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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토프 Oct 01. 2021

그가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붙어있을 거니?

그렇게 만나고 싶지 않아서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정하게 굴며, 숨어 지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저를 찾아왔네요.


첫째 아이는 봄보다 가을에 비염 대축제를 엽니다. 이번에도 아이는 그 시작을 알렸고요. 눈이 뻑뻑하다며 저를 찾아온 아이에게 인공눈물을 한 방울 넣어줬습니다. 얼마 뒤 조금씩 훌쩍이는 소리가 나고, 오랜만에 듣는 잔기침 소리가 났습니다. 기침소리에 놀란 저는 체온계부터 들이댔지요. 37.5도. 해열제를 먹기엔 애매한 온도입니다. 배 도라지청을 일단 먹이고 물을 수시로 마시게 합니다. 항히스타민제 시럽을  상비약으로 가지고 있어, 자기 전에 먹였고요. 37.3도에서 37.4도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고, 잔기침은 여전하지만 잠은 잘 자는 거 보니 심하지 않은 거라 생각했지요. 저희 아이들은 비염으로 시작해서 기관지염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주로 보였고, 기관지염이면 항생제를 복용하더라도 누워서 자는 게 힘들 정도로 기침을 했었으니까요.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학교에 다녀온 아이와 소아과에 가려했는데 아이가 낮잠을 자더군요. 30분쯤 재우고 깨워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입구에서 열체크를 하고, 요즘 제가 사는 동네에 코로나가 심하게 번지고 있어서 계단을 이용해 진료실로 갔어요. 아이는 아무것도 만지지 못하게 하고 제 손만 잡고 조심히 계단을 올랐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진료대기 중이었고, 저와 아들이 선택한 선생님은 대기자가 없어서 사람이 없는 복도에서 기다리다 2분이 안 되는 진료를 보고, 봄에 받아간 약과 똑같이 처방을 받고 병원을 빠져나왔습니다.


아이를 먼저 돌려보내고, 약을 받아서 시장에 가 국과 시금치를 사고, 집에 들러 장 본 것을 놔두고 다시 마트로 향했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허겁지겁 살 것을 골라 집으로 돌아왔는데, 병원에 간다고 오랜만에 kf94를 낀 탓인지 심장이 쿵쾅거리고 급속도로 몸이 아파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녁을 먹이고 밤 10시가 되어 해열제 한 알을 먹고 누웠는데, 헛트림이 계속 나오고  근육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열을 재보니 37.6. 저 역시도 환절기만 되면 울면서, 이비인후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엉덩이 주사를 맞던 사람이라 또 올 것이 왔다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은 막내가 유난히 자주 깨서 거의 자지 못했네요. 병원에 가려면 코로나 검사 결과 문자가 있어야 할 것 같아  남편이 급하게 연차를 쓰고, 아이들을 돌보고, 혼자 검사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집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있었어요. 설마 코로나일까 싶으면서도,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마트, 시장, 어쩌다 소아과가 전부였으니.


다음날, 8시 반이 지나도 전화가 울리지 않기에 음성이라 안심하고 문자를 기다렸습니다. 8시 50분 지역번호로 전화가 왔네요.


"가족원이 어떻게 되시죠?"


"11살, 9살..."


15개월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울컥하며 목소리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첫 보건소 통화 후 한참을 울고, 친정과 친한지인들에게 확진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아니까요. 제가 어떻게 지냈는지..



"네가 왜?"


저도 모르겠습니다. 셋째 아이가 백일이 조금 지났을 때, 엄마들과 카페에서 커피 마신 것이 마지막이었고, 친정에도 가지 않고, 남들이 휴가 갈 때도 베란다에서 물놀이만 시키는 저였는데 말이죠. 다들 가는 카라반도, 제주도도 가지 않았고요. 만나자는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며 아이가 너무 어리다고 말할 때마다 참 속상했는데. 차를 하도 타지 않아서 셋째는 아직도 차를 타면 웁니다. 그렇게 2년 가까이를 보냈는데, 기어코 그게 저를 찾아왔네요.


