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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토프 Aug 07. 2021

가난한 집 아들 부잣집 딸

쇼핑중독자가 쇼핑에서 벗어나는 방법

둘 다 내 뱃속에서 나왔는데 왜 이렇게 다르지?

첫째(아들)와 둘째(딸)는 엄마, 아빠가 같다는 점말고는 교집합이라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다.

그중에서도 소비와 돈에 대한 태도는 극과 극이다.





빵집에 가는 날이면 첫째는 천천히 매장을 돌면서 눈으로 보기만 한다. 그리고 신중하게 하나를 골라 내게 말한다. 둘째는 손바닥만 한 치즈케이크 맛 빵도 사야 하고, 곰돌이 모양 빵도 사야 하고, 초코로 범벅이 된 도넛도 사야 한다. 둘째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알아서 푸짐히 고르는 편이라, 하나만 고른 첫째에게 좋아하는 마카롱을 권해보았다.


"오늘은 마카롱 안 먹고 싶어? 살까?"


"아니, 안 먹고 싶어~"


그렇게 마카롱은 사지 않고, 온 가족이 먹을 다른 빵들을 더 사서 집에 돌아왔다. 얼마 지난 뒤에 아들이 고백을 했다.



나, 사실 아까 마카롱 먹고 싶었는데, 비싼 거 같아서 안 산 거야.



나는, 친정엄마와 아빠처럼 애들 앞에서 돈 가지고 싸운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가끔씩 남편에게 농담은 하긴 했지만, 아이는 왜 마카롱이 비싸다고 생각했을까.


"만복아, 우리 집 부자야. 마카롱 얼마든지 사줄 수 있어. 다음엔 먹고 싶으면 사달라고 해. 가격 따지지 말고, 엄마 돈 있어."







서점에 가는 날이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둘째는 이미 어떤 책을 살지 정해놓고 출발한다. 그것만 사고 집에 오자는 취지였으나, 항상 무산된다.  첫째는 서점에 가서 한참을 고민한다. 첫째가 한 권 고르는 동안, 둘째는 사기로 정해놓은 책은 내손에 들려주고 새로운 쇼핑 아이템을 찾는다.


"엄마. 내 돈 내고 이거 더 사도 돼?"


코로나로 맘껏 놀지도 못해서, 책 구매는 어지간한 건 허락하는 편이다. 아이들 책은 신간도 재빠르게 나오는 것 같다. 이제 책은 다 고른 거다. 서점에 가면 갖가지 펜과 필통 수첩 슬라임, 둘째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이 쫙 펼쳐져있다. 첫째도 책을 골라왔고, 이제 계산하고 이곳에서 탈출하는 일만 남았다. 둘째는 반짝반짝한 눈으로 '사주세요' 신호를 보내는 아이들을 어쩔 줄 몰라하며 보고 있다.


"가자, 엄마 계산 다 했어~"


"잠깐만~이거 조금만 더 보고, 엄마 나 이거 다음에 사도 돼?"


이때 대답을 잘해야 한다. 집에 이미 있는 물건인지, 놀다가 망가뜨린 물건이지, 필요한 물건인지, 일주일 놀고 버려질 물건이지 판단을 내리고. 물건을 살 만한 명분이 되는 가장 빠른 시기를 머리를 굴려 잡아내야 한다.

어린이날은 지났고, 생일도 지났고.


"명절에 용돈 받으면 그때 사자. 더 예쁜 게 나올 수도 있어~~"



쇼핑이라면 한 쇼핑하던 나도 딸과 동행하는 날엔 정신을 놓는다. 최대 40분 내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다. 쇼핑의 신이었던 나를 쇼핑이 질리게 만들어 준 고마운 아이다.




한 아이는 너무 안 쓰고, 한 아이는 너무 잘 써서 돈을 직접 쓰게 해 보았다. 용돈이 제일 풍족한 명절에 대형 장난감 가게에 갔다.

첫째는 돈을 직접 건네고 사서, 내손에 원하는 물건이 들어왔을 때의 기쁨을 알려주고 싶었다.

둘째는 물건을  사고 나면 내가 가진돈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눈으로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첫째는 5만 원 정도의 장난감을 골랐고, 둘째는 10만 원에 가까운 장난감을 골랐다. 집에 돌아와 남은 돈을 세어본다. 첫째는 아직 많이 남은 것 같다며 안심한다. 둘째는 왜 이렇게 돈이 줄었지 라며 오빠의 돈을 힐끔 쳐다본다.


"네가 10만 원짜리 골라서 네 돈이 더 많이 줄어든 거야."


둘째는 오빠의 돈이 자기가 가진 돈보다 더 두툼해 보이니 기분이 나빠진다. 성공을 한 걸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둘째는 그다음부터 계산할 때 딱 맞는 현금이 있는데도, 굳이 거스름돈을 받기 위해 더 큰 금액을 건넸다.



거스름돈 받으면
내 돈이 더 많아지는 것 같잖아~



쓰면서도 어떻게 내가 이런 아이를 낳았는지 웃음이 난다. 둘째는 아장아장 걷던 시절부터, 5만 원만 덥석 잡았고, 말을 조금 하는 시기엔 만원을 받으면 휙 던지고 '할머니 그림 있는 거'라고 정확하게 요구했다.



한 번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가진돈으로 쓸 수 있는 금액이, 어느 정도부터가 큰돈이라고 생각되는지. 첫째는 5천 원, 둘째는 3만 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첫째에게는 우리 집 부자야~라고 하고.
둘째에게는 우리 집 가난해~라고 한다.




들키지 않게 귓속말로 따로따로 해야 한다.

셋째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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