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세계

코로나바이러스 네가 아니었다면.

by 에토프

코로나바이러스 네가 아니었다면, 내가 집밥에 대해서 글을 쓸 계기는 없었겠지.


2020년 2월

코로나로 인해 휴원과 휴교가 시작되었다.

무보수 전업주부인 나는 '집밥'을 두고 평범한 주부로 남을 것인지 프로 전업주부가 될 것인지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었다.

임신을 한 산모는 병에 걸리게 되면 누구의 목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내 목숨이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절대로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됐기에, 7살, 9살 두 아이는 등원과 등교가 시작되는 시기에도 나와 함께 집에 있어주었다.


평균 6주에 1번씩, 비염과 각종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이비인후과 단골이었던 두 아이들은, 코로나로 집에 있는 동안 거의 아프지 않았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두 아이들은 비염 때문에 비말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급격한 온도 변화와 습도 변화가 아이들에게 원인제공을 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주 아팠다.

그런 아이들이 1년 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던 걸 보니, 아이들을 아프게 했던 원인은, 전부 집이 아닌 밖에서 사람들을 통해 옮아왔던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두 아이를 데리고 점점 무거워지는 몸으로 집밥을 삼시세끼 차린 다는 건 분명 힘든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를 위해 집에 있어주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삼시세끼 집밥을 차리는 일은 힘든 것도 잊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온전한 사랑이었다.


입덧 방지약을 먹고 심히 밥을 차렸다. 국이나 찌개는 이틀, 밑반찬 종류는 사흘마다 요리고, 고기나 생선이 들어간 메인 메뉴는 저녁마다 하나씩 바꿔가며 만들었다. 김밥, 유부초밥, 볶음밥, 면류도 순서를 바꿔가며 식탁에 올랐다.


코로나 이전엔 시장에 가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들어진 국을 사고, 나물을 서너 종류 사 왔다. 실외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니던 시절, 나 혼자 코로나가 심각상태라 생각해 그마저도 구입하지 못했다. 남이 해놓은 반찬이 얼마나 소중하던지...


평소 우엉조림을 한 달에 두 번 정도 손수 만드는 나를, 아는 언니들은 신기해했다.


그걸 직접 껍질 벗기고 썰어서 조린다는 거지?


네, 우엉 3천 원이면 사는데, 만들어진 거는 5천 원 정도 하지 않아요?


흙이 묻은 껍질을 싹싹 벗겨내고. 딱딱한 우엉을 채 썰고, 한번 끓여낸다음, 거품 나는 물은 버리고, 간장, 물, 올리고당을 넣어 조린다. 국물이 얼추 졸여지면 불을 끄고 들기름이나 참기름 조금에 깨를 뿌려주면 반 정돈 밑반찬으로 먹고, 남은 반으로는 김밥을 싼다. 그 정도의 수고로움은 별거 아닌 프로 전업주부의 바로 아래 레벨이랄까.


그런 내가, 코로나가 터지고 나니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하려는지 신메뉴에 도전을 하고 있었다. 보통 싸던 김밥 대신, 맛살과 오이지를 들어간 김밥도 싸 보고(강추), 햄 대신 떡갈비를 넣은 김밥도 쌌다. 유부초밥은 오이, 스팸, 우엉조림을 잘게 썰어 각기 다른 유부초밥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음식을 응용할 수 있구나, 뿌듯해하며 6개월을 지냈다.


나는 항상 임신 7개월에 접어들면 앉아있기도, 밥을 먹는 것도 힘들어지는 몸이라, 밥을 하는 것도 조금 지치기 시작했다. 냉동실은 생전 안 사던 볶음밥과 핫도그, 피자들로 꽉꽉 채워졌다. 그리고 매일 다른 종류의 국과 반찬 5가지를 보내주는 업체를 알게 되어, 하루 두 끼 정도는 그걸로 편히 먹었다. 셋째를 낳고도 한 달 정도 더 이용했다. 계속 먹다 보니 질리기도 하고, 원재료에 비해 비싸게 느껴지도 했다. 무엇보다도 플라스틱 용기가 늘어나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일주일에 한 번 분리수거하는 날이면, 온갖 플라스틱이 덩치 큰 성인만 한 봉지에 가득 채워졌다. 그래서, 다시 본격적인 집밥이 시작되었다.


나는 예전처럼 다양한 레시피로 요리하는 것은 멈췄다. 프로 전업주부로 승진은 하지 못했다.

반찬수를 줄이고, 간편한 한 끼들로 돌밥돌밥에 대응하고 있다.


바로 옆 옆 블록에 사는 친한 언니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신호음은 계속 나는데 받지 않는다. 다시 걸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정성인 따뜻한 엄마라, 받지 않으면 다시 걸지 않으려던 참이었다.


얼마 뒤 전화가 왔다.


언니~보고 싶어요. 전화를 하려 해도 다들 애보느라 정신없을 것 같아서~안 받으면 그냥 말아야지 했어요.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집밥 얘기가 나왔다. 우리에겐 뭘 어떻게 만들어서 먹이는지가 중요한 업무다.


통조림 닭가슴살에 냉면육수 넣고 겨자소스 뿌리면~~


초계국수라니. 냉라면 냉가락국수에 이은 신박한 집밥 메뉴였다. 언니는 핫하다는 음식들을 거의 다 만들기도 하고, 오븐을 사다가 크로와상이나 에그타르트도 구워 먹는 집밥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처럼 한 번에 많은 재료를 사다 냉장고를 채우는 것도 아니고, 냉장고를 한번 쓱 흝어보면 레시피가 떠오른다고 했다. 프로 전업주부의 지에 이르렀구나.


일요일이다.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국집이 어제부터 일주일간 휴가로 문을 닫는 바람에, 텅 빈 냉장고를 채우러 이제야 마트에 간다.

우리 가족이 했던 마지막 외식은 2019년 12월쯤이었다.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이 배송되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던 그날, 나가사끼 짬뽕에 초밥, 돈가스를 참 맛있게 먹었는데. 외식 소중함을 저리게 느끼며 무엇을 요리할지 정하지도 않고, 일단 마트에 가본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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