다들 저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 일어났다 합니다. 어떻게 네가 걸릴 수 있냐며.

보건소 전화와 지인들 전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 때문에 저희 가족은 검사를 받아야 했고, 다음날 첫째 아이가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또 지인들이 너희 집이 왜?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때의 증상이 비염이 맞았을까 의심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보건소 직원분에게 검사 수치를 물었지만 누가 먼저 걸린 건지는 수치로 판단할 수 없다 하시더군요. 코로나 걸릴까 봐 공원 벤치에도 앉지 않고, 급식도 안 먹고, 식당에 포장 주문할 때도 따라 들어가지 않는 아이거든요. 학원도 안 가고, 놀이터에 가면 미끄럼틀도 그네도 안 타고, 학교와 집이 다였는데. 그래도 걸렸네요.


첫째가 양성이 나오고 나서, 하나라도 내가 데리고 가니 나은 건가 싶다가도, 소아과에 간 것과 학교에 보낸 것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차라리 기침을 더 했더라면 열이라도 났다면 보내지 않았을 텐데..

아이가 갔던 그 하루 때문에 친구들이 자가격리를 해야 합니다. 제가 그토록 바라지 않던 상황이 온 거죠. 아이의 증상이 비염 때문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음성 판정을 받는 시기를 알게 된다면 추측이 가능해지겠지요.

그리고 그동안 학부모들이 먼저 확진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걸리고 나니 알겠더군요. 아이들은 증상이 정말 미미합니다. 아이들에게 열은 코로나 의심 증상으로 간주하면 위험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첫째는 37.3, 37.4를 벗어나지 않고, 해열진통제를 한 번도 먹지 않았으니까요. 학교에서도 병원에서도 열이 나서 출입이 통제되지도 않았고요.

의심이 갈 만한 증상이라면, 딱히 증상이 없는데 몸무게가 많이 줄어있고, 낮잠을 자던 것.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그런 거겠죠. 양성이 나오고 나니 보이더군요.


저는 첫날밤에 근육통과 미열 헛트림으로 밤을 보내고, 검사를 한 둘째 날은 37.6도에서 약을 먹어도 37.5 이하로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통증은 없는데 열은 있었고, 몸이 엄청 가벼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 겪는 증상이었어요. 분명, 열이 나는데 붕 떠 있는 느낌. 저녁이 되니 다시 근육통과 발열이 시작되었습니다. 37.7도를 넘지는 않았습니다. 확진 전화를 받은 셋째 날은 점심이 지나고 나서부터 증상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약을 먹으려면 2시간이 남았는데 38.5도를 찍더군요. 머리에 뇌압이 오르는 게 느껴졌습니다. 눈이 엄청 뻐근하고, 머리는 누가 있는 힘껏 조이는 거 같았고, 코는 아이들에게 맞은 것처럼 얼얼했고, 귀는 오래 달리기를 하고 나서 고막이 터질 것 같이 아팠습니다. 밤에 근육통까지 온다면 난리가 나겠구나 싶었죠. 담당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어느 기준에 충족해야 생활치료센터가 아니라 병원으로 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젊다고 하더군요. 3년 전에 폐렴을 앓았고, 빈맥이 3일째 였고, 얼마 전 루푸스가 의심되어 자가면역질환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병원 이송을 요청해 주겠다 하더군요.

