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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토프 Oct 07. 2021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estj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적인 척 살아야 하는 순간

내가 입원한 병원은 주 1회 택배 반입이 허용된다. 음식물은 당연히 안되고, 필요한 물품이나, 퇴원 시 입을 옷 정도. 나는 빗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집에 달랑 빗이 하나 있었고, 병실에서 충분히 나의 사교성으로 빗 하나 정도는 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3인실에서 나 혼자 3일을 보냈고, 룸메가 한 명 들어왔다. 10대 소녀, 그리고 이틀 뒤, 20대 숙녀.

외향적인 나는 입이 근질근질했는데, 입을 열면 꼰대로 보일 것 같아 입을 꾹 아주 꾹 다물고 있었다. 

10대 소녀는 핫핑크 머리에 피어싱을 하고, 짧은 반바지를 입고 왔다. 그래서 처음엔 20대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본 사람이라 신나서 20대냐 물었는데, 10대라고 해서 그냥 묻지 말걸 하고 소심해져서는 그 뒤로는 관찰만 했다. 맞은편이라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다. 20살 차이가 나니, 이모나 엄마뻘이겠지. 나는 간섭을 안 하고 싶은데, 이 소녀가 계속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 병실에는 cctv가 있다. 혹시 모를 위험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내가 냉동실에서 얼음팩을 꺼내면, 바로 간호사실에서 열이 나느냐고 전화가 온다. 그렇게  다 지켜보는데, 짧은 반바지의 이 소녀는 이불도 안 덮고, 누워있다. 코로나가 코를 된통 강타해서 코를 연신 풀어대는데, 코 푼 휴지가 바닥이며, 수납 장위에도 가득이다. 그리고, 맨발로 병실과 화장실을 다닌다. 11살 첫째 아들보다 더 손이 많이 가는 소녀인데, 그걸 눈감고 모른 척하려니 속이 탄다. 음압병실은 청소해주시는 분이 없다. 환자가 알아서 청소해야 한다. 그래서 그녀의 맨발도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핫초코를 플라스틱 컵에 타 먹는다. 그거 건강에 안 좋은데, 말릴 수가 없다.

여기 계속 있다가는 한 번은 꼰대 짓을 하겠다 싶어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빗을 빌리려다가 잔소리가 나올 것 같아, 로켓 배송을 이용하기로 했다. 퇴원하는 날 비가 올 것 같아 우산도 사고, 공용 샴푸가 있는지 모르고 세면도구 세트도 구입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물품 확인을 하시며, 우산에서 멈칫하셨다. 아무도 우산을 사지 않았나 보다. 퇴원하는 날 날씨를 보고 시켰을 뿐인데...


게다가 요즘은 병원비 납부도 비대면인 것 같다. 계좌이체를 하고 퇴원을 한다는데, 나는 폰뱅킹을 못한다. 남편이 주는 돈으로 열심히 긁기만 하다 보니, 휴면 상태로 바뀌어, 온라인으로 은행업무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남편이 애 보느라 메시지 확인을 하지 않을까 봐 남동생, 여동생에게 부탁해놓았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내 눈에 저 소녀가 나와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겐 다르게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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