긴 것 같기도 했지만, 눈치 빠른 남편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빠는 엄마가 우선이야. 네가 아무리 귀여워도 엄마는 못 이겨."


나는 여전히 남자의 여자로 사랑받고 있었다.



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직은 안 될 것 같아. 애아빠가 아직 애를 못 재우거든. 자기는 남편이 믿을만하구나. 에휴. 나도 밤에 좀 나가보고 싶다.

혜림 언니는 그 뒤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너무나도 찜찜해서 한 달 뒤, 언니네 집으로 찾아갔지만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나는 결국 하나 있는 조리원 동기마저 어디로 간지 모른 채 지내다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야 육아 동지가 생겨 그들과 어울리느라 바빴다.


"수지 엄마는 수지 아빠를 뭐라고 저장했어요?"


"저는 애인이요."


"어머 뭐야. 아직 사랑하나 봐~ 하트도 있어."


핸드폰에 저장된 남편을 지칭하는 단어들 중, 애인이 최고로 낯간지러운 단어였다. 다른 엄마들은 동거인, 누구 아빠로 저장하거나, 아예 이름 석자만 저장해놓기도 했다. 한 엄마는 욕을 써놔서 보여줄 수 없다며 숨기기도 했다.

나는 이 무리에서도 남편복이 많은 여자로 불리었다. 명절에 전을 같이 부치는 것, 육아를 같이 하는 것, 밤에 외출이 가능한 것, 시부모님에게 부당한 말을 듣지 않게 방어해 주는 것, 모든 것을 부러워했다. 그리고 나의 남편은 백점이라고 불리며, 동네 아빠들의 미움을 샀다.


나는 부러운 시선이 이제는 부담스러워졌다. 남편을 보면 여전히 행복했지만, 내가 행복할수록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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