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얻다.

오지랖+남아선호의 콜라보

by 에토프

친정엄마는 나와 여동생을 낳은 뒤, 5년 만에 어쩌다 아들을 낳았다.

"할아버지가 아들 낳으면 그랜저 뽑아주신댔어."

첫 손자이자, 유일한 친손자인 남동생은 할아버지의 사랑을 은근히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아들은 하나 낳아야지."

나에게 아들 얘기는 한 번도 안 하시던 시어머니께서, 아이들의 고모가 임신했을 때, 하셨던 말씀이다.

저 말을 듣고 나는 아들을 안 낳으면 어쩔 뻔했나 아찔했다.


남편은 어렸을 적, 아들이 귀한 집에서 태어나. 아들이 없는 친척집에 방문할 때면 할머니들이 용돈을 더 주셨다고 했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에도 아들 타령하는 우리의 어머니들은 아주 많이 존재한다.


딸이 7살이던 때. 아이가 등원차량을 기다릴 때마다 마주치던 이웃사촌 할머니가 계셨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아들이 있다고 하셨는데, 친정엄마보다는 연세가 훨씬 드신 것 같았다. 딸아이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는데, 알고 보니 다른 아이들도 끔찍이 예뻐해 주시는 분이셨다. 많이 마주치다 보니, 속에 있는 얘기를 꺼내셨다. 며느리가 아이를 이제 가지려고 하는데 잘 안된다며, 아이 낳으면 키워주려고 이사도 안 가고 계신다고 하셨다. 때 내 뱃속에 셋째가 있었는데, 할머니께 임신 사실을 굳이 알리지 않았다. 어떤 말이 쏟아져 나올지 예상도 되고, 속도 상하실 것 같고, 이래저래 말을 안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큰 점퍼 때문에 불러오는 배는 티가 나지 않았다. 코로나로 한동안 마주 칠일이 없어서 아이가 태어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분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초여름을 앞둔 6월의 어느 날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의 저녁을 차려주고, 설거지는 산더미로 쌓여 있었고, 나는 배가 고팠지만 칭얼거리는 셋째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던 참이었다. 오랜만이라며 같이 걷자고 하셔서,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아들이야? 복도 많아~~ 어떻게 아들을 또 거저 얻었대~~"


그냥 생겨서 낳은 아이였는데.

엄청난 갈등을 주던 아이였는데.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며. 거저 얻었단 얘길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일주일 전 셋째와 같이 자던 나는 그 잘난 아들 뒤통수에 맞아 코뼈가 부러졌고, 시술도 하지 못한 채 코에 보호대를 붙이고 있었다. 는 아프고, 힘들고, 아직 동굴에 갇혀있는데...

셋 키우기 힘들지 라는 얘기는 한마디도 없으셨다.

그 집 며느리는 딸을 낳았다고 하셨다. 그 집 며느리가 딸을 낳아서 내가 아들을 거저 얻었단 소릴 들어야 하는 걸까. 그 집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어도, 나는 아들이 둘이라서, 둘이나 거저 얻었다는 말을 들었을까. 집에 오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차별을 받고 자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들! 아들! 아들! 그놈의 아들이 뭐가 그렇게 복덩이야!"


남편의 눈이 똥그래졌다.


"나보고 아들을 거저 얻었다잖아."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물며 거저 얻은 '아이'라고 했어도 화가 났겠지.

그동안 많은 오지랖을 당해봤지만, 가장 강력한 오지랖이었다.( 다짜고짜 모유 먹냐, 나는 2년을 먹였다, 분유는 소젖이라 안 좋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


여자인 엄마가 남자인 아들을 '잘'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더군다나 하루가 멀다하고 성범죄 뉴스로 세상이 어지러운 요즘, 나는 이 아들들을 잘 키울 수 있을지 어깨가 무거웠다. 아들을 낳기 전에 읽었던 책에서 "본능"이라 단어는 아들의 특징들을 설명하는데 꽤나 많이 등장하는 단어였다.

나에게 바르고, 현명하게 잘 키우기 미션이 남아있는 아들에게 거저 얻었다는 표현을 해서?

나는 힘든데 힘든 내색도 못하게 만들어 버려서?

무엇이 됐든, 열심히 피해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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