그런데, 그날이 아이들의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저는 선뜻 병원 이송을 요청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고민하는 저를 보고, 그분은 증상이 심하고, 아직 대기 중이니 일단 병원 이송을 신청해놓자 하셨습니다. 아이들의 결과도 듣지 않고, 제 살길만 찾은 거 같아 죄책감이 들면서도, 빈맥으로 3일을 지내니 이러다 큰일이 나겠다 싶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증상 4일째. 첫째가 양성이 나오고, 둘이 같이 병원에 가겠다 신청을 해놨습니다. 전날 밤에는 다행히 제가 우려할만한 통증은 없었고, 아침에 열도 37.3도까지 떨어져서 잘 자고 일어난 상태였는데, 약을 먹으려 죽을 한 숟가락 떴는데 냄새가 나지 않더군요. 후각과 미각 상실. 다들 겪는다는 그 증상도 시작됐습니다. 김치에서는 신맛만 나고, 짜파게티는 오일 맛만 느껴지고, 치즈돈가스는 고무장갑을 씹는 것 같았어요. 식감으로만 먹어야 하기에 배가 고파도 음식에 손이 가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가슴통증과 등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폐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전날만 해도 간질간질해서 나오던 기침이 온 힘을 다해 몸을 새우등처럼 구부려서 가래가 올라오려고 애쓰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집에 있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만 먹으며, 아직도 대기 중입니다. 지인들에게 다 나아서 병원에 갈 것 같다고 했네요. 웃으면서 말했지만 겁납니다. 폐렴을 앓았을 때의 통증을 저는 아니까요. 그런데 어떤 약도 치료도 검사도 받지 못하고, 내일은 병원에 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둘째 아이가 잠이 들기 전, 목이 따갑다고 하네요. 37.5 도구요. 안 그래도 또 검사를 받으려 했더니 하루 만에 결과가 바뀌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하셔서 가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날이 밝으면 다시 검사를 받아야겠지요. 저의 촉이 이번엔 틀렸으면 좋겠어요. 답답한 마음에 밤 10시가 넘어 1339에 전화를 걸에 상황설명을 하고, 약이라도 더 먹을 수 있는 게 있는지 문의했습니다. 그거라도 먹고 버텨서 둘째 아이의 결과를 듣으려고요. 폐렴에 대한 치료제는 어렵다고 하네요. 검사를 하지 못했으니까요. 담당공무원을 연결해줘서 다시 밤늦은 시간에 통화를 했습니다. 오전에도 했는데 이분은 계속 거기 계시는 걸까요. 참 친절하신 분이에요. 저희 집 상황이 애매하다는 걸 누구보다 공감해주시고 안타까워해주셨습니다. 물질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지만, 결국 또 제자리 상황이지만 그분 목소리를 듣고 나면 안심이 됩니다. 제 앞에 대기자가 80명 있다고 하네요. 내일도 집에 있어야겠죠?

저는 설사 말고는 거의 모든 증상을 하루가 다르게 겪고 있는데. 다들 잘 겪어낼 거야 라고 위로하고, 엄마 아빠도 명언집에 나올법한 말들로 저를 위로하시는데 사실 하나도 와닿지 않아요. 전쟁터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심정이거든요.


그렇게 저만 아프고 끝나게 해달라고 울면서 온갖 신에게 빌었는데, 그것도 먹히지 않더라고요. 상황은 계속 나빠지기만 하고, 집을 나가서 제가 살 길을 찾을 수도 없고요. 엄마라서 보호자라서 아이들을 끌고 가려고 기다리고 기다려야 하고요.

 백신 맞지 않은 건 후회 안 해요. 백신을 맞지 않아서 걸린 건 아니니까요. 백신을 맞고도 지금처럼 똑같은 시기에 코로나에 걸렸다면 덜 아팠을까. 접종예정일 열흘이 지나고 확진을 받았으니. 백신 2차 접종이 더 아프듯, 지금 앓은 것보다 덜 아팠을 거란 생각은... 그리고, 코로나에 걸리는 게  항체 형성은 접종보다 확실하니까 위안을 삼아야겠죠. 다 나으면, 저도 아이들이랑 놀러 갈 거예요. 그땐 무서울 게 없겠죠?



여전히 빈맥에, 정신이 나가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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